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익 아닌 총수 사익 위해 동원된 재벌 공익법인

공정거래위원회가 1일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의 운영실태 조사 결과를 내놨다. 결론부터 말하면 본래 목적인 공익사업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경영권 유지와 승계, 세금회피 등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를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사회공헌 사업을 통해 공익증진에 기여하라며 최대 지분 5%까지 상속·증여세 등 세금을 면제해준 취지가 무색할 지경이다. 대기업 공익법인은 공시의무가 없다. 이 때문에 어떤 활동을 하는지, 정관이나 이사 구성은 어떤지, 수익은 어떻게 내고 있는지 파악할 길이 없었다. 이런 측면에서 전수조사를 통해 실체를 확인한 것은 의미가 크다.

조사결과 대기업집단 57개 중 56개가 공익법인 165개를 갖고 있었다. 이 중 상위 10대기업 소속이 66개였다. 공익법인 1곳당 평균 자산규모는 1229억원이었지만 10대기업은 2021억원으로 규모가 컸다. 쉬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10대기업 공익법인은 일반 공익법인보다 계열사 주식을 4배나 많이 갖고 있었다. 이들이 주식을 보유한 119개 계열사 중 57개사는 후계자들이 지분을 함께 소유하고 있었다. 공익법인이 후계자 회사라는 얘기이다. 씀씀이도 이해할 수 없다. 공익법인 전체로 보면 고유 목적 사업에 수익과 지출의 3분의 2를 썼다. 하지만 10대기업으로 좁히면 3분의 1만 고유목적에 쓰고, 3분의 2는 수익사업에 사용했다. 공익 사업은 말뿐이고, 사실상 경영권 승계에 동원되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 재벌 공익법인은 보유 계열사 주식으로 의결권 행사 시 100% 찬성률을 보였다. 공익법인이 기업 인수·합병 시 신규 출자자금 제공, 지분매입 우회 지원 등의 통로로 사용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공익법인이 총수 일가의 친위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은 새삼스럽지 않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정에서 순환출자 문제를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삼성물산 주식을 사들여 이 부회장의 실질 지분율을 높였다. 한진 조양호 회장이 이사장인 정석인하학원이나 박삼구 회장이 이사장인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은 다른 계열사 지원의 우회통로 역할과 함께 경영권 분쟁을 측면 지원했다.

이미 더불어민주당의 박영선·박용진 의원이 공익법인의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는 법안을 발의한 상태이다. 공정위는 의결권 제한 시 총수 일가의 지배력이 어느 정도 축소되는지 시뮬레이션을 통해 후속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한다. 공익법인을 수술대에 올려야 한다는 것은 재벌 지배구조 개혁을 위해 당연한 수순이다. 좌고우면할 까닭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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