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필 기자

· “무상보육 말 뒤집은 박 대통령…표 얻으려 애들 이용했나요?”

“무상급식이 포퓰리즘이라며 공격하던 여당이 무상보육 공약을 들고나와 의아했어요.”

신은옥씨(41·서울 방학동)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였던 시절을 떠올리며 이렇게 회상했다. 당시 첫째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있었던 신씨는 박근혜 후보가 무상보육 공약을 들고나왔을 때 납득이 잘 가지 않았다고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정책을 두고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며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을 파탄낼 거라고 공격했던 여당의 대권 후보가 갑자기 무상보육을 공약으로 들고나온 것이 이상하기만 했다. 하지만 신씨는 그래도 믿었다고 했다. 전 국민을 상대로 보육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공언한 이상 책임은 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난 15일 서울 방학동의 한 카페에서 신은옥씨(41)가 누리과정을 둘러싼 파행을 지켜봐 왔던 심경을 말하고 있다.  김정근 기자

지난 15일 서울 방학동의 한 카페에서 신은옥씨(41)가 누리과정을 둘러싼 파행을 지켜봐 왔던 심경을 말하고 있다. 김정근 기자

누리과정이 만 3~5세로 확대되고,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보육료가 지원되기 시작할 때만 해도 신씨는 정말 박 대통령의 약속이 지켜지는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누리과정 예산 문제를 두고 지방교육청과 정부가 서로 다른 입장을 내기 시작하더니, 교육청에서 예산을 편성하지 못하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올해에는 실제로 보육료가 제때 지급되지 못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신씨는 “처음에는 왜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지 잘 몰랐지만 차츰 보도를 통해 ‘정부가 별도의 재원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추가 재원 없이 지방교육재정에 예산 부담을 지운 것을 두고 ‘군대 말년 병장이 후임병에게 달랑 100원을 주고 초코파이와 새우깡을 사고 500원을 남겨오라는 것’이라는 비유가 실감났어요. 약속만 하고 책임은 다른 곳에 떠넘기는 ‘배신감’도 느꼈고요.”

본인이 어린이집 교사이면서 어린이집에 다니는 자녀가 있는 신씨는 누구보다 누리과정 파행에 대해 할 말이 많다고 했다. 신씨의 첫째 아들은 현재 초등학교 2학년이고, 둘째는 만 4세로 구립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

신씨는 무상보육 재원을 지방교육재정에서 충당하겠다고 하는 정부의 방침에 대해 “첫째 줄 돈을 떼어내 둘째 주겠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그는 “초·중·고교와 유치원에 쓰이는 지방재정교부금으로 누리과정 예산을 부담하라는 게 결국 둘째 무상보육을 위해 첫째에게 쓰일 돈을 줄이겠다는 건데 이런 ‘무상보육’을 반길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신씨는 누리과정 지원비 22만원이 마련하지 못할 돈은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그와 남편의 수입을 합하면 한 달에 500만원가량이다. 하지만 식비와 생활비, 공과금과 아이들 학원비, 그리고 보험료나 정기적금 등을 붓고 나면 여윳돈이 없다고 했다. 또 그는 어린이집 교사라 지원이 끊기면 급여도 줄어들 판이다. 적금이나 보험을 깨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신씨는 “올 초 지원비가 끊긴다는 얘기가 파다했을 때 외벌이를 하는 집의 경우 아예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보내지 않으려 했던 부모들이 적지 않았다”며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다니는 자녀가 2명만 돼도 40만~50만원이 더 들어가는 건데 고민을 안 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다행히 그는 비교적 학비 부담이 적은 구립 어린이집에 둘째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신씨가 사는 동네엔 아예 국공립 유치원이 없고 국공립 어린이집도 드물어 신씨가 매우 예외적인 경우다. 주변 대부분은 “국공립은 경쟁이 너무 치열해 다자녀 가구가 아니면 입소 대기조차 넣지 않는 게 일반적일 정도”라고 했다. 결국 비싼 사립 유치원이나 민간 어린이집을 보낼 수밖에 없는데 지원비가 끊기면 곤란한 집이 한둘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신씨는 당장 보육료가 지급되지 않는 사태는 피하게 돼 한시름 놓았다면서도 몇 달치만 편성된 예산이 바닥나면 그때는? 그리고 내년에는? 하는 불안을 계속 안고 가야 하는 것 자체가 화가 난다고 했다. 학부모로서의 부담도 부담이지만 어린이집 교사로서 급여를 받을 수 있을까를 걱정하고 살아야 하는 게 과연 정상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신씨는 “언제까지 이런 불안을 안고 지내야 하는 건지 정말 물어보고 싶다. 몇 달마다 정부와 교육청들이 갈등하는 모습도 지긋지긋하다”며 “이번 총선에서 이를 해결할 후보를 찍겠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 당선 후 재원 부담을 전가하는 듯한 인상에 “정말 당선을 위해 아이들을 이용한 것인지, 당선이 되고 나시니 아이들이 귀찮아진 것인지도 대통령께 묻고 싶다”고 했다. 이번엔 ‘표’ 때문에 아이들을 이용하려는 후보에게는 ‘절대’ 표를 주지 않겠다는 게 신씨의 다짐이다.

학부모나 이웃들과 얘기하다 보면 “저출산이 그렇게 심각한 문제라면서, 얼마 되지도 않는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 사회가 이 정도도 지원할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고도 했다. 어린이집 교사이자 학부모로서 신씨는 “보육의 질을 높이려면 교사 처우 또한 개선될 필요가 있다”며 “보육 ‘부담’과 ‘질’ 모두를 해결할 수 있는 정당과 후보가 이번 총선에서 승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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