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바로가기

기사 상세

사설

[사설] 정규직 전환 대혼란, 정부의 모호한 정책이 사태 키웠다

입력 : 
2020-02-12 00:02:01

글자크기 설정

정규직 전환 방식을 둘러싸고 한국가스공사와 비정규직 노조 간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그동안 '자회사 채용'을 거부하며 '직접 고용'을 요구해온 비정규직 노조가 7일부터 무기한 파업에 돌입한 데 이어 10일에는 대구 본사 사장실까지 점거했다. 이에 사측은 "법과 원칙에 따른 엄중 대응"을 천명해 사태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집단 해고와 가스공사 파업 등 정규직 전환을 놓고 공공기관 내 혼란과 갈등이 잇따르는 것은 무엇보다 정부의 모호한 정책과 성과주의 탓이 크다.

정부가 2017년 7월 마련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기간제 노동자는 기관이 직접 고용해야 하지만, 파견·용역 노동자는 자회사 채용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공공기관들은 작년 말까지 비정규직 8만5786명 중 47.1%(4만397명)를 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공공기관들로선 공공성과 함께 경영 효율성도 고려해야 하는 만큼 인건비와 복지 혜택 부담이 상대적으로 큰 직접 고용을 꺼릴 수밖에 없다. 반면 노동계는 "무늬만 정규직"이라며 직접 고용하지 않으면 파업으로 맞서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정규직 전환을 노사 합의에만 맡긴 채 '2020년 20만5000명 정규직 전환' 목표 달성만 종용하고 있다. 정규직 전환 범위와 방식, 채용 방법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의 기준이 모호해 노사·노노 갈등이 확산되고 되레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있는데도 외면하는 눈치다.

무리한 정규직 전환은 청년 취업을 가로막고 공공기관의 경영 효율성마저 훼손할 우려가 크다. 인력 수급이 공기업 자체 수요가 아닌 정부 정책에 따라 이뤄지면, 비용 증가로 적자가 쌓이게 되고 이를 세금으로 메울 경우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 정부가 노동자의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에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노동시장의 현실을 외면한 채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 역효과만 날 뿐이다. 노사 갈등과 혼란을 부추기는 정규직 전환 정책을 이제라도 재검토하고 노동개혁을 통해 고용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