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분리수거·에너지 절약 ‘몸’으로 배운다

입력
수정2015.09.01. 오전 12:06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한겨레] [함께하는 교육] 생태·환경교육하는 학교들

지난 22일 경기도 의정부 경민아이티(IT)고 환경동아리 ‘경민아이티 그린넷’ 학생들이 재활용품 보관창고에서 각 교실에서 가져온 쓰레기를 분리수거하고 있다.

1층 복도 끝 교실에 들어섰다. 책상과 의자 대신 쓰레기가 담긴 마대자루가 여기저기 쌓여있다. 자루 위쪽 벽에는 각각 ‘비닐·고철·상급지·파지·플라스틱·캔·병’ 등의 단어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가림막으로 둘러싸인 한쪽 구석에는 피자 포장 상자,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가 담겼던 종이팩 등 폐지가 가득했다.

이 공간은 경기도 의정부 경민아이티(IT)고 환경동아리 ‘경민아이티 그린넷’(이하 그린넷) 학생들이 안 쓰는 제도실을 ‘재활용품 보관창고’로 탈바꿈시킨 곳이다. 이 활동은 ‘재활용품 분리배출을 통한 학교쓰레기 제로화 프로젝트’로 환경부와 ㈔자원순환사회연대에서 주최한 ‘자원순환 활동공모전: 순환도전’의 일환으로 벌이고 있다. ‘자원순환’은 소각이나 매립되는 쓰레기 처분량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재활용하는 양을 최대한 늘리는 것을 뜻한다. 사실 그린넷은 이 프로젝트 이전부터 자원순환과 관련한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환경 보호나 에너지 절감 문제 등이 중요 이슈로 떠오르면서 아이들의 ‘생태감수성’, ‘환경감수성’이 중요하다는 인식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생태·환경교육은 일회성 체험학습에 그치기 일쑤다. 환경 여건 때문에 도심 속에서 꾸준히 진행하기 힘든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교내 텃밭과 텃논을 만들어 농사를 짓고, 학교나 가정에서 에너지 절약이나 자원순환활동을 벌이는 학생들이 있다. 특히 생태·환경교육은 억지로 지식을 욱여넣거나 설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아이들이 직접 활동하며 스스로 깨닫고 얻는 바가 크다는 점이 특징이다.

환경보호·에너지절약 중요성 커지며
‘생태감수성’ 길러주는 활동 늘어나
폐기물로 처리하던 쓰레기 재활용하고
잔반 줄이기·에코마일리지 가입 등 독려
도시서 텃밭 가꾸며 식습관 고치기도
환경 문제점 자연스레 체득할 기회 줘


교내 재활용품 수거해 판 뒤 장학금으로

그린넷의 재활용품 수거과정은 3단계로 이뤄진다. 이를 위해 각 학급과 특별실, 교무실에 분리수거통을 설치했다. 쓰레기가 모이면 학생들은 우선 교실 뒤편 세 개의 분리수거통에 종이와 병·캔·플라스틱, 생활쓰레기로 나눠 버린다. 이후 교실에서 배출된 쓰레기를 학교 분리수거함에 모아 종이·병·캔·플라스틱·생활쓰레기 다섯 가지로 다시 분류한다. 이렇게 분류한 쓰레기는 재활용품 창고로 옮겨 종이는 책·상급지·파지로, 캔은 철·동, 그 외 비닐·음식물·옷 등으로 세분화해 분리수거한다.

15명의 그린넷 부원들은 당번을 정해 매일 아침과 방과후에 분리수거 작업을 한다. 학생들은 이 활동으로 누가 따로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레 환경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박채훈군은 “예전에는 쓰레기를 폐기물로만 여겼는데 이제는 재활용하면 자원순환에 도움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며 “방과후 수업 시간과 분리수거 작업 시간이 겹쳐 활동이 어렵거나 가끔 집에 일찍 가고 싶을 때도 있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도맡아 한다는 게 보람차다”고 말했다.

김문정양은 쓰레기더미 앞에 서서 망설임 없이 척척 분리수거를 했다. “우유갑도 코팅 안 된 건 ‘상급지’, 코팅된 건 ‘파지’로 분류한다. 처음엔 코팅 종이가 뭔지도 몰랐는데 지금은 익숙해져서 딱 보면 바로 안다. 쓰레기 종류별 단가도 알아서 길거리에 버려진 페트병을 보면 ‘저거 팔면 몇 십 원인데’라고 생각한다.(웃음)”

이들의 활동 덕분에 실제 교내 쓰레기 배출량도 이전보다 많이 줄었다. 가끔 바로 옆 건물을 쓰는 같은 재단 내 중학교와 대학교에서 쓰레기를 수거해 올 때도 있다. 강창호 동아리 지도교사는 얼마 전부터 쓰레기 입고량과 출고량을 일일이 조사하고 있다. 그는 “우리 학교의 경우 쓰레기 분리수거가 어느 정도 정착돼 입고량과 출고량의 차이가 크지 않지만 다른 학교는 출고량이 입고량보다 10분의 1까지 줄어 놀랐다”며 “종이류와 비닐만 제대로 분리 배출해도 쓰레기양은 물론 폐기물 처리비용까지 확 줄일 수 있다”고 했다. 학생들은 분리한 재활용품을 근처 고물상에 판다. 그렇게 생긴 돈은 교내 장학금으로 쓰거나 근처 장애인시설에 자원봉사를 나갈 때 다과를 사는 데 사용한다.

