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홍콩보안법'을 강행하자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홍콩에 부여한 특별 지위를 철폐하는 절차를 시작하겠다"고 보복 의사를 밝혔다. 투자, 무역, 비자 발급 등에서 홍콩을 중국 본토와 다르게 특별 대우하고 있는 혜택을 없애 중국의 자본 조달, 수출 창구 역할을 하는 홍콩의 기능에 타격을 가하겠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도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홍콩은 중국·미국·베트남에 이어 넷째 수출 시장이다. 지난해 홍콩에서 송환법 시위가 벌어지자 대홍콩 수출이 31% 급감했었다.
금융에도 악영향이 예상된다. 미국 의도대로 홍콩의 금융 허브 기능이 훼손되면 홍콩 주가 하락, 위안화 가치 급락을 낳고, 이는 한국 투자자들의 손실과 원화 환율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국내 투자자가 홍콩H지수에 연계된 주가연계증권(ELS)에 투자한 돈이 28조원에 달하고, 최근 원화 가치는 위안화 가치와 거의 같은 움직임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코로나 위기에 이어 또 하나의 대형 악재가 추가된 것이다.
경제 차원을 넘어 더욱 본질적인 문제는 한국이 미·중 어느 편에 설 것인지 선택해야 할 시점이 앞당겨지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 워싱턴에서 열릴 예정이던 G7(주요 7국) 정상회의를 9월로 연기하고, 여기에 한국과 호주·러시아·인도 정상도 초대하겠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들과 "중국의 미래에 대해 논의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한국도 대중국 봉쇄 전선에 동참하라는 뜻이다.
코로나 확산으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대선을 앞두고 반중(反中) 세계질서 재편으로 성과를 보이려 한다. 경제번영네트워크(EPN)란 경제블록 구상을 내놓고 한국을 포함한 우방의 참여를 요청하고 있다. 중국 내 생산기지를 미국이나 미국이 믿을 수 있는 우방 국가로 옮기고, 5G·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미국 중심의 글로벌 분업체계를 새로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지난주 미 국무부 등은 홍콩보안법 반대 전선과 반중 블록에 한국을 포함한 우방국들이 동참할 것을 공개 요청했다.
영국·캐나다·호주 등은 미국과 공동으로 대중 비난 성명을 내는 등 반중 전선에 속속 동참하고 있다. 일본도 자국 기업이 중국 공장을 일본으로 옮기면 이전 비용을 전액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을 마련했고, 세계 1위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는 120억달러를 투입해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군사력은 물론 기술, 자본, 통화 패권 등에서 우세한 미국 쪽에 가세하는 것이 국익에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미국의 주요 동맹·우방국 중 한국 정부만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 초기 중국인 입국 금지를 회피하고, 주한미군 사드 장비 교체도 중국에 미리 통지하는 등 중국 눈치 보기로 일관하면서도 미국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나 홍콩보안법 사태에 대해선 일체의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있다. 정부는 국익을 위한 '전략적 모호성'이라고 한다.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선 미묘한 입장에 놓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눈치 보기가 길어져 선택의 골든 타임을 놓치면 미국 주도의 새 경제블록에서 낙오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