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연금이 대한항공 경영진의 일탈 행위에 대해 2대 주주(12.5%) 자격으로 기금운용본부 명의의 공개서한을 발송하고, 경영진 면담을 추진하기로 했다. 30일 열린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회의에서 위원장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제안에 나머지 위원들이 공감을 표시한 데 따른 것이다.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는 경영진의 불법, 부도덕한 행위를 제어해 결과적으로 국민 재산을 지킨다는 점에서 당연한 조처다.
국민연금은 그동안 의결권에 찬반을 표시하고 배당 확대를 제한적으로 요구하는 데 그쳤다. 이번에 국민연금이 적극적 행동을 하기로 결정한 데엔, 대한항공을 포함한 한진그룹 대주주이자 경영진인 조양호 회장 일가의 비위 행위로 기업 가치가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회사 차원의 적절한 후속조처가 없었던 탓이 크다. 지난 4월 불거진 이른바 ‘물컵 투척사건’에 이어 밀수, 관세포탈, 재산 국외도피 등 갖가지 일탈 행위가 쏟아져 나오는 와중에 조양호 회장이 내놓은 대책이라고는 조현아·조현민 두 딸을 그룹 경영진에서 사퇴시킨다고 발표한 것뿐이었다.
국민연금이 대한항공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비공개 서한을 이미 한차례 보냈지만, 돌아온 답변은 ‘사태가 끝나면 대책을 내겠다’는 식의 무성의한 내용이었다고 한다. 주요 주주마저 무시하는 오만한 태도라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국민연금은 이번 공개서한에서, 주주들을 안심시키고 경영을 안정시키기 위한 대책을 제시하라고 대한항공 경영진에 요청할 계획이다. 경영진 면담을 통해선 관련자 해임 같은 구체적 요구를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회사와 주주들에 큰 손실을 끼친 경영진이 물러나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일각에선 정부 영향권에 있는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을 지나치게 간섭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국민연금 규모가 현재 600조원대에서 2044년 2500조원까지 비약적으로 커지는 추세여서, 기업 입장에선 걱정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회사의 품격이 떨어지고 주가가 추락하는데도 주요 주주가 팔짱만 끼고 있는 건 더 큰 문제일 것이다.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존중하되 불법·비리 경영진을 견제하고 일탈을 바로잡는 일엔 국민연금이 힘을 보태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다하는 게 옳은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