생태·환경교육은 일상 속 절약하는 생활습관을 길러주거나 정서발달을 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천호중(서울 강동구 소재)은 ‘에너지수호천사단’(이하 천사단)을 꾸려 에너지 절약 활동을 벌이고 있다. 천사단은 2012년 서울시 ‘원전하나줄이기사업’의 일환으로 도입했다. 매년 초에 초·중·고 학교 단위로 학생과 학부모 천사단을 모집하며 올해 초·중·고 560개교에 2만2000여명이 활동중이다.

천사단인 3학년 김종원군도 직접 피켓을 만들어 환경이나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벌인다. 주로 ‘급식 잔반 줄이기’와 ‘에코마일리지(가정과 학교, 기업에서 자발적인 에너지 절약으로 온실가스를 줄여 기후변화에 대응하자는 취지의 시민참여 프로그램) 가입’을 독려하는 내용이다. 교내 급식실 앞이나 엘리베이터 입구는 물론 학교 근처 대형마트에 나가기도 한다. “원래 게을러서 뭘 하든 귀찮아했다. 지금은 집에서도 가족들이 핸드폰 충전기를 쓰고 콘센트를 안 뽑으면 잔소리를 하고 방마다 불을 껐는지도 확인한다. 이 활동을 통해 전보다 부지런해지고 환경이나 에너지 분야에 관심도 생겼다.”

천사단 외에도 각 반에 한명씩 ‘에너지지킴이’를 두고 일상에서 에너지 절약 실천이 몸에 배도록 했다. 매일 집에 가기 전 교실 에어컨이나 빔 프로젝터·형광등·티시에이(TCA) 박스(유선방송 등을 인터넷과 연결해 교실에서 사용할 수 있게 전환하는 디지털 장치) 등을 꼼꼼히 살핀 뒤 미리 만들어놓은 점검표에 제대로 꺼졌는지 항목별로 표시한다. 또 교실문을 잘 잠갔는지부터 화장실 조명등이 꺼졌는지도 확인한다.

안덕근 교사는 “학생들과 꾸준히 활동한 결과 지난해 전기료를 그 이전 해보다 3000만원이나 절약했다”며 “에너지 절약활동은 물론 교내 버려진 공간에 연못과 화단도 만들어 가꾸면서 아이들이 밝아지고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긍정적 효과가 나타나는 일에 직접 나서면서 욕설이나 흡연 등 학생들의 문제행동도 확실히 줄었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서울 금천구 영남초 5학년 1반 아이들이 교내 텃밭에서 직접 기른 상추를 따거나 방울토마토에 지주대를 세우고 있다.

직접 만든 비료로 키운 식물, 경로당에 기부

서울 금천구에 위치한 영남초는 도심 속 친환경녹색학교를 추진중이다. 건물 옥상에는 태양열 집열판을 설치한 ‘햇빛발전소’를, 운동장 한편에는 텃논과 텃밭을 만들었다. 학생과 교직원은 물론 학부모들이 꾸린 ‘맘마의 정원’과 대가족을 중심으로 분양한 ‘주말 가족농장’도 운영중이다. 시민단체 ‘도시농업네트워크’와 협약을 맺고 생태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지난 15일, 5학년 1반 창의적체험활동시간. 이계춘 생태텃밭강사가 미리 준비해 온 쌀뜨물로 거름 만드는 법을 알려줬다. 이 강사는 먼저 이엠(EM·유용 미생물군) 용액을 설명하며 학생들에게 냄새를 맡아보게 했다. 아이들은 “까나리, 식초처럼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코를 움켜쥐었다. 이후 학생들과 쌀뜨물 발효액을 직접 만들었다. “쌀뜨물에 당밀이나 설탕, 이엠 원액을 넣고 뚜껑을 잠근 뒤 그늘진 곳에 7~10일쯤 두면 돼요. 처음 2~3일 뒤에 용액이 든 병의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가스를 빼줘야 해요. 이후 원액을 물에 200~300배로 희석해서 식물에 주면 돼요.”

학생들은 예전에 재래식 화장실의 오물을 모아 거름으로 썼다는 설명을 듣고 다음 시간에는 오줌 비료도 직접 만들어오기로 했다. 이날 수업을 통해 유기물이 들어 있는 흙은 좋은 영양분을 제공해 식물을 잘 자라게 한다는 것을 배웠다.

