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현망 공급 중단… '金댕이' 된 밴댕이

입력 : 2018-07-31 19:42:56 수정 : 2018-07-31 22:3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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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댕이가 난데없는 품귀 현상에 몸값이 치솟고 있다. 2~3년 전에 비해 배 이상 올랐다.

새벽녘 내린 단비에 폭염의 기세가 한풀 꺾였던 지난달 30일 오전, 경남권 최대 수산시장 중 하나인 통영중앙전통시장. 두 집 건너 한 집이 건어물전이다. 가게 앞 진열대를 차지한 건 대부분 멸치. 하얀 세멸부터 제법 굵직한 대멸까지, 네모난 상자에 담겨 줄지어 섰다. 그런데 대멸 옆자리가 왠지 허전하다. 크기별로 진열할 때 보통 '띠포리'(밴댕이의 경상도 사투리)가 있어야 할 공간이 비었다. 옆집, 그 옆집도 사정은 마찬가지. 겨우 찾아낸 판매장 한편의 띠포리는 기름기가 빠져 노랗게 물들었다. 한눈에 봐도 하품이다. 그런데 상인은 1상자 3만 원을 부른다. 상자 속을 이리저리 훑어보던 한 중년 여성은 띠포리 대신, 옆에 있던 1만 원짜리 큰 멸치를 집어 든다. 이 여성은 "멸치보다 진하고 감칠맛 나는 국물을 우려낼 수 있어 줄곧 띠포리를 썼다. 예전 같으면 1만 원도 아까운 것들을 3만 원이나 달라고 한다. 차라리 질 좋은 멸치가 나을 듯 하다"고 말했다.

2~3년 전 1상자 7000원
현재 2만~3만 원대 폭등

한해 800t 공급 권현망선단
국내 유통량 3분의 1 차지
2014년 수산업법 개정 후
멸치만 가능 밴댕이는 불법

육수 내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밴댕이가 난데없는 품귀 현상에 몸값이 치솟고 있다. 31일 건어물 유통업계에 따르면 불과 2~3년 전 1.5㎏들이 1상자에 7000원~2만 원 선이던 밴댕이 유통 단가가 2만~3만 5000원까지 올랐다.

원인은 물량 부족이다. 그동안 권현망선단은 국내 마른 멸치 유통량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는 최대 생산자인 동시에 밴댕이 공급 창구였다. 밴댕이는 청어목 청어과의 물고기로 크기와 생김새는 물론 서식 환경까지 멸치와 상당히 유사하다. 이 때문에 적잖은 밴댕이가 멸치잡이 그물에 잡힌다. 권현망선단이 공급한 밴댕이는 한 해 평균 800t 상당이었다. 우리나라 밴댕이 유통량의 3분의 1 정도에 해당한다. 그런데 2014년 수산업법이 개정되면서 이 물량이 사라졌다. 당시 해양수산부는 쌍끌이대형저인망어선 등의 멸치 포획을 금지하는 대신, 권현망이 '멸치만' 포획하도록 법을 바꿨다. 특히 준법 조업 과정에서 잡히는 소량의 혼획물도 허용하지 않아 권현망선단의 밴댕이 포획은 하루아침에 '불법'이 돼 버렸다.

대형 끌그물로 작은 멸치를 잡는 권현망선단의 조업 특성상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바닷속 어종을 선별해 잡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것이다. 해수부는 뒤늦게 밴댕이와 청어를 포획 가능 어종에 포함시키는 개정안을 내놨지만 이번엔 경쟁업계의 반발로 무산됐다. 결국 2015년 개정 법률 계도기간이 종료되자 권현망업계는 밴댕이 생산을 중단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권현망이 어획할 땐 물량과 가격 모두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엉망이다. 그나마 작년까진 앞서 권현망에서 가져다 둔 물량이 넉넉해 버텼지만, 올 들어 이마저 소진돼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문제는 품질이다. 공급이 달려 가격이 오르니 여기저기서 말린 밴댕이를 내놓는데, 선상에서 바로 삶아 육지 건조장에서 냉풍 건조하는 권현망에 비해 품질이 크게 떨어진다. 소비자 입장에선 안 좋은 제품을 비싸게 사야 할 판이라, 지금은 아예 외면하는 추세다. 이대로라면 육수용 밴댕이 시장이 아예 사라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글·사진=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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