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악녀로 변한 ‘춘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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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3.05.20. 오후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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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창극 ‘메디아’ 주인공 박애리·정은혜

사랑에 빠져 가족 죽이는 내용

그리스 비극 창극화 처음 시도

춘향가 이수자 박씨 연기 변신

“처음엔 이해 못했는데 차츰 공감”

정씨 “그녀의 한 넋풀이 해줄 것”


고대 그리스의 악녀 메디아가 2400년 만에 한국 전통 창극으로 부활한다.

국립창극단이 기원전 5세기 그리스 비극작가의 대표작 <메디아>를 ‘송 스루’(대사 없이 노래로만 하는) 창극으로 만들어 22~26일 서울 남산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서 첫선을 보인다. 창극 <메디아>는 서양 연극의 시원인 에우리피데스의 그리스 비극을 창(唱)으로 표현하는 최초의 창극화 작업이다. 한아름 작가-서재형 연출가 부부가 작품을 만들고 황호준 작곡가가 음악을 입혔다.

메디아는 조국의 보물을 훔치러 온 이아손과 사랑에 빠져 친형제를 죽이고, 자기 친자식들도 찔러 죽인 서양 악녀의 대명사. 이 인류 역사상 최악의 악녀 역은 국립창극단의 간판스타 박애리(36)씨와 신입단원 정은혜(29)씨가 맡는다. 두 사람을 지난 16일 국립창극단 연습실에서 만났다.

박애리씨는 창극 <배비장전>, <제비>, <춘향>, <청> 등 국립창극단의 주요 무대에서 주역으로 활약해왔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춘향가>의 이수자로, 주로 춘향이나 심청 등을 연기해왔기에 악녀 연기는 새로운 도전이다. 특히 최근작 <서편제>에서 ‘송화 엄마’ 역을 맡아 모성애 진한 연기를 펼쳤는데, 단 두 달 만에 희대의 악녀로 변신하게 됐다. 그는 “그동안 했던 여성상과 너무나 다른 역할이라 걱정부터 앞선다”면서도 새로운 역할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작가 에우리피데스가 말한 대로 어느 누구에게나, 또 제 안에도 그런 메디아의 본성이 틀림없이 있으리라 생각해요. 충분히 그의 감성을 느껴보려고 합니다.”

그는 ‘어쩌면 저럴 수가 있지?’라고 의문을 갖게 하는 메디아가 아니라 ‘그럴 수도 있었겠다’며 공감하게 되는 캐릭터로 해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저도 아이의 엄마인지라 메디아가 두 자식까지 죽인 것을 용서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메디아의 입장에 서고 보니 이해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내가 없어짐으로써 아이가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는 환경에 놓인다면,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할 운명에 놓인다면 내가 함께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해요. 물론 그런 일은 없어야겠죠.”(웃음)

또 다른 메디아로 기용된 정은혜씨는 올해 신입단원으로 들어온 신예 중의 신예여서 특히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까지 인턴 단원을 지낸 정씨는 입단 5개월 만에 주역을 꿰찼다. 안은미 컴퍼니의 무용극 <신 춘향>과 <바리>, 국립극장 국가브랜드공연 <화선 김홍도> 등에 출연한 실력파다.

2001년부터 2013년까지 ‘정은혜 가(歌) 시리즈’를 통해 판소리 다섯 바탕을 매년 번갈아 완창하고 있는 악바리답게 당차게 메디아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메디아가 악녀의 대명사로 비치는데 철저하게 남성의 시각이라고 생각해요. 이 작품에 나오는 노래에 ‘죄를 짓는 것은 남자, 하지만 벌을 받는 것은 여자. 세월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법칙’이라는 가사가 있는데 메디아의 처지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어요.” 기독교 신자인 그는 얼마 전 메디아를 위해 기도하면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실존 인물이든 아니든 2400년 동안 그녀에게 맺힌 억울하고 답답한 한을 우리가 해오름극장에서 넋풀이해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주여, 그녀의 한을 풀어주소서’라고 백 번은 외친 것 같아요.”

그는 일찌감치 예비 스타로 주목받았는데도 지난 2009년 국악계에 환멸을 느껴서 경영학을 공부하러 미국에 가기도 했다. 지치고 힘들어 떠났지만 국악을 그만 두자 반년을 앓아 누워야 했다. 결국 그는 되돌아와 자기 길을 걷고 있다. 그래서인지 메디아에 더 많이 공감한다고 말했다. “극복하는 삶을 살았던 메디아가 저하고 맞는 것 같아요. 서재형 연출가가 제 안의 그런 모습을 보신 것 같습니다.”

<메디아>에는 김준수(이아손 역), 윤석안(크레온), 민은경(크레우사), 이시웅(메디아 아버지), 허애선(유모) 등과 김금미 이연주가 코러스장으로 출연한다. (02)2280-4114~6.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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