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수 기자의 미래이야기] ‘블랙 스완의 법칙’이 21세기를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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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9월 3000명의 목숨을 앗아간 미국 역사상 최악의 9·11테러 △ 2008년 5월 사망자 약 6만9천명을 발생시킨 진도 8.0규모의 중국 쓰촨성 대지진 △ 2008년 9월에 발생한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 2010년 12월 아프리카의 튀니지에서 발생한 재스민혁명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또 △ 2014년 4월 진도 앞바다에서 희생자 304명(사망자295명·실종자9명)과 함께 침몰한 세월호 △ 2011년 3월 일본 미야기 현 근해에서 발생한 진도 9.0의 대지진과는 어떤 점이 비슷할까?

어느 누구도 정확하게 예견하지 못했던 황당한 대형 사건이라는 점이다. 왜 이처럼 21세기 들어 상상하기조차 힘든 초대형 사고들이 잇따르는 것일까? 이 같은 사태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할까?

# 고작 100년 사는 인간이 모르는 것들은?

칠면조 한 마리가 있었다. 푸줏간 주인이 1000일 동안 매일 맛있는 먹이를 주고 정성껏 돌봐주자 칠면조는 주인이 자기를 끔찍이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1001일이 되는 날 주인은 추수감사절용으로 칠면조의 목을 땄다.

먹이를 주던 그날 새벽까지 칠면조는 몇 시간 뒤 운명을 몰랐고 먹이를 주는 주인은 자신을 보살펴주는 천사라고 믿었다. 그 천사가 자신을 잡아먹는 ‘악마’가 될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영원할 것 같은 일들이 한순간의 공염불로 끝나게 만드는 리스크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칠면조의 삶에서 보는 것처럼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일, 상상하기 힘든 일이 갑작스럽게 우리 곁에 일어나는 현상을 ‘블랙 스완’이라고 한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뉴욕대 교수는 저서《블랙스완》에서 “전혀 발생할 것 같지 않았던 극단적 상황이 개인은 물론 기업의 운명을 지배하고 있으며 21세기에는 이 같은 현상이 더욱 심해지기 때문에 이를 경계하라”고 조언한다.(필자 저서 《넥스트 패러다임(이케이북 펴냄)》인용)

# 자신이 경험한 것만 믿는 오류에 빠지다

‘스완’하면 여러분 머릿속에는 무엇이 떠오르나요? ‘흰색’이미지가 연상된다. 17세기말 서구인들도 ‘스완’이라고 하면 누구나 흰색을 생각했다. 그런데 호주를 방문했던 유럽 사람들이 1697년 처음으로 그곳에서 검은색 백조(흑고니)를 봤다.

검은색 백조를 본 유럽인들은 본국으로 돌아가 검은색 백조가 있다고 말하자, 이를 아무도 믿지 않았다. 검은색 백조를 본 일이 없는 유럽인들에게 ‘백조가 희다’는 경험상의 법칙이 당시 사회의 정설, 즉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넥스트 패러다임은 ‘검은색 백조’도 있다는 게 진실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검은색 백조는 사회의 통념이 됐고 사람들 생각의 패러다임도 바꿔놓았다.

지동설이 등장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태양이 돈다’는 사실이 당시 사회를 지배하는 정설, 즉 패러다임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지구가 돌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옳다는 것을 증명했고 그 때문에 종교 재판에 부쳐졌다.

그리고 로마 교황청의 위협으로 천동설의 서약서에 서명하면서 "그래도 지구는 돌고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지동설을 주장하는 이단자라는 죄목으로 7년 동안 투옥됐지만, 끝내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아 화형에 처해졌다.

지금은 누구나 지동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갈릴레이가 1632년 지동설을 증명하는 책을 냈을 당시 갈릴레이는 ‘미친 놈’에 불과했다.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것, 천동설을 믿는 사람에게 당시의 넥스트 패러다임인 지동설은 터무니없는 허구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 당신은 통계, 데이터를 맹신하고 있는가?

탈레브 교수는 “블랙 스완의 등장은 과거 경험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세상이 됐음을 의미한다”고 진단한다.

이는 21세기를 지배하는 넥스트 패러다임 현상이기도 하다. 뜻하지 않았던 일, 즉 전혀 예상치 못했던 리스크들이 개인은 물론 기업과 국가의 운명을 바꾸는 ‘블랙 스완의 법칙’이 작동하고 있다.

그런데 블랙스완의 현상은 매우 극단적이고 예외적인 일들이기 때문에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급효과를 가져다준다.

# 끊임 없이 등장하는 ‘블랙 스완’의 현상들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 국민은 세월호 침몰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비극을 경험했다.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그 배가 침몰할 것이라는 ‘블랙 스완’과 같은 상황을 전혀 예상조차 못했다. 하지만, 배는 침몰했고 소중한 목숨은 우리 곁을 떠났다.

곧이어 2014년 10월 17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의 야외공연장, 환풍구 덮개가 무너져 관람객 27명이 약 20m 아래 주차장 환풍구 바닥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16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그 환풍구가 그렇게 부실할 것으로, 환풍구가 붕괴될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블랙 스완’의 현상이 현실로 발생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46분 미야기현 산리쿠(三陸) 앞바다에서 규모 9.0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이 지진은 안전대국 일본의 원전 안전에 대한 믿음을 송두리째 무너뜨렸고 2만 명이 넘는 인명피해를 발생시켰다.

