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진실이 궁금해서, 죄책감 때문에…나는 정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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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6.12.23. 오후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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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정덕 오브 정덕 “내가 정덕이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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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회사 ‘유벨’ 찾은 독일 정덕 ㄱ씨

“익숙한 독일 지명들이 언론에…틈날 때마다 최씨 행적 추적
심증이 물증으로 바뀌자 한국에 알려야겠다는 사명감 느껴”

최순실과 정윤회가 재산을 은닉하기 위해 1990년대 독일에 ‘유벨(Jubel)’이란 회사를 설립한 사실을 밝혀낸 사람은 검찰도, 기자도 아니었다. 독일에 살고 있는 40대 중년의 평범한 교민이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독일 ‘수사팀장’을 자처하고 있는 트위터리안 아바리스(@abaris)는 최순실 관련 의혹이 한국에서 처음 보도될 때만 해도 ‘대형 스캔들이 또 터졌구나’라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퇴근 후 헬스를 하고, 주말엔 책을 보던 그의 단순한 일상을 흔들어 놓은 것은 최순실이 독일에 유령회사 ‘비덱’을 세웠다는 경향신문의 보도였다. “그때부터 제가 살고 있는 프랑크푸르트의 익숙한 지명들이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하더라고요.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됐어요.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하는 호기심도 커졌고요.”

오랫동안 독일에서 사업을 해온 그는 거래처 기업 정보를 파악할 때 활용했던 기업정보 사이트 ‘머니하우스’를 토대로 최순실의 차명재산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의심 가는 업체의 이름이 나오면 독일 뉴스와 SNS를 검색하며 퍼즐을 맞춰나갔다. 최씨의 차명재산으로 추정되는 프랑크푸르트 근교의 부동산은 직접 찾아가 눈으로 확인하기도 했다. “거의 두달간 하루종일 맹렬하게 뒤졌어요. 운전을 하다가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자료를 찾아봤죠. 3시간이면 도착할 거리를 5시간 걸려 다니곤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찾아낸 것이 바로 ‘유벨’이었다. 정유라(Chung Yoo Ra)의 이름을 검색하다가 실수로 ‘정윤(Chung Yoon)’이라고 오타를 쳤더니 예상치 않게 정윤회(Chung Yoon Hoe)가 1992년 최순실과 설립했던 회사 이름이 뜬 것이다. 그는 “역사적 발견을 한 것이라 자부하고 있다”면서 웃었다. “정윤회, 최순실, 정유라의 이름으로 아무리 검색해도 나오지 않던 그 회사를 우연히 찾게 된 것은 최순실이 국민들에게 재산을 돌려줘야 한다는 신의 뜻으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밝혀낸 은밀한 사실들을 한국에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트위터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의 트위터를 본 다른 누리꾼들에게서 각종 제보가 쏟아졌다. 독일에서는 회사를 설립할 때 반드시 본인의 서명이 필요한데, 제보를 바탕으로 추정해 본 최씨의 출입국 시기와 유령회사들이 설립된 시기를 대조해보니 정확히 동선이 겹쳐졌다.

최씨의 은닉 재산을 찾는 데는 현지 언론을 움직이는 것도 방법이라 생각한 그는 독일 내 모든 신문사의 트위터 계정에 제보도 했다.

그는 일반 시민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끝나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검에서 모든 것을 파헤쳐주길 열망합니다. 만약 최순실의 독일 은닉 재산이 최종적으로 한국으로 환수된다면 ‘내가 한국인으로서 정말 의미 있는 일을 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 것 같아요.”


■김기춘 거짓말 잡아낸 주갤 정덕 ㄴ씨

“얄팍한 변명 일삼는 김기춘 그대로 둬선 안된다는 생각 들어
청문회 제보 뒤 나 같은 시민도 할 수 있는 일 있단 걸 깨달아”

시종일관 최순실과의 관계를 부정하던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눈빛이 흔들리던 시각, ‘청문회 스타’로 떠오른 ‘주식갤러리(주갤)’에서는 “해냈다”는 환호가 쏟아졌다. 최순실이 언급되는 2007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검증 청문회에 등장한 김기춘의 동영상을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보한 ‘○○’에게는 “순대국밥을 쏘겠다”는 감사의 댓글들이 달렸다.

제보자 ○○의 정체는 금융권에 종사하는 ‘평범한’ 30대 직장인 ㄴ씨였다. 그는 스스로를 “직업상 여당 성향을 갖고 있어야 성공에 유리하지만 야당 성향을 띤, 그러나 운동권은 아닌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자신은 박 의원의 전화번호를 수소문해 동영상을 전달하는 역할만 했을 뿐 집단지성의 힘을 보여준 사례라고 강조했다.

