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 선호도 ‘꼴찌’…유학생도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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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5.07.13. 오후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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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적인 인재 하나가 수만 명을 먹여 살린다. 이런 인재는 1만 명, 10만 명 중에 하나가 나오기 때문에 국내에선 많아야 400~500명이다. 천재급 인력을 확보하려면 전 세계를 돌며 국적에 상관없이 인재를 찾을 수밖에 없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말이다. 이 회장은 인재 확보, 특히 국내를 넘어 해외 우수 인재의 확보에 과하다 싶을 정도로 집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전자가 2013년 신규로 해외에서 채용한 인원은 9만7937명에 달했다. 전체 28만6283명 가운데 외국인 임직원은 84개국에 걸쳐 약 19만 명에 이른다. 국내 인력이 33%, 해외 인력은 67%로 외국인 직원이 배 이상 많다.

삼성전자뿐이 아니다.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해외 우수 인재 채용이 한때의 트렌드가 아닌 기업의 생존 조건으로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현대엠코와의 합병을 통해 건설 업계 톱 10에 진입한 현대엔지니어링은 화공·전력·인프라 등 플랜트 부문의 전체 직원 중 5% 정도가 외국인 직원으로 채워져 있다. 지난해 2월에는 인도 출신의 라메시 부장을 방글라데시 가스 압축설비 프로젝트 현장 소장으로 임명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하기도 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이처럼 해외 인재 영입에 공을 들이는 것은 다국적 인재 영입을 통해 글로벌 엔지니어링 기업으로 변신하겠다는 전략 때문이다.

적절한 노동 인력 공급은 이미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이슈다. 유엔은 미래보고서를 통해 “이민 유입만이 저출산 극복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지적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또한 ‘세계이민보고서’에서 “향후 수십 년간 노동 공급 부족 현상이 예상되며 이에 따라 노동 이주의 수용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외국인 직원 19만 명 넘어

미국·독일·일본 등의 선진국들은 이미 이러한 노동 부족 현상 해결을 위해 힘을 쏟고 있다. 외국인 전문 인력 유치를 위한 취업 이민 쿼터 상향 조정, 전문직 취업 비자 제도와 점수제 운영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 정부도 지난해부터 ‘창조 경제 구현을 위한 경제 개혁 3개년 계획’에 외국인 투자 활성화, 해외 석학급 인재 및 우수 신진 연구자 유치를 통한 중소기업·대학의 글로벌 경쟁력 제고 등을 국정 과제로 제시했다.

기업의 해외 인재 영입 확대와 정책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현실이 녹록하지만은 않다. 타워스왓슨과 옥스퍼드이코노믹이 공동 조사한 ‘글로벌 인재 2021’에 따르면 한국의 2021년 인력 부족 지수는 9.3%에 달할 전망이다. 2013년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이 조사한 글로벌 인재 확보 경쟁력 지수에서도 한국의 글로벌 인재 유인 경쟁력은 103개 국 중 66위, 인재 유지 부문에선 41위에 그쳤다. 한국에서 일하게 될 절대적인 노동인구 자체가 부족하고 이를 만회하기 위한 해외 인재 확보의 가능성도 매우 낮은 수준이라는 뜻이다.

