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 ‘디뮤지엄’이 20대 핫플레이스가 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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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6.05.05. 오후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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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개관특별전 관람객 26만명 중 20대가 68%
대중취향 맞춘 전시에 인증샷 장려 마케팅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공유되며 입소문
#디뮤지엄 해시태그만 10만여건 이상돼
20대 관람객 “재미있고 쉬운 예술에 호응”
미술계, 주목은 하지만 “너무 상업적이다”


지난해 말 개관한 서울 한남동 디뮤지엄 전경. 개관특별전 ‘아홉 개의 빛, 아홉 개의 감성’의 누적 관람객은 약 26만명이며 이 가운데 20대는 68%를 차지했다. 디뮤지엄 제공

1.인스타그램에서 빛나던 전시회를 가다



전국에서 가장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는 아파트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남더힐’이다. 대중 교통을 이용해 이 아파트를 찾아가는 건 제법 고된 일이다. 토요일이던 4월30일 오후 2시 한남더힐로 들어가는 골목 어귀엔 20대로 보이는 수십명의 젊은이들이 줄을 서 있었다. 미술관 ‘디뮤지엄’이 5월8일까지 진행하는 개관특별전 ‘아홉 개의 빛, 아홉 개의 감성’을 보러 온 이들이다.

사진 공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는 #디뮤지엄 게시물이 10만여건 이상 올라와있다. 인스타그램 화면 캡처

요즘 20대들에게 디뮤지엄은 ‘핫’한 공간이다. 사진 공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보면 디뮤지엄이라는 해시태그(#)가 붙은 게시물은 10만2900여건이 넘는다. 최근 운전기사 상습 폭언·폭행 의혹이 불거진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이 대표이사로 있는 대림문화재단의 미술관이기도 하다. 대림문화재단은 2002년 서울 통의동 ‘대림미술관’과 2012년 신진작가를 지원하기 위한 공간인 서울 한남동 ‘구슬모아 당구장’에 이어 지난해 12월 말 ‘디뮤지엄’을 열었다. 디뮤지엄은 개관특별전 누적 관람객이 약 26만명(5월3일 기준)에 이른다고 밝혔다. 전체 관람객 가운데 20대는 68%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반면, 40대 이상 관람객은 10%에 머물렀다. 디뮤지엄엔 무엇이 있기에, 20대를 사로잡고 있을까.



서울 한남동 디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아홉 개의 빛, 아홉 개의 감성’전시 공간에서 관람객들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박현정 기자

2. 어둠 속에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영화표보다 저렴한 8천원(온라인 회원은 20% 할인)을 내고 미술관 안으로 들어섰다. 2431㎡(735평) 면적 위에 2층으로 들어선 공간은 ‘아홉 개의 빛, 아홉 개의 감성’이라는 전시 콘셉트에 맞추어 9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9개의 독립된 공간에서 빛을 이용한 설치, 조각, 영상 등 9개의 ‘라이트 아트’ 작품을 관람하도록 돼 있다. 첫번째 전시공간에 들어서자 작품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어둠 속에서 너나할 것 없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관람객들의 모습이다. 매시 정각 진행되는 전문해설(도슨트) 프로그램이나,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작품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전시 공간에 견줘 관람객 수가 많아 진득하게 작품을 감상하기는 쉽지 않았다. 생경하고 부산한 광경에 당황하긴 했지만, 곧 전시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종이들이 바람에 날아가는 모습을 빛으로 연출한 작품이라는 ‘미러 브랜치 대림’을 넋놓고 보았으며, CMYK(파랑·자주·노랑·검정) 조명을 활용한 공간에선 그림자가 다양한 색깔로 나타나자 휴대폰을 꺼내들어 사진을 찍었다.

지난해 대림미술관에서 열린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 -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의 기록’ 포스터. 대림미술관 제공

3. 디뮤지엄의 모태, 서촌 ‘대림미술관’

디뮤지엄을 이해하기 위해선 앞서 서촌에 자리잡은 대림미술관의 궤적을 따라가 볼 필요가 있다. 주택을 개조해 만든 아담한 공간인 대림미술관은 2010년 영국의 패션 디자이너인 폴 스미스의 수집품을 전시한 ‘인사이드 폴 스미스’ 전이 화제를 모으며 전환점을 맞았다. 이후 샤넬 수석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미국의 젊은 사진작가 라이언 맥긴리, 사진작가이자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 아내였던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 등 ‘대중 취향저격’전시로 흥행몰이를 해왔다. 다른 미술관이 금기시해오던 사진 촬영을 자유롭게 허용하고 ‘인증샷’을 장려하는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전시회 외에도 파티·콘서트·벼룩시장(플리마켓)·무엇인가를 만들어볼 수 있는 워크숍 등 다양한 유·무료 프로그램을 선보였는데 이러한 전략은 디뮤지엄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대림미술관과 디뮤지엄에서는 콘서트·파티·워크숍 등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이 열리고 있다. 디뮤지엄 제공

4. 왜 대림미술관·디뮤지엄에 갔나요?

