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찬 8개 백반이 5000원..술꾼 성지순례하는 골목시장
박찬일의 음식만행(飮食萬行) - 충무로 인현시장
보통 충무로를 붙여서 부르는 ‘충무로 인현시장’이라는 명칭을 아는 서울 시민은 거의 없다. 지하철 3호선 충무로역 8번 출구에서 진입할 수 있다. 중구 인현동 일대에 있는 이 시장은 본래 해방 후에 번성하기 시작해서 지금도 명맥을 잇고 있다. “아니, 거기에 시장이 있었어?”하게 마련인 묘한 위치에 있다.
서울시는 과거 풍전호텔(지금의 PJ호텔) 남쪽에서 남산까지 이어지는 고층 주상복합을 건설했다. 신성상가, 진양상가, 인현상가를 일컫는다. 이 일대는 보통 ‘진양꽃상가’가 알려진 정도이고, 이마저도 강남에 꽃시장의 주도권을 내주면서 지금은 많이 소외됐다.
상가가 지어질 당시는 충격적이었다는 후문이다. 세운상가와 함께 도심형 주상복합의 세계를 알린 것으로 유명하다. 19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에 완공되었고, 당시로써는 최고 인기 주상복합 아파트로 명성을 떨쳤다. 현재도 재건축 수요 등으로 3억 원 이상의 호가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도 특색이다. 이 상가 아래쪽 통로 뒤에 있는 골목 시장이 바로 인현시장이다.
싸고 푸짐한 주점 수두룩
저녁 장사를 준비하며 쪽파를 다듬는 임재임(69) ‘안동집’ 주인의 설명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인현시장은 이미 해방 직후에도 소매시장으로 유명했다. 무허가 점포도 난립해서 서울시가 나서서 대대적인 정비작업을 하기도 했다.
현재는 100개가 조금 넘는 점포가 남아 장사를 한다. 소매 종합시장으로서 면모가 남아 있는 것은 업종에서도 알 수 있다. 신발가게, 방앗간, 과일과 채소가게, 정육점도 있다. ‘청년지원사업’ 등으로 죽어가는 전통시장을 살리자는 운동이 벌어진 것이 10여 년 전부터인데, 이 시장은 먹자골목으로 나름 제 몫을 하고 있어서 아직 청년들의 진입은 거의 없다. 카레를 파는 ‘서울털보’라는 가게 정도가 드문 청년 점포다.
서울로 시집와서 먹고 살려고 순댓집을 시작했고, 이제는 신선한 해물을 판다는 안동집 임재임씨의 기억이다. ‘호래기’라고 부르는 꼴뚜기를 비롯해 갑오징어·병어 등 해산물이 풍성하다. 이런 안주도 좋지만, 고향 안동의 맛인 배추적(배추전)을 시켜서 누런 양은주전자에 담아주는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켜면 오래된 옛 주점의 고마움을 알게 된다. 안동의 명물인 문어 숙회도 판다.
인근의 ‘진미집’도 ‘전라도식 술상’으로 단골이 많다. 인터넷에서 더 유명한 집이기도 하다. 안동집 맞은편 술집 ‘칠갑산’의 주인은 ‘관절염 수술로 3개월 후에 나옵니다’라고 안내문을 붙여 놓았다. 노인 업주가 대부분인 동네 정서를 요약해서 보여주는 대목이다. 무릎 아픈 할머니들이 힘겹게 장사를 이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전통시장의 몰락세를 감지하기 어려울 만큼 나름 핫한 골목인데도 그렇다.
이 골목의 최강자는 ‘통나무집’이다. 무려 40년이 넘은 노포 급이다. 단돈 2만원에 한 상 가득 안주를 차려내는데, 해산물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안주를 엄청나게 내준다. SNS에서 제일 유명한 집이 바로 이곳이다. 낮술을 마시는 이들도 많고 저녁에는 줄을 선다. 언제나 가성비는 인기 있었지만, 최근의 성가는 아무래도 SNS 덕이 크다. 이른바 성지순례의 장소가 된 것이다. 이 때문에 단골로 다니던 동국대생들이 자리가 없어서 잘 찾지 못한다고 한다.
반찬 8개 백반 한 상이 5000원
이제는 그 유명했던 생선구이 전문집도 두어 곳 외에는 업종을 바꾸었다. 생선 재료비가 많이 오른 데다 생선 굽는 인건비도 부담이 됐고, 무엇보다 근처 상주인구가 줄어든 탓이다.
요즘도 시장 안 점심 밥값은 5000원에 불과하다. 백반 한 상 가격으로는 도심이 아니라 서울과 대한민국 전체를 통틀어서 최저가 수준이다. 밥 한 상에 일고여덟 가지 반찬이 오른다. 이렇게 팔아도 남는가 물었더니 “안 남아도 근처 인쇄소 사람들이 찾아주니까 값을 못 올린다”는 게 상인들의 설명이다.
술집 두어 곳에서 한두 잔씩 마시다 보면 술이 불콰해진다. 서울 도심의 몇 안 되는 시장이 여전히 신기한데, 맛집도 많아서 맛 좀 아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하나 인현시장의 운명도 앞을 내다볼 수 없다. 근처 상가가 재개발로 모습을 바꾸게 될 예정이어서다. 술꾼으로서는 다만 오랫동안 변하지 않고 살아남아 있기를 바랄 뿐이다.
글 잘 쓰는 요리사. ‘로칸다 몽로’‘광화문 국밥’ 등을 운영하며 음식 관련 글도 꾸준히 쓰고 있다. 본인은 ‘한국 식재료로 서양요리 만드는 붐을 일으킨 주인공’으로 불리는 걸 제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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