“사실 이걸 보낸다고 의원이 확인해볼까 하는 의구심은 있었어요. (일개 시민인) 내가 뭘 한다고 세상이 전진하는 것도, 뒤로 가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고요. 그렇지만 얄팍한 변명으로 빠져나가려는 김기춘 같은 사람들을 그대로 둬선 안된다는 생각에 밑져야 본전이란 마음으로 보냈죠.” 그는 그렇게 청문회에 제보를 한 첫번째 시민이 됐고, 평범한 사람들의 분노가 모였을 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던 그의 바람은 현실이 됐다.

ㄴ씨는 ‘정덕’으로 거듭나게 된 계기에 대해 “그간 진실을 외면하려 했던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라고 말했다. 2014년 정윤회 문건이 유출됐을 때는 ‘행정관 하나 잘린 것이 뭐 그리 대수냐’ 싶었고,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도 가슴은 아팠지만 얼마나 큰 문제인지 잘 몰랐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와 퍼즐을 맞춰보니 그간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못했던 것이 너무 미안해졌다는 것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자신의 존재가 드러날까 두려워 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지만 “나와 같은 일개 누리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 응하게 됐다고 말했다.

‘주식 빼고 다 잘하는’ 주갤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명탐정 갤러리로 거듭나게 된 데는 익명의 힘이 컸다고 분석했다. 다른 사이트와 달리 본인 인증절차가 없기 때문에 누구든 자유롭게 글을 올릴 수 있다는 장점이 십분 발휘된 덕이란 것이다. 이후 ‘주갤’은 ‘우병우 찾기’로 또 한 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주갤이 원래 정치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게시판은 아니었어요. 제가 보기에는 정치에 큰 관심없던 진짜 평범했던 사람들이 나라 돌아가는 꼴 보고 열 받아서 뭐라도 해보자 나서다가 이런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아요.”

그는 “감시하지 않는 권력은 무의미하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역설했다. “네거티브를 공작 정치로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데, 뽑은 사람을 철저히 검증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해요.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줘야 합니다.”


■박근핵닷컴 만든 IT 정덕 강윤모씨

“뉴스 보며 답답해하는 사람들 위해 탄핵 참여 사이트 개설
박근핵닷컴처럼 정치에 IT 접목한 시도들 많이 생겨났으면”

11월 초의 어느 저녁, 회사에서 촛불시위 생중계를 휴대폰으로 보고 있던 한 시민이 있었다. 마음은 이미 광화문 광장에 있었지만 회사 잔업 때문에 갈 수가 없었다. 그때만 해도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지 않을 때였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로 ‘살수차’가 뜨는 등 정부의 강경 진압 우려도 커지고 있었다.

‘뉴스만 보며 답답해하는 사람들까지 직접 참여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촛불시위도 중요하지만 우리들이 진짜 해야 할 일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키도록 국회의원들을 움직이는 것 아닐까.’ 그로부터 약 한달 후인 12월1일. 익숙하면서도 낯선 단어 하나가 검색어에 올랐다. ‘박근핵닷컴’. 유권자들이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e메일을 보내 박 대통령 탄핵을 요청하고 그에 대한 답변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웹사이트였다. 22일 오후 현재까지 이 사이트를 통해 청원에 참여한 사람은 92만명이 넘는다. 구글이 발표한 ‘2016년 한국의 뉴스·사회 분야 인기 검색어’에서 ‘박근핵닷컴’은 3위를 차지했다.

그 한 시민이 바로 미국 스타트업 기업인 ‘피스컬노트’의 강윤모 한국 지사장이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개발자 동료 3명이 ‘박근핵닷컴’ 프로젝트에 동참했다. 강씨에 따르면 이들 역시 다른 IT(정보기술) 스타트업에 근무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특이사항이 있다면 이들은 시국에 대한 분노를 자신들의 재능기부를 통해 풀었다는 점, 그리고 이들 중 한 명의 부모님은 ‘여전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자’라는 점이다.

“우리들끼리 처음부터 했던 이야기가 ‘탄핵을 선동하진 말자’였어요. 다만 탄핵을 원하는 사람들이 저렇게 많으니 그들이 안전하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돕자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죠.”

명확한 목표가 있었기에 기획부터 준비까지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의원들의 e메일 주소를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오가며 받았던 명함들을 활용했고 국회 사이트 등을 참고했다. 홈페이지 도메인은 강씨가 사비를 털어 준비했다. 서버 유지 비용이 늘어나면서 후원금을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인 금액이 3900만원 정도. 이 금액은 정산이 끝나는 대로 사용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할 예정이다.

그는 “시민들이 인터넷을 통해 직접적인 ‘정치적 액션’을 취할 수 있도록 했다는 데 박근핵닷컴의 의의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근핵닷컴은 박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한 탄핵 투표권이 국회의원들에게 있고, 그 국회의원들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유권자인 시민들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박 대통령의 탄핵안이 통과됐으니 저와 동료들은 이제 각자의 일터로 돌아가야죠앞으로도 박근핵닷컴처럼 정치에 IT를 접목한 새로운 시도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어요정치 참여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하면 한 만큼, 안 하면 안 한 만큼 결과를 돌려받게 되니까요.”
<김지윤 기자 ju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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