최근 디뮤지엄의 가죽 공예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는 직장인 이진희(여·23)씨는 대림미술관이 너무 무겁지 않은, 쉽게 접근가능한 전시 기획으로 예술의 문턱을 낮췄다고 평가했다. “티켓을 한번 사면 전시 기간 동안 재입장이 가능해 대림미술관에 마실가듯 자주 가는 편이에요. 입장료도 부담이 가지 않는 가격이라 가려고 마음먹는 게 쉬운 것 같아요. 그리고 주변 친구들은 사진 촬영에 제약이 없는 점을 매력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SNS엔 보여주기식 글이 많이 올라오는 데 이러한 문화로 인해 (대림미술관이나 디뮤지엄이) 더 시선을 끄는 것 같아요. 예술이 일상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선 대림미술관이 흥미롭습니다.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는 쉬운 예술을 젊은이들이 원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대학생 이수현(여·23)씨는 영국 런던에서 미술관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부터 미술관을 찾게 됐다. 당시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과 정기적으로 미술관에 가는데, 디뮤지엄도 그 중 하나였다. 진희씨나 수현씨 모두 학교에서 미술관이나 예술 작품을 접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고 했다.

블로그 ‘사진은 권력이다’를 운영하는 40대 남성 블로거인 썬도그도 20대들이 왜 대림미술관과 디뮤지엄에 열광하는지 호기심을 품었다. 그는 이진희씨와 비슷한 의견을 내놓는다. “대부분의 사진 갤러리가 예전과 비교해 변한 게 없어요. 아무래도 대중보다는 콜렉터(작품 수집가)들을 위한 공간이기 때문인데 대중을 따라가는 게 꼭 옳은 건 아니지만 (대림미술관이) 그 문턱을 낮춘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가 보기에, 많은 관람객들은 예술을 소비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셀카’를 찍는다. 이러한 셀카를 올리는 데는 인스타그램만한 것이 없다. 인스타그램의 급성장과 디뮤지엄에 대한 열띤 반응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군기무사 자리에 들어선 국립현대미술관.

5. 미술관도 생존이 어려운 시대

시각문화연구자인 윤원화씨는 디뮤지엄이 특별한 공간이라기보다는 2010년 이후 미술관의 변화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본다. 미술관들이 대중문화와 구별되는 고유한 영역에 있기 보다는, 스스로 경쟁력 있는 대중매체가 되려하는 게 일반적인 추세라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국내 미술시장이 위축되면서 상업 화랑들은 대형 작가들에 집중했고, 정부는 문화의 힘을 강조하는 만큼 문화의 성공을 요구했다. 과거 미술관들은 미술시장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절대적 가치의 수호자를 자처했는데, 이러한 위상은 콜렉터나 기업, 정부가 사적 신뢰나 공적 책임에 따라 제공하는 지원으로 뒷받침됐다. 그러나 이제 국·공립을 포함해 대다수 미술관은 기금을 따든 수익을 창출하든, 자신의 경쟁력과 가치를 입증하지 않으면 운영이 안 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까닭에 대림미술관을 바라보는 미술계의 시선은 복잡하다. 수익을 거두기 힘든 현실에서 관객이 몰리는 대림미술관 행보에 주목하는 한편, 이러한 행보가 너무 상업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미술관 학예사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대림미술관이나 디뮤지엄 전시는 한번 투자해 6개월 가까이 전시하는 그러니까 적은 투자로 큰 수익을 거둘 수 있는 ‘블록버스터’ 전시다. 작품이 미술사적으로 의미있다거나, 한국 미술 발전에 기여한다고 평가하긴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다.



디뮤지엄 2층에 위치한 뮤지엄 숍. 디뮤지엄 제공

6. 결국 에코백을 사들고 나오다

‘아홉 개의 빛, 아홉 개의 감성’을 돌아보는 데 걸린 시간은 1시간 남짓이었다. 마지막 전시 공간을 빠져나오자 에코백이나 문구류, 엽서, 잡지, 작품 도록 등을 파는 뮤지엄숍이 나타났다. 도록을 뒤적이던 한 20대 여성은 친구에게 속삭였다. “이런 걸(작품 설명) 모르고 사진만 찍었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지?” 진열된 상품들은 눈길을 끌기 충분했다. 결국, 에코백 하나를 사들고 미술관을 나섰다.

열흘 전 디뮤지엄에 다녀온 40대 여성의 감상평은 이랬다. “전시관 화살표를 따라가다 보니, 숍과 카페에 다다랐다. 그곳에서 느낀 것을 이야기한다든지 새로운 자료를 얻는다든지 하기엔 많이 부족했다. 미술관 바깥으로 고급 주택과 요식업체들이 있어 이 공간은 따로 존재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공간이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낫고, 젊은 친구들도 문화를 즐기고 누릴 곳이 부족하니 이쪽으로 모이는 게 아닐까. 새로운 문화 트렌드로 보면 간단하다. 다만, 문화보다 소비가 압도하는 미술관이 많아지는 게 과연 좋은 일인가 싶다.”

박현정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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