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반도체·바이오 등 29개 업종 단체의 회원사를 대상으로 코로나 위기 대응을 위해 정부에 건의할 사항을 물었더니 54%가 '법·제도 개선', 즉 규제 완화를 꼽았다. '지원 확대'를 원한다는 응답은 32%였다. 정부 지원보다 규제를 풀어달라는 요청이 두 배 가까이 더 많았다. 그중 71%는 주 5일제·최저임금 등의 노동 규제를, 16%는 환경 규제 개선이 절실하다고 응답했다. 정부 지원도 필요하지만,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규제 리스크가 더 문제라는 것이다.

새삼스러운 얘기도 아니다. 네이버가 한국을 피해 일본에서 원격진료 서비스를 시작했다거나, 자율주행차 스타트업이 미국으로 탈출했다는 등의 사례가 꼬리 물고 있다. 중국에선 4억명이 차량 공유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한국에선 초보적 수준의 '타다' 서비스마저 법률로 금지됐다. 신기술·신제품 개발은 분초를 다투는 시간 싸움인데 주 52시간제 때문에 밤만 되면 연구실 불을 꺼야 하는 여건에서 어떻게 경쟁을 이겨낼 수 있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에도 적극적인 규제 혁신을 지시했지만 그 이후에도 2주일 사이 35개 신규 규제가 규제개혁위원회를 통과해 시행됐다. 원격진료 규제를 깰 것처럼 말하더니 "추진은 없다"고 발을 빼고, 민간 데이터 센터를 정부가 관리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새로 개원한 21대 국회에선 이익공유제, 집단소송제 도입 같은 각종 규제 강화 법안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코로나 위기는 성장의 한계에 도달한 한국 경제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예컨대 바이오산업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단키트를 대량 도입하고 '드라이브 스루' 검사를 창안하면서 잠재력을 입증했으나 수많은 법률에 산재한 규제 때문에 혁신이 방해받고 있다. 규제는 놓아둔 채 세금만 쏟아붓는다고 '코로나 이후'의 신산업 주도권 경쟁을 이겨낼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