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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도의 톡톡 생활과학] 인간을 따뜻하게 하는 기술, '착한 기술' 뜬다

기자는 매일 시내버스를 타고 출퇴근한다. 그런데 문득 본 TV 광고에서 재미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브라질의 빈민촌에서 PET 병을 이용해 집 안을 환하게 밝힌다는 내용의 공익광고였다. PET병과 표백제만 있으면 집안을 환히 밝힐 수 있다니... 신기하기만 했다. 비싼 전기료를 감당하지 못해서 전기 없이 지내야만 하는 빈민들을 위한 ‘착한 기술’이었다. 착한 기술은 ‘적정 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이라고도 불린다. 독일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가 ‘작은 것이 아름 답다’라는 책에서 지역에서 생산되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저렴하고,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사용법을 쉽게 익힐 수 있는 기술 개발을 제안한 데서 유래했다. 식수와 식량, 전기 등을 공급 받지 못해 고통을 겪는 지구촌 사람들의 삶을 개선해주고 싶다는 따뜻한 마음이 들어있다. 적정기술, 즉 ‘착한 기술’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2002년 브라질 상파울루의 알프레도 모제가 발명한 페트병 전구는 쉬운 제작과정에 비해 큰 효과를 낼수 있는 대표적인 적정기술이다.




‘1리터의 빛’(a liter of light)으로 불리는 PET병 전구는 2002년 브라질 상파울루에 사는 평범한 정비공인 ‘알프레도 모제’가 발명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PET병과 물, 표백제만 있으며 만들 수 있다. 투명한 페트병 바닥에 깔릴 정도로 서너 숟가락의 표백제를 넣는다. 이후 페트병에 물을 넣고 잘 섞는다. 그리고 지붕에 구멍을 내고 페트병 상부를 천정 바깥 햇빛에 노출시키면 된다. 페트병에 햇볕이 내리쬐면 빛의 산란 작용이 일어나는데, 표백제가 이 산란 작용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때 생기는 빛이 55~60W급 가정용 일반 전구와 비슷한 밝기를 낸다. 이 페트병 전구는 대략 10개월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해가 지는 밤에는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약점이다. 하지만 가난에 찌든 빈민가의 삶의 질을 조금이라도 높여주는 기술로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남미 등지에서 활발하게 보급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무거운 주머니가 가진 중력 에너지를 빛으로 바꿔주는 ‘중력 조명’은 한 번 내려오는데 25분간 불을 켤 수 있다.


밤에 쓸 수 있는 ‘중력 조명’(Gravity Light)이 개발됐다. 말 그대로 중력 에너지를 이용한 조명이다. 모래 등을 채운 주머니가 중력의 힘에 의해 하강하면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빛으로 바꿔준다. 주머니의 무게는 8~12.5㎏이다. 주머니를 끝까지 올렸다가 놓으면, 중력에 의해 주머니가 서서히 내려오면서 발전 장치를 가동시키는 원리다. 주머니가 한 번 내려올 때마다 약 25분 동안 전등을 켤 수 있다. 조명의 밝기는 석유 등불보다 밝고 3단계로 조절이 가능하다. 중력 조명은 2013년 영국의 한 디자인업체 간부인 마틴 리디포드와 짐 리브스가 고안했다. 이들은 사회적 기업인 ‘데시와트’(Deciwatt)를 만들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세계 인구의 20%에 가까운 13억명 이상이 전기 시설이 없어 불편을 겪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석유 등불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회사 측은 초기 구입비가 들기는 하겠지만, 석유 구입비를 절약할 수 있으므로 몇 주만 지나면 본전을 뽑고도 남을 것이라고 말한다.

전기를 만드는 축구공 ‘소킷’은 발전기와 충전기가 내장돼 있어 놀 때 발생하는 운동 에너지를 전기로 바꿔준다.


