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생각의 '크기'…마크 저커버그의 기부가 빛나는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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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5.12.03. 오후 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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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창업자 겸 CEO 마크 저커버그와 중국계 아내 프리실라 챈이 페이스북 보유지분 중 99%를 기부하기로 했다는 기사가 각 언론에 대서특필 됐습니다. 제각각인 제목들에는 두 가지 포인트가 있습니다. 하나는 숫자입니다.

‘우리돈 52조 원’이라는 금액의 어마어마함, 보유지분의 99%를 기부한다는 기부의 ‘통 큼’이 읽는 이의 시선을 압도하지요. 둘째는 “딸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라는 기부의 의도입니다.  많은 기사-특히 어제 온라인에 미리 올라왔던 기사-들은 전자에 좀 더 무게를 두었습니다.

기부의 양적인 면에 주목을 하면 그 다음에 따라 나올 얘기들은 대체로 이런 것들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부자들은?” “그렇게 기부를 해도 세금을 왕창 뜯기는 게 아니니까 거액 기부 가능한 것 아냐?” “자선 재단 만들고 그거 경영권 차지하면 어차피 주머니돈이 쌈짓돈 아니야?” “1%의 지분만 갖고도 페이스북의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있으니까 가능한 일 아니야?”  

미국 클린턴 행정부의 노동장관이었고, 지금도 대표적인 진보주의 경제학자로 꼽히는 로버트 라이시 교수는 이런 주장도 내놨습니다. “저커버그의 기부는 매우 좋은 일이다. 그런데, 저커버그 부부가 기부한다는 금액의 70%는 실제로 그들이 내는 것이지만 나머지 30%는 우리들이 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들 부부의 과세대상 소득이 기부로 인해 줄어들게 되고, 그만큼 세금을 덜 내게 되기 때문에, 줄어든 세수는 우리가 메꿔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논의들도 가치 있는 이야기들이긴 하지만, 저는 좀 다른 점에 주목하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기부하는 사람의 생각의 크기와 구체성입니다.

저커버그 부부는 기부 의사를 ‘딸에게 주는 공개 편지’의 형식으로 밝혔습니다. 대부분의 언론 기사는 이 편지의 주요 내용을 요약했습니다. 질병 없는 세상, 평등이 증진되어 보다 많은 사람들이 능력을 펼치고, 그러한 공헌이 집약되어 인류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세상에서 딸이 살아가길 원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보다 많은 분들이 편지 원문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갓 태어났다는 저커버그의 딸이 읽을 수 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수능시험을 준비하거나 이미 치른 한국사람이 못 읽을 만큼 어려운 영어도 아닙니다. ▶ 원문 보러가기

편지 글이 감동적이어서 이른바 ‘발번역’이라도 해서 올려볼까 하다가 포기했는데, A4 용지 6장 분량에 이를 정도로 양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어려운 사람들 돕는 일에 써 주십시오.” 하고 그냥 쾌척한 게 아닙니다.

A4 용지 6장에 걸쳐서 의약,  경제, 과학 등의 다양한 분야에 걸쳐 어떠한 이상을 실현하고 싶은지, 그걸 위해서는 어떠한 과제의 극복이 필요한 지를 적어나간 겁니다. 평소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겠습니까. 그리고, 그 이상은 보편적 인류의 삶을 지금보다 한 단계 끌어올리겠다는 겁니다.

이 얼마나 ‘큰’ 생각입니까. 가난 구제를 나라가 할 수 있느니 없느니 정도의 차원이 아니라, ‘지구상의 인류 전체가 지금보다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논할 수 있는 부자가 우리나라에는 몇 명이나 있었습니까.
마크 저커버그 (사진=게티이미지)
더욱 부러운 것은, 실리콘 밸리에 저 정도 생각의 크기를 가진 사람이 마크 저커버그 말고도 많다는 겁니다. 실리콘 밸리에서 세계적인 기업을 일으킨 사람들에겐 공통점이 있습니다. 가정집 차고나 허름한 공작실에서 미약하게 시작했다 하더라도, 생각은 창대하게 했다는 겁니다.