이 지진의 발생으로 일본 열도가 동쪽으로 약 2.4m 움직였으며 지구의 자전축도 변화시켜 하루의 길이도 1000만분의 16초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1923년 발생한 관동대지진 이후 88년만에 나타난 최악의 지진이었다.

# 21세기, 한치 앞도 예견하기 힘들다

21세기 ‘블랙 스완’의 현상은 한치 앞도 예견하기 힘들다.

2007년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2008년 9월,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했다. 경제대국 미국의 추락은 1929년 발생했던 경제대공황을 버금가는 세계적 경제혼란을 야기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미국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될 것으로, 세계 금융시장의 허브 월스트리트와 금융자본주의가 맥없이 붕괴될 것으로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했다. 그 수많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조차 위기를 예견해 경고하지 못했다.

21세기에 나타나는 ‘블랙 스완의 현상’은 예측불허인데다 파괴적이고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2010년 12월 18일 아프리카 튀니지에서 발생한 시민혁명은 중동 민주화를 촉발시켰다. 아프리카를 넘어 요르단, 알제리, 수단, 이집트, 리비아까지 철권통치, 독재정권이 맥없이 무너졌다.

과거에도 ‘블랙 스완의 현상’이 가끔 발생했다. 1989년 11월 9일 서동과 동독을 가로막던 베를린 장벽이 붕괴됐다. ‘자유 왕래’ 허용이 부른 ‘블랙 스완’과 같은 갑작스런 일이었다.

1991년 12월 25일 저녁 7시(모스크바 시간) 공산주의 소련이 붕괴되면서 냉전시대가 종언을 고했다. 놀라운 역사적 사건이었지만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어쩌면 남북 통일도 이처럼 전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갑작스럽게 발생할 수 있다. 블랙 스완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블랙 스완, 지구적인 성공신화도 만들어낸다

블랙 스완의 또 다른 특징은 지구촌을 들썩하게 할 정도의 성공신화도 만들어낸다는 사실이다.

가수 싸이는 ‘강남스타일’로 21세기형 미디어인 유튜브를 공략해 단 2개월만에 월드스타가 되는 ‘블랙 스완’의 역량을 발휘했다. 그가 전통 미디어인 방송국과 신문의 도움을 받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전세계인 누구든지 접속할 수 있는 유튜브 2억7천만 건 접속이라는 대기록이 만들어낸 놀라운 결과였다.

싸이도 이 같은 결과가 생길 것으로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싸이의 성공신화는 21세기가 요구하는 넥스트 패러다임에 정확히 올라탄데 있었다.

미국최초 오바마 흑인대통령의 탄생, 메르스와 신종플루 사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경남기업 사태 등도 블랙스완의 현상과 맥락이 닿아 있다.

비즈니스계도 마찬가지다. 세계 최고 휴대폰 제조회사 노키아의 몰락, 가전 왕국을 만들었던 ‘일본 부흥’의 상징 소니의 추락, 20세기 사진의 대명사로 군림했던 코닥의 쇠망, 혁신의 아이콘 애플의 부상 등은 세상의 변화, 넥스트 패러다임이 만들어낸 결과물들이다.

# 왜, 갈수록 예측하기 힘든 시대가 되는 걸까?

왜 갈수록 한치 앞을 예측하기 힘들어질까? 탈레브 교수는 “과거 경험과 데이터, 통계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게 불가능해졌음에도 사람들이 과거 사례에 집착하기 때문이다”고 분석한다.

현대인과 현대 기업이 저지르는 가장 큰 오류 중 하나는 통계의 늪에 빠져 그 통계와 숫자를 절대적으로 신뢰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래는 과거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펼쳐진다.

특히 도저히 발생할 것 같지 않은 ‘블랙 스완’의 현상이 우리의 삶을 지배할 수 있다. 100년 밖에 못사는 사람들이 1000년에 한번 나타나는 ‘블랙 스완’, 1만년만에 나타나는 불가사의, 200년만에 발생하는 충격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개인은 물론 조직과 기업, 국가의 미래에도 운명을 바꿀 ‘블랙 스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패러다임 변화 속에 우주여행이 가능해지고 불가능한 일들이 가능해지고 있다. 과거 누구에게나 진리로 받아들여졌던 믿음도 송두리째 깨지는 일이 생기고 있다. 몰락의 ‘블랙 스완’이 아니라 부활과 성공을 이끄는 ‘블랙 스완’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최은수 MBN 경제부장 mk9501@naver.com

권력 이동의 미래를 예견한 국내 첫 다보스 리포트 '힘의 이동(매일경제, 공저)', 21세기
지구촌 변화상을 분석한 미래서적 '넥스트 패러다임(이케이그룹)',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
모델을 제시한 '미션 10만달러(매일경제, 공저)' 등의 책을 펴낸 미래 경영전략학 박사(Ph.D)다.
매경'세계지식포럼 팀장', MBN 정치부장을 거쳐 현재 MBN 경제부장으로 미래 세대(2030)를 위한
청년포럼 'MBN Y포럼'을 총괄하고 있다.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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