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피해 구석기 시대로

딩굴딩굴 알타미라

주말이면 정말 손가락 하나 까딱이고 싶지 않다. 평일 내내 쌓인 피로를 풀고 싶은데 어느새 청소기는 방문 앞까지 침범했다. 소음을 피해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데 엄마가 이불을 홱 걷어낸다. 내 몸이 고대 화석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으면 좋겠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진회색 암석이면 좋았으련만. 홍대 ‘딩굴딩굴 알타미라’는 나와 비슷한 종족들을 위한 구석기 동굴이 있는 곳. 세상에서 추운 게 가장 싫은 나는 코타츠 안으로 설렁설렁 기어 들어간다. 떡볶이 1인분에 컵라면을 주문해놓고 중학교 때 읽었던 순정만화를 뒤적이니 이곳이 바로 낙원이다.

만화책을 무려 2만 5000권이나 소유하고 있는 사장님은 마음껏 누워 있으라고 각 방마다 칸막이를 쳐두었다. 이것 참 내 프라이버시까지 완벽히 보장해주니 귤이나 까먹으면서 더 퍼질러 누워있어 야겠다. 여기라면 엄마도 찾지 못할 테니까. 1시간 3000원, 종일권 1만 5000원.

ADD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29길 21

TEL 02-322-7676

HOUR 매일 11:00~24:00

Intern_윤소진 sojin@univ.me

Photographer_이서영

여행자의 기분으로 머물 수 있는

연극보다 만화

대학로 ‘연극보다 만화’는 깔끔한 게스트하우스 같은 곳. 여행자의 마음에 따라 좋아하는 만화책을 풀어놓기만 하면 된다. 진지하게 각 잡고 봐야 하는 성장만화라면 긴 테이블에 혼자 앉으면 되고, 순정만화라면 담요를 덮고 굴속으로 들어가자.

사실 만화 카페는 만화책만 많으면 장땡인 줄 알았는데, 이곳은 가래떡 치즈구이부터 에이드까지 메뉴가 프랜차이즈 카페에 버금간다. 뜨끈한 코타츠 안에 발을 쭉 뻗고 말랑말랑한 가래떡을 오물대면서 『다정다감』 을 읽었다. 초등학교 때는 모든 사랑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한다고 믿었기에 이 만화의 애매한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성인이 돼서 다시 읽어보니 모든 관계엔 정답이 없단 생각이 든다. 일상의 고단함을 내려놓고 이번 겨울에는 코타츠 안에서 나오지 말아야겠다. 1시간 2400원, 종일권 1만 8000원.

ADD 서울 종로구 동숭길 64 지하1층

TEL 02-766-1475

HOUR 매일 11:00~23:00

Intern_윤소진 sojin@univ.me

Photographer_이서영

코타츠에서 잠깐 쉬어 가

쉼표

만화책만 보면 왜 죄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나 했더니, 어른들 몰래 숨어 읽던 기억 때문이었다. 교과서로 가려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보거나 책상 서랍에 반쯤 걸쳐 놓고 수학 문제 푸는 척하며 봤었다. 시간이 지나자 이것도 귀찮아져서 아예 만화책을 손에서 놓은 지 오래였다.

그렇게 만화를 멀리하며 재미없게 지내다, 춥고 심심했던 참에 만화카페 ‘쉼표’에 들렀다. 만화책들의 위엄에 기가 눌린 것도 잠시, ‘쉼표’의 세심한 배려 덕에 왕년에 만화 좀 보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다.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직원이 직접 추천한 만화들이 적힌 칠판을 참고하면 좋다.

코믹, 순정, 스릴러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다양한 장르가 반기고 있다. 어떤 자세로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일단 가볍게 코타츠에 몸을 넣어보자. 저절로 만화책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훈훈함 진동하는 코타츠에서 하루 종일 편안히 뒹굴거리라고 친절히 베개까지 준비해두었으니, 만화책 재미 본지 까마득하다면 ‘쉼표’에서 만화책 한 권 어때? 1시 간 2400원, 평일 종일권+음료 1만 5000원.

ADD 서울 동작구 사당로 295 지하1층

TEL 02-532-8220

HOUR 월~목, 일요일 10:00~02:00, 금, 토요일 00:00~24:00

Intern_이연재 jae@univ.me

Photographer_이서영

겨울을 버티게 해줄 1평

즐거운 작당

어렸을 적 구석에 대한 집착이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했다. 식구들과 한 방에서 부대끼며 지내다 보니 본능적으로 독립된 나만의 공간을 찾아다녔다. 그게 책상밑이나 깜깜한 장롱 안이어도 좋았다. 나에게 필요했던 공간은 딱 1평이었다.

홍대 만화카페 ‘즐거운 작당’ 엔 1평 조금 못 미치는 따스한 구석이 있다. 심지어 많은 이들의 생을 ‘현망진창’으로 만든 코타츠까지 준비돼 있다. 3만 5천 권의 만화책들을 천천히 둘러보다 몇 권 집어 코타츠에 다리를 쏙 넣었다. 구석의 묘미는 뭐니 뭐니 해도 어두컴컴함. 미니 스탠드 불빛을 달빛 삼아 만화책을 읽기 시작했다.

노곤해지는 몸을 코타츠에 더 깊숙이 넣고 시간 가는 것도 잊은 채 뒹굴거렸다. 아무래도 이번 겨울은 거뜬히 버틸 수 있을 것만 같다. 대신 한번 들어가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코타츠 개미지옥은 알아서 감당하시길! 평일 1시간 2000원, 1일 1만원, 주말/휴일 1시간 3000원, 1일 1만 5000원.

ADD 서울 마포구 독막로7길 23 대동빌딩 지하1층

TEL 02-336-9086

HOUR 매일 11:00~23:00

Intern_이연재 jae@univ.me

Photographer_이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