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EU 홈페이지 갈무리

[이코노믹리뷰=노성인 기자] 유럽연합(EU)과 영국 간의 미래 관계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영국이 아무런 협상 없이 EU를 떠나는 ‘노딜(No deal) 브렉시트’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또 영국이 노딜 브렉시트를 대비해 4개 지방(잉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스코틀랜드)에 대한 무역 규제를 없애는 국내시장법을 발의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더라도 이에 따른 영향이 영국에 집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EU 역시 아쉬운 부분이 있어 결국 부분적 합의에 따를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英 ‘국내시장법’ 도입…노딜 브렉시트 우려 ↑

영국은 올해 1월 EU를 탈퇴했으며 현재 EU와 미래 관계에 대한 협상을 진행 중이다. 당초 영국과 EU는 이에 대한 합의안을 연말까지 도출하기로 합의했다. 다만 양측은 9월까지 총 8번의 협상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성과가 없는 상황이다.

최근 노딜 브렉시트 우려가 떠오른 배경은 크게 3가지다. 먼저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방역 등 각국의 대응력이 제고됐다. 이에 시장 참여자들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여력이 생겼다. 또한 올해 말로 예정된 브렉시트 전환 기간 종료 시점이 임박해오면서 브렉시트에 관한 관심도 또한 높아졌다.

결정적으로 지난 9월 9일 영국 하원에 상정된 ‘국내시장법’이 연초에 합의했던 ‘EU 탈퇴 협정’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을 담아 노딜 브렉시트 우려를 한층 고조시켰다. 해당 법안은 14일 하원 제2 독회 표결에서 찬성 340표, 반대 263표로 가결됐다. 국내 시장법을 전적으로 거부하는 내용의 노동당 수정안은 찬성 213표, 반대 349표로 부결됐다.

EU 측은 영국 국내시장법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내비치며 9월 말까지 해당 법안 폐기를 요구했다. 이에 따라 영국 하원은 수정안을 17일 통과시켰다. 보리스 존슨 총리가 EU 탈퇴 협정에 우선해 국내 시장법을 발효하려면 의회 동의가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수정안 통과로 불확실성 완화 조짐이 관찰되면서 양측의 협상에 다시 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다만 향후 협상이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을 경우, 영국은 언제든 다시 국내시장법 등을 이용한 노딜 브렉시트 카드를 꺼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올 가을 영국-EU의 협상 주요 쟁점은 국내시장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EU 탈퇴 협정 합의 직전까지 가장 첨예하게 대립했던 북아일랜드 시장 접근 관련 조항을 완전히 뒤집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국내시장법은 미래 관계 협상에서 EU 측의 핵심 요구 사항 중 하나였던 공정경쟁 환경 조성에 관한 요구를 무시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국내시장법은 북아일랜드의 상품을 영국 본토(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로 수입할 때 통관 절차를 생략한다. 또한 이 법은 EU법과 무관하게 영국 정부가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원을 결정할 수 있게 된다.

올 1월 합의된 영국의 EU 탈퇴 협정에 따르면 북아일랜드는 영국 영토에 속하되 EU 단일시장에 남는 ‘두 개의 관세’ 체계가 적용된다. 북아일랜드의 상품을 영국 본토로 수출할 경우 통관 절차 등에 있어 EU의 규제를 준수해야 한다.

신한금융투자 김찬희 연구원은 “존슨 총리가 브렉시트 전환 기간 종료를 앞두고 막판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국내 시장법을 도입했다는 의견이 우세하다”라면서도 “다음 달 15일에 열릴 EU 정상 회의 이전까지 합의에 실패할 경우 협상을 포기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 '노딜'로 이어질 가능성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노딜 브렉시트, 유럽 내 영향 ↓…글로벌 영향도 제한적

다만 이런 불확실성 증가에도 글로벌 금융시장의 영향은 국지적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먼저 코로나19를 계기로 EU 공동체의 결속력이 강화될 영향이 크다. 지난 7월 7500억유로 규모의 EU 회복기금 합의가 이루어졌다. 회복기금은 코로나19 피해가 큰 취약 국가들을 집중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며 이 중 3900억유로는 상환 의무가 없는 보조금 형태의 지원이다.

회복기금 합의로 독일과 프랑스 등 중심국은 주변국들을 이끌며 공동체에 대한 회원국들의 신뢰감을 강화한 한편, 이탈리아와 스페인, 그리스 등 주변국들은 EU 회복기금 등을 통한 실질적 혜택을 받게 돼 경제적 결속력이 높아졌다.

또한 브렉시트 이후 일부 국가들의 반사수혜가 기대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영국 역내 수출품의 87%가 제조품임을 고려하면 제조업 기반을 갖춘 이탈리아 등의 수혜가 기대된다.

실제 국내시장법으로 브렉시트 불확실성이 나타나면서 파운드화는 가파른 평가절하를 보여주고 있지만, 유로화는 안정적인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유로화 대비 파운드화의 상대 가치를 나타내는 파운드·유로 환율은 8월 말 대비 3% 내외 상승(파운드화 가치 하락)했다. 같은 기간 달러 대비 환율도 4% 수준 절하됐지만, 유로화는 1% 수준 하락을 보여주고 있다.

메리츠증권 이승훈 연구원은 "과거 노딜 브렉시트 우려가 불거졌을 때 달러 대비 유로화와 파운드화 가치는 동반 절하됐다"라면서도 “최근 EU의 역내 결속력 강화와 경기회복에 대한 믿음 강화되고 국내시장법 발의로 인해 영국의 신인도 하락 등이 유로 대비 파운드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최악의 시나리오인 노딜 브렉시트가 일어나더라도 영국에만 충격 국한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경제와 금융시장 전반의 영향은 제한적일 가능성이 더 크다"라고 내다봤다.

김찬희 연구원은 “런던정경대 연구에 따르면 노딜 브렉시트(-5.7%)에 따른 항구적 충격(현재가치로 환산)은 코로나19(-2.1%)의 3배에 육박한다. EU도 영국 수역의 풍부한 자원과 영국
기업과 EU 기업 간 공정경쟁 환경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라며 “노딜 브렉시트 여부와 무관하게 결국 영국과 EU는 일정 부분 양보해 부분적 합의에 이를 것이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