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리베 다쏘시스템 부사장 "디지털 쌍둥이가 제조 공정 혁명 가져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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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6.01.25. 오후 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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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

지난 6일(현지시각) 세계 최대 전자 전시회 ‘CES 2016’이 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 샌즈엑스포 전시장. 3차원(3D)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다쏘시스템 부스에서 가상현실(VR)을 체험했다. 대만 HTC가 제작한 VR 헤드셋을 쓰고 ‘플레이그라운드(부스 내 체험 센터를 그렇게 불렀다)’에 들어서자 사진 찍는 소리가 들렸다. 0.1초 후 플레이그라운드에는 방금 전 나와 똑같은 포즈를 취한 ‘또 다른 나’가 덩그러니 나타났다. 기자는 ‘또 다른 나’를 보는 것을 넘어서서 나를 색칠까지 해보는 ‘기기묘묘’한 경험을 하고 체험장을 빠져나왔다.

CES 2016 현장에서 만난 올리비에 리베(Olivier Ribet) 다쏘시스템 부사장의 손에는 명함 수십장이 들려 있었다. /류현정 기자

도대체 이 프랑스 소프트웨어 업체는 왜 부스 한 가운데 VR체험 센터를 설치한 것일까. 인기는 좋았다. 두 시간 정도 대기해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었다.

이날 현장에서 올리비에 리베(Olivier Ribet) 다쏘시스템 부사장(하이테크 산업 부문)을 만났다. 리베 부사장의 손에는 그날 하루 주고받은 수십 장의 명함이 있었다. 올해 CES에서 3D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많았다는 증거였다. 보르도의 정책대학(the Institute des Etudes Politiques)을 졸업한 그는 마이크로소프트, 불(Bull EMEA), EDF 등 첨단 정보기술(IT) 분야에서 20년 이상 일한 IT 전문가다. 그는 프랑스인 특유의 비음이 섞인 영어로 기자의 의문을 하나씩 풀어줬다.

1981년 설립된 다쏘시스템의 본사는 프랑스 벨리지에 있고 세계 직원수는 1만2400명, 연 매출은 약 23억 유로(약 3조원)이다. 2014년 미국 잡지 포브스로부터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2위로 선정됐다.

- 다쏘시스템은 자동차 업체 90%가 쓰는 설계 소프트웨어로 유명한 회사입니다. 그런데 정작 부스에는 자동차 설계와 관련한 내용이 많지 않습니다.

“다쏘시스템은 30년동안 3D 설계 소프트웨어의 역량을 키워 왔습니다. 3D가 필요한 곳은 자동차나 항공 분야 뿐만이 아닙니다. 의사도 3D를 쓰는 시대가 옵니다. 가령, 사람의 심장은 저마다 크기도 다르고 동맥과 정맥이 지나가는 길도 다릅니다. 디지털 기술로 각기 다른 심장을 재현한다면, 의사는 수술 집도 전에 제대로 연습을 해 볼 수 있고 수술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쏘시스템이 인공심장 모델을 만드는 ‘리빙 하트(living heart)’ 프로젝트를 여기에 전시해놓은 이유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개개인 심장근육의 움직임과 혈액의 흐름, 심장 근육을 움직이는 전기 신호까지 재현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 3D 기술력을 기반으로 공격적으로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고 있군요. 그렇다면, 부스 중앙에 VR 시연 장치를 만든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 여기에 건축주, 건축설계사, 시공사가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최근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건물정보모델링) 기술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6개월 후, 12개월 후 건물이 어떤 모습일 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VR을 이용해 가상 공간에 현실과 똑같이 3차원 건물을 올려서 체험하게 하면 어떨까요. 건축주, 건축설계사, 시공사가 동시에 VR을 보면서 건축 방향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됩니다. 당신이 건축주라면, 건물이 완공되기 전에 모든 것을 알고 싶고 보고 싶지 않을까요. 창문 크기, 마루 바닥 재질, 현관문 모양에 이르까지요. 세 사람은 VR을 보고 창문을 더 키우자, 부엌에 푸른 색을 가미하자 등을 이야기를 나눌 것입니다.

-눈에 보이면, 더 효과적으로 의견을 나눌 수 있게 되죠.

“맞습니다. 이제 시뮬레이션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현실과 똑같은 가상현실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왔습니다. 우리는 현실과 완벽하게 똑같은 쌍둥이를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이라고 부릅니다. 디지털 트윈을 이용하면, 디자이너는 사전에 소재의 디테일까지 표현해 볼 수 있고 공장장은 데이터 해석 관리를 통해 생산 공정을 시뮬레이션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싱가포르 도시 자체를 완전히 복제하는 ‘싱가포르3D익스피어리언스시티’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디지털 트윈이 제조공정에 혁신을 가져올 것입니다.”

-왜 그런가요.