“세상에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다” -> “나는 이러이러한 기술이 있다/ 기술을 개발하겠다” -> “그 기술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겠다” 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하는 방법입니다.

돈은 그 과정에서 따라오는 겁니다. 상장과 동시에 수십억 달러를 넘어가는 벤처기업을 탄생시킨 창업자 CEO들은 “내가 요 장사를 하면 얼마 벌 수 있을까”를 앞에 두기보다는 “세상의 문제 중 어떤 것을 내가 해결할 수 있을까. 내 기술로 어떻게 세상을 바꿔놓을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했습니다.

몇 개 도시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를 사막에 짓고, 전 세계에 기구나 글라이드를 띄워 인터넷이 없는 곳을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등의 프로젝트는 “그거 해서 얼마 버는데?” 식의 사고만 갖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페이스북만 하더라도, '지구상의 모든 이들을 연결하겠다'는 거대한 생각이 아니었다면 지금같은 규모로 성장하지 못했을 겁니다. 마크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을 키워나가던 첫 단계에 초기 창업자들을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몰아낸 얘기가 "소셜 네트워크"라는 영화에도 나오죠.

지금 유추해 보면 '생각의 크기'가 다른 사람들과 오래 같이 갈 수는 없다는 이유때문에 '몰아내기'를 택했던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일론 머스크 (사진=게티이미지)
 

'생각의 크기'라면,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테슬라가 지금이야 잘 나가는 회사지만, 2003년 창업 당시만 해도 무모하기 이를 데 없는  도전이었습니다. 하이브리드 차도 장사가 안되는 시절에 100% 전기로 가는 스포츠카를 만들겠다니요.

그렇지만 머스크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원대한 목표가 있었고, 뚝심으로 그 목표를 달성해가고 있습니다. 테슬라 이후 머스크는 요식업에 투자하고 있지도, 유럽 명차 딜러십에 투자하고 있지도, 면세점에 투자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전기 자동차 배터리 기술을 토대로,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를 저장하는 가정용 대용량 전지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제프 베조스 (사진=게티이미지)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는 어떻습니까. ‘재사용 가능한 로켓’을 개발하는 경쟁에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와 함께 몰두하고 있습니다. 아마존의 자금과 조직력을 동원해 커피 프랜차이즈를 곳곳에 연다거나, 생활용품 마켓을 미국 전역에 세울 수도 있을텐데, 도무지 언제 이익이 날 지 모르는 우주 사업에 억만금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인류가 우주에 나가서 살 수 있는 시대를 앞당기겠다”는 무모한 포부와 거대한 사고가 없다면, 돈만 갖고는 할 수 없는 사업입니다.

이런 생각의 크기가 실리콘밸리를, 미국을 세계 1위 국가로 만드는 힘인 겁니다. 전세계의 뛰어난 두뇌들을 빨아들이는 것은 단지 돈이나 안락한 생활 같은 보상이 아닙니다. “나만큼, 아니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과 위대한 일을 해보고 싶다”는 동기부여,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나라도 가진 게 없던 시절에는 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가난한 어촌의 텅 빈 모래사장을 보며 거대한 조선소와 철강 공장을 상상하고, 봉제 미싱이나 돌리던 시대에 반도체 수출을 구상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구상을 실제에서 구현하는 과정에 여러가지 문제가 있어 지금껏 논란이 되긴 하지만, 아무튼 그런 ‘큰’ 생각을 가진 사람들, 무모해 보이는 목표에 영혼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아프가니스탄과 별로 다를 바 없이 살던 나라의 경제력이 그래도 이만큼 올라온 겁니다.

그런데 21세기의 한국은 어떻습니까. 모든 분야에서 거대한 벽에 가로막힌 것 같은 요즘, 보다 크고 창의적인 생각이 필요해 보입니다. 

▶ [비디오머그 풀영상] 딸 출산한 저커버그와 아내…그들이 바라는 미래    

이현식 기자(hyunsik@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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