[주간여적]세 모녀 세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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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26일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한 중산층 주택가를 들어가 보았다. 이 집 한 귀퉁이에 9년째 세 들어 살던 50대 어머니와 20대 두 딸이 집세와 공과금 70만원을 남겨놓고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두 칸짜리 방과 부엌은 깔끔하게 잘 정돈돼 있었다. 딸들의 방에는 패닉, 이브, 라르크 엔 시엘의 CD와 테이프, 어머니의 방이자 이들이 함께 최후를 맞은 방에는 송대관의 CD와 테이프가 쌓여 있었다. 또한 딸들의 방에는 만화책 수백 권과 한 박스나 되는 습작노트가 있었다. 주인과 함께 숨진 고양이는 여전히 살아있는 듯했다. 비극이 발생한 방에서 가난한 이들의 취향과 꿈을 봤다.

지난해 2월 서울 송파구에서 숨진 세 모녀가 살던 방.


‘송파 세 모녀 사건’은 부실한 사회복지 안전망이 낳은 비극으로 읽힌다.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사회복지 사각지대를 찾아내라는 긴급명령이 떨어졌다. 일선 동사무소는 눈코 뜰새 없이 바빠졌다. 몇 달뿐이었다. 꿈과 취향이 있던 세 모녀 가족은 일자리가 없었고, 기댈 만한 곳이 없었고, 병이 있었다. ‘기초생활수급지원’ 제도 하나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지만, 기초생활수급제도 개선마저 크게 이끌어내지 못했다.

약 2년이 지나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의 한 단칸방에서 비극이 발생했다. 50대 엄마와 20대 아들 둘이 이번에는 한 방에 살았다. 가족 간 다툼 끝에 큰아들이 어머니와 동생을 찌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이나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끔찍한 사건이라 동정을 받기도 힘들다. 그러나 ‘송파 세 모녀’의 꿈과 취향이 언론에 조명되지 않았듯, ‘패륜’과 ‘막장’으로 얼룩진 사건의 주인공들에게도 조명되지 않은 부분이 있을 것이다. 가족 간 애정도 인륜도 경제적·정신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나온다. 서로를 죽일 정도로 끔찍하게 미워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에는 가난과 결핍과 고립이 곳곳에 스며 있을 것이나 더 이상 알 방법이 없다. 2년 전보다 더 독해져 돌아온 영등포 세 모자 사건은 아무런 울림 없이 조용히 묻혔다.

지난해 자영업자 폐업률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인구증가율은 역대 최소를 기록했다. 서울 강남의 아파트값도 떨어지기 시작했고, 전국에 제로 분양, 미분양이 속출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경기파탄의 서곡이라면, 최근 몇 년간 뉴스를 장식하는 끊임없는 저소득층의 자살, 학대, 폭력 사건은 변두리에 몰린 사람들이 이미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진행 중인 붕괴’다. 이들이 다 바스러진 후에야 중산층은 경기침체를 넘어서 파탄을 경험한다. 수많은 ‘세 모녀’들이 각양각색의 비극적 모습으로 스러진 이후에 목도하는 광경이 무엇일지 끔찍하기만 하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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