“그동안 제조 공정을 한번 떠올려보십시오. 당신이 기계 엔지니어라면, 전자 분야는 신경을 쓰지 않을 겁니다. 전자 엔지니어라면 소프트웨어 따위는 관심을 두지 않지요. 실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계, 전자, 소프트웨어, 디자인, 시스템엔지니어링, 메뉴팩처링이 모두 필요합니다. 디지털 트윈 덕분에 제조 공정에 있는 많은 사람이 동시에 참여하고 협업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마치 건물을 만들 때 건축주와 건축설계사, 시공사가 동시에 VR을 보면서 설계를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제품의 특정 재료를 바꾼다고 하면, 디지인이나 설계부터 바꿔야 할 것입니다. 디지털 트윈을 통해 자유자재로 바꿔 보면 원가 계산도 쉽습니다. 시행 착오를 줄이고 협업할 기회를 늘리면 신속하게 제품이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기자가 VR을 통해 3차원 공간에서 기자의 또 다른 나를 만나 색칠했다./다쏘시스템 제공

-디지털 트윈이 가능하게 된 요인은 무엇인가요.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와 VR 기술이 진화한 덕분입니다. 특히 최근 2년 사이에 VR 기술이 급속히 발달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다쏘시스템 부스에서 VR을 체험해 본 사람들은 다들 ‘와우’라고 감탄사를 쏟아냅니다. VR이라는 개념은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다만, 기술 진화 속도가 너무 느렸지요. 몇년 전만 해도 VR헤드셋은 정말 별로였습니다. 10분만 써도 두통이 올 지경이었거든요.

VR 기술이 획기적으로 개선된 것은 MEMS(미세전자제어기술) 덕분입니다. 센서는 더 작아지고 싸졌습니다. VR 체험장의 기둥에 설치된 블랙박스 보이시나요? 블랙박스가 당신의 위치와 움직임을 정확하게 표시하고 VR헤드셋으로 실시간으로 전달해줍니다. VR 헤드셋에 내장된 칩이 센싱한 정보를 빠르게 처리해 3차원 영상으로 구현합니다. 예전에는 이것을 실시간으로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차가 발생했고 사용자는 어지러웠던 것입니다.”

- 테슬라에 이어 최근 화제를 모은 전기자동차업체 패러데이퓨처도 다쏘시스템의 고객이 됐다고 들었습니다.

“다쏘시스템은 제약회사나 병원 등과도 일합니다. 바이오생물학자와 함께 신약 개발에도 참여하죠. 그런가하면, 비행기 제조업체와 대형 건설사와도 일합니다. 작은 것을 디자인하고 이를 통합해서 더 큰 것을 만들어 심지어 도시까지 재현해내자는 것이 다쏘시스템의 목표입니다. 이것을 멀티스케일(Multiscale)이라고 합니다. 멀티스케일은 작게는 원자나 분자 단위를 재현하고 크게는 도시와 같은 복합 시스템까지 재현하는 다쏘시스템 시뮬레이션의 중요한 축입니다. 테슬라와 패러데이퓨처는 칩셋 디자인부터 차량통제시스템, 파워트레인, 공장 시스템까지 다쏘시스템의 솔루션을 이용합니다. 작은 것을 통합해 더 큰 것을 만드는 전략이죠.”

-실제로 패러데이퓨처 엔지니어들을 만나보셨나요. 그들이 주목받는 이유가 있습니까.

“개인적으로 페러데이퓨처의 전략이 상당히 ‘와해적(disruptive·瓦解的)’이라고 생각합니다. 테크놀러지도 파괴적이고 생각하는 것도 파괴적입니다. 자동차 제조에 대한 접근방식이 상당히 새롭습니다. 자동차를 만드는 데 기계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소프트웨어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듈화(modularity)를 정말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레고처럼 빠르게 조립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죠. 오늘날 많은 회사가 모듈화를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에 옮기는 회사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제조공정에 많은 변화가 일고 있네요. 다른 사례도 있습니까.

“앞으로는 소유의 시대가 종말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버나 에어비앤비처럼 차량이나 집을 공유하기도 하지요. 여기에 발맞춰 독일 가전업체 밀레(Miele)는 신제품을 개발할 때 예전과는 다른 요소들을 고려합니다. 냉장고나 세탁기도 소유하지 않고 대여하거나 공유하는 시대 혹은 서비스용으로 쓰이는 시대가 올 것으로 보고 재활용하기 쉽게, 이곳저곳 이동하기 쉽도록 가볍게 만드는 데 신경을 씁니다. 여러 사람이 쓰기 때문에 심플하게 디자인하고 여러 번 쓸 수 있도록 더 단단하게 설계하지요.”

오픈 소스와 3D프린터를 활용해 만든 휴머노이드 로봇 ‘포피’

-이런저런 제조공정의 혁신 사례를 다쏘시스템 스스로의 혁신에도 적용합니까.

“물론입니다. 외부 자원을 끌어들여 혁신하는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 부스 왼쪽에 있는 흰색 로봇 보이시나요. 휴머노이드 로봇 ‘포피(Poppy)’입니다. 포피를 만드는 소스 코드는 웹에서 다운받아 볼 수 있습니다. 다쏘시스템도 이 오픈 소스 프로젝트에 협력하고 있습니다. 이제 혼자하는 혁신은 없습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에도 소셜(social)이 중요합니다. 다쏘시스템은 사용자의 참여를 유도하고 사용자의 의견을 쉽게 반영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기 샌즈엑스포에 전시 중인 수많은 회사를 보십시오. 설립한지 1~2년 밖에 안됐는데 아이디어를 현실화해 제품을 내놓고 있습니다. 기존 산업 시대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는 뜻이지요. 다르게 일하지 않으면 혁신도 기대할 수 없을 겁니다.”

[류현정 기자 dreamshot@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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