전기를 만드는 축구공 ‘소킷’(SOCCKET)도 있다. 놀 때 발생하는 운동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바꿔주는 장치이다. 공 안에 발전기와 충전기가 내장돼 있어 운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꿔 저장한다. 공 표면에 플러그가 있어서 필요할 때 전등을 꽂아 쓰면 된다. 이 아이디어는 2008년 미 하버드대에 다니던 제시카 매튜스와 줄리아 실버맨이라는 2명의 여학생이 수업 과제로 발표한 것이다. 이들은 2011년 사회적기업 ‘언차티드 플레이’(Uncharted Play)를 창업했다. 이들은 매튜스 부모의 나라인 나이지리아에만 3만5,000개의 소킷볼을 공급했다. 매튜스는 소킷볼에 이어 전기를 만들어내는 줄넘기 줄 ‘펄스’(PULSE)도 개발했다. 자전거 발전기처럼 회전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바꿔주는 장치다. 양쪽 손잡이에 모터와 리튬 전지가 있어, 줄 넘기를 할 때 모터가 돌아가며 전기를 만들어 전지에 저장해놓는다. 이 줄로 줄넘기를 15분 하면 전등을 2시간 켤 수 있다.

휴대용 여과장치인 ‘생명의 빨대’(Life Straw)는 물을 빨아들이면 내부에서 정수가 돼서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해준다.


전 세계 낙후된 지역의 가장 큰 고민은 ‘물’이다. 7억5,000만명이 매일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해 불편을 겪고 있으며, 매년 250만 명이 정수된 물을 공급받지 못해 죽어가고 있다. ‘생명의 빨대’(Life Straw)는 길이 25cm 정도의 휴대용 여과장치다. 물을 빨아들이면 내부에서 정수가 되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다. 덴마크 기업가인 미켈 베스터가르트 프란젠이 깨끗한 물을 구하지 못해 오염된 물을 마실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미생물·기생충의 99.9%, 박테리아의 98.2%를 걸러낸다. 약 700 리터의 물을 정수할 수 있는데, 이는 한 사람이 1년 동안 사용하기에 충분한 수준이다. 가볍고 휴대하기 편하며 어떠한 전력공급도 부품교체도 없다. 필터는 3단계로 이루어진다.

50리터의 물을 채우고 다닐 수 있는 큐드럼은 물을 먼 곳에서 길어야 하는 수고를 덜어준다.


물이 부족한 아프리카에서는 마실 물을 구하기 위해 먼 길을 왕복해야 한다. 물을 긷는 일을 주로 여성과 아이들에게 맡겨진다. 양동이를 오랫동안 이다 보면 목과 척추가 다칠 위험이 있다. 바퀴 모양의 물통 ‘큐드럼’(Q Drum)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했다. 알파벳 Q자처럼 생겨 큐드럼으로 불리는 물통은 한 번에 50리터의 물을 옮길 수 있다. 한스 헨드릭스와 피에트 헨드릭스 형제가 개발한 큐드럼은 바퀴처럼 생긴 물통 가운데에 뚫려 있는 구멍에 줄을 넣어 수레처럼 끌고 다닐 수 있도록 만들었다. 큐드럼에는 최대 50리터의 물을 채울 수 있다. 가득 채웠을 때 무게는 54.5kg이지만. 사용했을 때 실제 느껴지는 무게는 4.5kg 정도에 지나지 않아 물을 쉽게 운반할 수 있다.

‘와카워터’는 낮과 밤의 온도 차이가 심한 기후 특성을 이용한다. 나무틀과 나일론으로 만든 탑으로 밤 사이 맺힌 이슬을 모아 물을 만드는 원리다.




이탈리아 디자이너 아르투로 비토리가 이끄는 ‘아키텍처 앤 비전’팀은 에티오피아에 맑은 물을 주기 위해 특별한 방법을 고안했다. 2012년에 개발한 약 9m 높이의 거대한 꽃병 모양 탑인 ‘와카워터(WakaWater)’이다. 아프리카는 낮과 밤의 기온차가 심하다. 밤 사이 맺힌 이슬을 나무틀과 나일론 소재로 만들어진 와카워터 탑 아래 공간에 모이게 한다. 이렇게 해서 모이는 물방울들은 하루에 95리터나 된다고 한다. 와카워터 하나를 만드는 데 1,000달러가 드는데, 펌프나 우물을 설치하는 것보다는 저렴하다. 또한 탑을 만드는 데에는 1시간 정도면 충분하고, 한 번 지으면 6~10년은 사용할 수 있다.

천연 냉장고인 ‘팟인팟쿨러’는 젖은 흙에서 물이 증발하면서 열을 빼앗는 원리를 이용한다. 보통 2~3일이면 상하는 토마토를 3주까지 보관할 수 있다.