이후 미리 만들어놓은 쌀뜨물 발효액을 들고 텃밭으로 나갔다. 유보배 교사는 “안 쓰고 방치된 채 잡초만 무성했던 교내 테니스장을 변신시켜 만든 곳”이라며 “텃논에서는 모내기부터 추수까지 직접 벼농사를 짓고, 텃밭에서는 다양한 허브식물과 직접 먹을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벼와 미나리 외에도 호박·고추·상추·오이·방울토마토·허브 등 60여 가지 식물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에는 직접 길러 수확한 배추와 무를 근처 경로당에 기부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밭에 가자마자 잘 자란 오이를 따서 나눠 먹은 뒤 뿔뿔이 흩어져 저마다 자신 있는 일을 알아서 했다. 발효액과 물을 섞어 밭에 뿌리거나 다 자란 채소를 따거나 지주대를 세우는 일 등이었다. 김소연양은 방울토마토 줄기와 지주대를 끈으로 ‘8’자로 엮은 뒤 능숙하게 묶었다. “지난주에 날씨가 안좋아 방울토마토가 많이 쓰러졌다”며 “줄기를 직접 세워주고 잘 자라는 걸 보면 희열감을 느낀다. 수확해 먹을 때도 내 손맛이 느껴져서 더 맛있다”고 말했다.

‘맘마의 정원’ 모임에서 활동중인 학부모 정태실씨는 아이와 함께 가족텃밭을 가꾸며 아이의 변화를 느꼈다. “예전에 딸과 나들이를 갔는데 딸아이가 ‘흙으로 된 땅을 밟으면 발이 빠져서 무섭다’며 흙땅을 밟질 못했다. 결국 내가 30분간 업고 걸었는데 아이가 불쌍하기도 하고 눈물이 났다. 아스팔트에서만 놀며 흙길도 못 걷던 아이가 지금은 밭에서 흙도 파고 피하던 벌레도 잡는 걸 보니 너무 뿌듯하다.”

그는 또 “아이들이 식습관 개선이 되고 절약하는 습관도 생겼다”고 말했다. “평소 쳐다보지도 않던 가지랑 고추도 급식으로 나오면 잘 먹는다. 음식을 막 버리거나 남기는 습관도 줄었다. 본인들이 땀 흘려 기른 거라 애착이 가는지 가끔 어떤 작물은 따지도 못하게 한다.(웃음)”

이 강사는 “요즘 아이들이 성격이 급한테 씨앗을 심은 뒤 싹이 트고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고 기다리며 인내심이 길러진다”고 말했다.

“직접 물을 주고 곁순을 따는 등 텃밭을 지속적으로 돌보면서 자연의 소중함은 물론 농부가 얼마나 힘들게 먹을거리를 만드는지 깨닫는다. 친구들과 함께 땅을 파고 무거운 비료를 나르면서 친화력도 절로 높아진다. 무엇보다 일단 자연 속에서 식물을 가꾸고 향기를 맡는 것 자체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아이가 정서적으로 안정이 된다. 우리 아이들에게 생태·환경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에코 마일리지 쌓기, 함께 해보세요

생태환경교육, 어떻게?


학교나 동아리가 아니더라도 생태·에너지·환경 관련한 활동을 돕는 곳이 있다. 시민단체나 지자체 등에서는 쓰레기 배출 방법이나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방법 등을 정리해 알려주거나 실제 에너지 사용량을 줄였을 경우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식이다.

에너지수호천사단이 만든 약속 10계명.

자원순환학교(www.zerowaste.or.kr)

자원순환사회연대가 운영하는 자원순환 교육 누리집. 쓰레기 배출부터 재활용과 처리까지 전 과정과 자원순환 문제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단체는 환경부와 함께 매년 청소년 자원순환 리더십 프로젝트 ‘순환도전’도 운영. 중·고교생 대상이며 동아리팀을 꾸려 자원활동에 관련된 프로그램이나 활동을 직접 기획하고 실천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적.

에너지수호천사단

서울시에서 운영하며 매년 초 단위 학교 학생과 학부모 대상으로 모집. 대학생 멘토단은 따로 운영. 학기 중이나 방학 때 에너지 체험 교육도 하고 인터넷에 카페(cafe.naver.com/energyangel)를 만들어 정보나 활동 내용을 공유하기도 한다.

서울시에코마일리지 제도

전기·수도·도시가스를 절약한 만큼 마일리지 형태로 쌓아 인센티브를 주는 시민참여 프로그램. 에코마일리지 누리집(ecomileage.seoul.go.kr)에 회원 가입하면 매달 전기·수도·도시가스(지역난방 포함) 사용량을 수집·관리할 수 있다. 6개월 주기로 사용량을 점검해 에너지 절감을 실천한 이에게는 온누리상품권이나 친환경제품, 교통카드 충전권 등 제공.

최화진 기자
공식 SNS [페이스북] [트위터] | [인기화보] [인기만화] [핫이슈]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