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사실상 여당 단독으로 통과된 테러방지법안은 2001년 11월 이후 9차례나 발의됐으나 국회 문턱에서 막혔던 국가정보원의 ‘숙원’ 사업이었다. 10번째인 이번에 통과된 법안은 정보 수집·조사·추적 등에서 기존 법안에 없던 내용이 추가되는 등 그동안 나왔던 테러방지법안 중 국가정보원에 가장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테러방지법 내용 중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국가정보원장이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민감정보를 포함하는 개인정보와 위치정보를 ‘개인정보처리자’와 ‘위치정보사업자’에게 요구할 수 있다”(9조 3항)고 한 부분이다. 이 조항은 지금까지 발의된 어떤 테러방지법에도 없던 내용이다.
위치정보사업자와 개인정보처리자에는 통신사와 포털은 물론 사상·신념, 정치적 견해, 건강, 성생활 같은 개인의 ‘민감정보’를 취급하는 결혼정보회사나 상담사 등 수많은 직업군이 포함될 수 있다. 이번 법은 국정원장이 위치정보사업자 등에게 이런 민감정보를 요구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면서도, 이를 처리하기 위한 절차나 사후보고 의무조차 규정하지 않고 있다.
국정원이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추적을 할 수 있다”(9조 4항)는 부분 역시 지금까지의 법안들과는 다르다. ‘추적’이란 용어는 2005년 공성진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에 처음 등장했지만, 당시엔 본문이 아닌 법조의 제목에 사용했고 본문에서 ‘추적’에 해당하는 행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했다. 이런 형식은 최근 법안까지 유지되다 갑자기 이번 테러방지법에서는 본문에 “대테러 조사 및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추적을 할 수 있다”고 서술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문제는 추적에 해당하는 행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어, 기존 법령에 규정되지 않은 추적장비나 기법을 통한 무분별한 감시나 정보수집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국정원이 이탈리아 해킹팀한테서 해킹 프로그램인 아르시에스(RCS)를 구입해 민간인을 대상으로 해킹을 벌였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는데, 이런 행위가 추적으로 포장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나친 개인정보감시 논란 끝에 지난해 6월 폐지된 미국의 ‘애국자법’에도 추적과 비슷한 ‘정탐 및 잠입’(Sneak and Peek) 조항이 있어 사후고지 영장을 발부받아 당사자 몰래 수사를 벌일 수 있도록 했었다. 하지만 2014년 미국 전자프런티어재단(EFF)의 분석 결과를 보면, 2013년 미국에서 청구된 사후고지 영장 1만1129건 중 오직 51건만 테러 수사 목적이었고 대부분은 마약 수사나 일반 형사사건 수사에 악용됐다. 게다가 애국자법의 정탐 및 잠입이 수사 목적에 국한된 것과 달리 테러방지법의 ‘추적’ 개념은 훨씬 포괄적이다.
눈에 띄는 또 한 가지는 ‘대테러 활동’의 조직 구성 부분이다. 기존에 발의됐던 테러방지법안들은 모두 국무총리를 의장으로 하는 대테러대책회의를 구성해 대테러 업무를 총괄하고, 국정원장 소속으로 대테러센터를 설립해 대테러센터의 장에게 정보수집 권한을 주도록 했다. 이것만으로도 국정원의 권한이 지나치게 강화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런데 이번 테러방지법은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테러대책위원회를 설립하고, 대테러센터를 국무총리 소속으로 두게 했다. 그러면서도 모든 정보수집 권한은 국정원에 부여했다. 결국 국가테러대책위원회나 대테러센터는 허수아비로 전락하고 막강한 정보접근 권한을 갖게 되는 국정원에 대한 통제수단은 사라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존에 발의됐던 테러방지법안들과 비교해도 지나치게 국정원의 권한이 강화되는 반면 통제장치는 부족하다. 앞으로 국정원장이 대통령보다 더 막강한 권한을 지니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없다. 과연 박정희 대통령이라면 정보기관이 대통령 자신보다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될 이런 법을 통과시켰을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10차례 발의 법안중 ‘가장 센’ 테러방지법 통과
폐기법안엔 없었던 ‘국정원의 힘’
개인 민감정보 사업자에 요구
추적권까지 새로 안겨줘
국정원이 모든 권한 틀어쥐고
총리실 기구는 허울만 남아
허승기자
- 수정 2016-03-03 19:30
- 등록 2016-03-03 1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