낙후된 지역에서는 음식을 저장하는 것 또한 큰 문제다. ‘팟인팟 쿨러’(Pot-in-Pot cooler)는 냉장고를 대신할 항아리이다. 나이지리아의 모하메드 바 아바가 고안한 천연냉장고다.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큰 항아리 속에 작은 항아리를 넣은 뒤 항아리와 항아리 사이엔 물에 젖은 흙을 넣는다. 그리고 항아리 위에 헝겊을 덮어두면 젖은 흙의 물이 증발하면서 작은 항아리 안에 있는 열을 빼앗게 된다. 시원해진 작은 항아리는 농산물을 오랫동안 보관할 수가 있다. 그냥 바깥에 보관했을 때 2~3일이면 상하던 토마토가 파인팟 쿨러를 사용하면 약 3주 정도 보존이 가능하다. 나이지리아의 시골에서는 운송수단, 물, 전기가 없어 수확한 농산물의 보관 문제가 농부들의 걱정거리인데 팟인팟쿨러를 사용해 경제적인 이득을 볼 수 있다.

사탕수수 찌꺼기로 만든 숯. 나무를 태울 때보다 연기도 적고 화력도 세다.


개도국에서는 나무나 석탄, 동물들의 배설물 등을 연료로 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이 연료를 태우는 과정에서 일산화탄소 같은 유독 물질이 배출돼 호흡기 질환을 일으킨다. 이로 인해 목숨을 잃는 사람이 매년 400만명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사탕수수 찌꺼기로 만든 숯이 연료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고 있다. 개발도상국들은 사탕수수를 재배해 소득을 얻는데, 사탕수수를 추출하고 난 후에는 많은 찌꺼기가 남는다. 연간 60억톤 정도 재배되는 사탕수수는 설탕을 추출하고 난 쓰레기가 된다. MIT의 D-lab에서는 사탕수수 숯을 개발했다. 사탕수수 숯을 만들기 위해선 높이 1m 정도의 가마가 필요하다. 세 명이 하루에 약 80~100㎏을 생산할 수 있다. 사탕수수 숯은 나무를 태울 때보다 연기를 적게 내고 화력도 충분하다. 사탕수수 숯을 판매해 경제적인 이득을 얻을 수도 있다.

G-saver를 사용하면 열효율이 높아 하루 평균 1,850원l, 연간 40만원이 난방비를 절약할 수 있다.


몽골은 겨울 기온이 최고 영하 50도까지 떨어져 연료 구입비로 많은 지출이 발생한다. 난방비조차 없는 빈곤층의 경우 중앙 난방 배관이 매립돼 있는 맨홀에서 생활하기도 한다. 특히 약 120만 명이 거주하고 있는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시에는 유연탄, 나무 등에 의한 매연 발생으로 대기 오염이 심각한 상태다. 몽골 국립과학기술대 김만갑 교수는 굿네이버스와 함께 2009년 11월 기존 난로보다 높은 열효율(연료 사용량 40% 감소)을 보이고 있는 ‘G-saver’ 모델을 개발했다. G-saver를 사용하면 가구당 평균 하루에 한화 1,850원. 연간 40만원의 난방비 절감 효과가 있다.

‘Ad-Specs’는 눈이 나빠도 시력 교정을 받을 수 없는 개발도상국 사람들을 위한 착한 안경이다.


개발도상국의 사람들은 시력이 나빠도 시력 교정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그 사람들의 수는 무려 670만 명에 달한다. 이들에겐 안경이 필요하지만 안경을 맞춰주는 검안사는 백만 명당 한 명 꼴로 그 수가 매우 적고, 비싼 안경값 때문에 일부 여유가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안경을 맞출 수 없는 실정이다. 애드 스펙스(Ad Specs)는 검안사가 없어도 스스로 원시, 근시에 맞추어 안경의 도수를 조절할 수 있는 혁신적인 제품이다. 옥스퍼드 물리학 교수인 조슈아 실버가 개발한 이 안경은 양쪽에 달린 주사기로 실리콘 오일을 넣거나 빼서 렌즈 모양을 변형시킨다. 가격은 19달러 이지만 추가 기술 개발로 1달러까지 낮출 예정이다.

이처럼 활용도가 높고 간편한 ‘착한 기술’들이 하나둘 축적된다면, 환경 파괴적 기술들로 채워져 있는 우리의 문명 생활도 더 깨끗해질 것이다. 앞으로도 다양하고 유익한 기술이 더욱 발전해, 따뜻한 혁신이 지속 되기를 바란다. /문병도기자 d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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