설상가상으로 한국 기업을 바라보는 해외 인재들의 시선도 그리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국제 취업 정보 전문 업체인 잡스트리트(JobStreet)가 아세안 지역 국가들을 대상으로 기업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한국 기업에 대한 선호도는 자국 기업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략적인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미국계 기업〉유럽계 기업〉일본계 기업〉자국계 기업〉한국계 기업순이다. 이 조사는 2008~2010년 사이에 인도·베트남 등 아세안 7개 국가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이 꾸준히 늘고 있고 전체 인구 대비 비중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국내 체류 외국인은 157만6000명으로, 2000년의 49만1000명에 비해 3.2배나 늘었다. 연평균 증가율도 9.4%에 이른다. 그런데 흔히 외국인 노동자로 부르는 ‘단순 기능 인력’이 전체 외국인 체류자의 31.7%를 차지해 가장 많다. 반면 기업과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해 영입에 노력을 쏟고 있는 ‘전문 인력’은 2003년 2만3000명에서 2013년 5만 명으로 2배 이상 늘었는데 전체 외국인 중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3.5%에서 3.2%로 뒷걸음질했다. 더욱이 단기 취업, 회화 지도, 예술 흥행 등을 제외한 교수·연구·기술지도·전문 직업 등의 전문 인력 규모는 2013년 현재 2만5000명에 불과하다. 미래 우호 인력인 유학생 수도 감소 추세다. 외국인 유학생은 2003년 약 1만 명에서 2013년 8만2000명으로 급격히 늘었지만 2011년 8만8000명을 정점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전체 외국인 체류자 중 유학생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0년 6.9%에서 2013년 5.2%로 떨어졌다.

기업은 물론 한 국가의 성패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는 단연 인재다. 최근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도 급속한 글로벌화와 함께 해외 인재 확보가 중요한 인사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수년 전만 해도 국내 기업들의 해외 인재 영입은 해외에 거주 중인 국내 인재들, 즉 ‘해외파’ 확보 수준에 머물렀다. 한국 기업들이 생각하는 ‘글로벌 인재’의 의미가 외국어 구사 및 현지 경험 정도에 가까웠다는 뜻이다.

전체 외국인 중 전문직 비중은 줄어

최근 IOM이민정책연구원의 조사 결과를 보면 예전과 다른 인식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외국인 전문 인력을 채용하는 이유에 대해 물은 결과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연구·기술 능력 확보’가 제일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해외 기술 및 지식의 이전, 국내에서 부족한 연구·기술 전문 인력 충원, 해외시장 진출 및 국제화 기반 마련, 해외시장 정보 수집 등이 뒤를 이었다. 종합해 보면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화를 위해 해외 인재 채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뜻이다.

인구구조의 변화, 성장 잠재력 하락, 글로벌 진출 등 기업의 해외 인재 영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특히 외국인 전문 인력은 국가적 지식 역량을 높이고 기업의 경쟁력을 단기간에 가장 효과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다만 국내 기업은 해외 인재를 영입한 후 이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유지하는 노하우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한광모 전 타워스왓슨코리아 상무는 “아시아 지역 기업의 인재 확보·유지 동인에서 ‘직속 상사’라는 동인이 기본급이나 경력 개발, 업무 스트레스 등과 함께 나타나는 것을 눈여겨봐야 한다”며 “직속 상사 등 동료와의 관계가 급여를 결정하거나 경력 개발 기회를 제공하는 데 핵심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분석했다.

남용 전 부회장 시절, LG전자가 과감히 시행했던 해외 인재 영입은 실패한 전략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남 전 부회장은 LG전자를 글로벌 톱 3로 만들겠다는 비전 실현을 위한 방안의 하나로 ‘글로벌화’에 전력을 기울였다. 상징적인 예가 부사장급 임원의 대대적인 물갈이였다. 남 전 부회장은 2007년 말부터 LG전자의 부사장급 이상인 ‘C레벨’ 임원 전체를 외국인으로 채웠다. 이들은 모두 맥킨지·존슨앤드존슨·IBM 같은 글로벌 기업에서 활약하던 인재들이었다.

결론적으로 남 전 부회장의 인사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2010년 LG전자는 핵심 외국인 임원 5명과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 이유는 실적 부진이었다. 2010년 당시 LG전자의 영업이익은 2009년에 비해 89% 이상이 날아간 상태였다. 극심한 실적 부진의 배경에는 ‘소통’ 부족이 꼽혔다. 언어의 장벽으로 외국인 임원들과 국내 임직원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막이 생겼고 이런 문화가 회사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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