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96% 수익” 신종 금융사기, 1000여명 650억 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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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초부터 인터넷에서 최고 연 96% 수익을 보장한다는 투자 권유글이 떠돌기 시작했다. 3만 달러(약 3400만원) 이상 투자하면 매월 8%(275만원) 이자를 지급한다는 솔깃한 제안이었다. 18개월이 지나면 원금도 돌려준다고 했다.

투자 모집자들은 ‘맥심트레이더’라는 국제 투자회사의 한국지사를 자처했다. 투자금은 해외 맥심 본사가 FX마진거래(외환선물거래)에 쓴다고 설명했다. 맥심의 모회사는 미국 나스닥 상장사이며, 자산이 7조원이라 돈을 떼일 일이 없다고 안심시켰다.

투자자 대부분은 실제 약정 이자가 꼬박꼬박 지급되자 맥심의 실체를 의심하지 않았다. 지인 또는 가족에게 ‘대박’ 상품이라며 추천하는 사람도 많았다. 택배기사 등 서민층부터 의사 교수 변호사까지 1000명 이상이 투자에 뛰어들었다.

인터넷 블로그 등에는 맥심트레이더 최고경영자가 싱가포르 국적의 경영학 박사라는 소개글이 올라왔다. 매년 백만장자 101명을 배출하고 매출 10억 달러(약 1조원)를 달성하는 게 기업 목표라는 내용도 있었다.

◇270억원 해외로 빼돌려, 강남 아파트 구입하기도=검찰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수상한 정황이 속속 감지됐다. 우선 맥심 본사의 실체가 모호했다. 모집책들이 사용한 맥심 홈페이지에는 본사 위치가 뉴질랜드로 적혀 있었다. 실제 주소에는 학원건물만 있을 뿐 투자 회사는 없었다. 검거된 일부 모집책은 본사가 싱가포르로 이사했다고 주장했는데 구체적인 위치를 대지는 못했다. 모회사라고 내세운 R사는 홈페이지 접근조차 되지 않았다.

국내 모집 총책 신모(59·구속기소)씨 등이 투자금을 ‘본사’에 송금한 흔적도 없었다. 투자금이 외환거래에 투입된 사실이 아예 없었던 것이다. 19일까지 수사를 통해 파악된 투자금은 모두 650억원인데 신씨는 이 중 160억여원을 개인펀드 투자에, 10억여원을 서울 강남 아파트 구입과 해외 자녀 생활비에 썼다. 지난해 10월부터는 270억원을 해외로 빼돌려 은닉했다.

신씨 등이 돈을 빼돌리는 중에도 많은 투자자가 수익이 나고 있다며 큰 의심을 갖지 않았다. 실상은 후순위 투자자들의 돈이 앞선 투자자들에게 ‘돌려막기’ 식으로 지급된 것에 불과했다. 맥심트레이더 측은 지난달 지급 이자를 반으로 줄였고, 투자금을 모회사 주식으로 바꿔준다고 권유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 관계자는 “최초 상환일자가 다가오니 ‘꼼수’를 쓴 것”이라고 말했다.

◇지폐로 꽃다발, 발리서 단합대회…맥심트레이더는=검찰은 맥심트레이더를 실체 없는 국제 다단계 금융사기 조직으로 본다. 신씨는 검찰에서 해외 본사 및 최고경영자가 존재한다고 주장했지만 구체적 내용에는 입을 다물고 있다. 그는 “맥심은 거대 조직이라 한국 투자금은 한국에서 관리하게 내버려둔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맥심트레이더 해외 조직원들은 국내 모집책들과 연계해 직접 한국 투자설명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유창한 영어로 금융투자 과정을 설명하며 투자자들을 현혹시켰다는 게 검찰 설명이다. 이들이 최근 인도네시아 발리 등에서 연 단합대회에는 국내 투자자 수백명이 초대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3월 싱가포르 단합대회에는 6만 달러 이상 투자자들이 초대됐는데, 수십만원만 내면 3박4일간 모든 경비가 무료였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후순위 투자금을 단합대회에 동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5월 대만 법무부 조사국도 맥심트레이더 투자금 명목으로 30억 대만달러(약 1080억원)를 챙긴 ‘마승금융그룹’을 적발했다. 현지 언론은 회장 장모씨가 돈으로 꽃다발을 만들어 거실에 둘 정도였다고 보도했다.

◇외환거래 사기조직 ‘뿌리뽑기’에 주력=서울중앙지검 서민생활침해사범 합동수사반(단장 김관정 부장검사)은 신씨 등 주요 모집책 9명을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했다고 19일 밝혔다. 다른 모집책 3명을 약식 기소했고, 도주한 5명을 추적 중이다. 법률 자문을 제공하며 투자금 중 20억원을 개인 차량 리스금 등으로 소비한 변호사 전모(42)씨도 최근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또 다른 금융사기 조직인 OD마켓의 모집총책도 구속 기소하는 등 외환거래 사기 근절에 주력할 방침이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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