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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국이 적인가" 일본인 9300명이 서명한 對韓보복 비판

입력 : 
2019-09-02 0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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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일본 도쿄에서 아베 신조 정권의 '한국 때리기'를 성토하는 집회가 열렸다. '한국이 적인가-긴급집회' 주제로 열린 이날 모임에는 일본인 35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 주최 측은 한국을 상대로 한 수출 규제의 철회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진행해 왔는데 지난달 30일까지 9300명이 참가했다. 주도 인사 중 한 명인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집회에서 "아베 총리의 '한국을 상대하지 않겠다는 정책'이 향해가는 곳은 평화 국가 일본의 종말"이라고 비판했다.

서명운동과 집회를 보면서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먼저 비록 소수지만 일본 내에서 이런 이성적, 지성적 목소리가 나온다는 사실은 다행스럽다. 요미우리신문이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한 데 대해 응답자의 65%가 '지지한다'고 답해 '지지하지 않는다'(23%)의 세 배에 가까웠다. 아베 내각 지지율은 한 달 새 5%포인트 상승했다. 확실히 일본의 전체 분위기는 반한감정 고조를 향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의견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중요하다. 성찰의 목소리는 한 사회가 극단으로 치닫는 것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 아베 정부가 '평화 국가'의 종말을 향하고 있다는 와다 교수의 경고는 의미심장하다. 일본은 언젠가 정상국가화의 길을 걷겠지만 그것이 이웃 국가를 위협하고 지역 평화를 저해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두 번째 드는 생각은 한국은 과연 이성적 비판에 열려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한일관계 악화를 염려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이들의 의견은 '매국노'로 매도당하기 일쑤다. 일본에도 이런 흑백논리는 존재하지만 일부 극단적 민족주의 세력에 한정돼 있다. 그래서 '한국이 적인가' 같은 집회가 별 소동 없이 열린다. 서울에서 '일본이 적인가'라는 집회가 열린다면 큰 논란이 일 가능성이 높다. 깊어진 한일관계 상처가 아물려면 합리적 견해를 가진 양국 국민들이 늘어나야 한다. 일본에서 나오는 자기 비판 목소리를 '저들은 가해자의 나라이니 당연히 반성해야 한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극단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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