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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6년 02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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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도서 제본방식 안내 |
쪽수, 무게, 크기 | 40쪽 | 415g | 215*305*15mm |
ISBN13 | 9791186825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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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기막히게 멋진 여행>>
한 친구가 있습니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남들이 흔히 하는 공개적인 결혼식을 못 올리고 그야말로 맨몸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 낳고 알콩달콩 살아가는, 의사 직업을 가진 친구였습니다. 십여 년 전 이 친구의 병원에 찾아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살고 있는 집에 비가 샌다고 합니다. 그 무렵 그 친구의 애들이 초등학교 저학년 쯤 되었었는데, 나름 아이를 먼저 낳아 기른 사람으로서, 돈을 모아 집을 조금 쾌적한 곳으로 옮겨라,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가능한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지, 다 큰 다음에 그럴 듯한 집으로 옮기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라고 조언을 했더랬습니다. 그 친구, 꽤 진지하게 수긍하는 듯한 표정으로 제 이야기를 받아들였지요.
몇 달이 지난 어느 여름날, 병원으로 전화를 했을 때 이 친구 두 달 동안 스위스로 가족여행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와 하는 말이, 그때 제 얘기 듣고 나름 계획을 세워 돈을 모으긴 했는데, 그냥, 그 돈으로 온 가족이 스위스에 두 달 머물며 24시간 붙어서 아웅다웅하다 왔다고 합니다. 여전히 비 새는 그 집에 살고 있고요. 그 때 제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네가 이제껏 했던 결정 중에 가장 멋진 결정이네!”
<<멋진, 기막히게 멋진 여행>>을 만났을 때 저는 이 친구가 퍼뜩 떠올랐습니다.
창가를 통해 봄빛이 조금씩 올라오는 숲을 바라보던 주인공은 나무로 만들어진 집을 완전 분해, 재조립하여 기다란 장대 두 개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장대 위에 올라 여행을 떠납니다. 궁금했지요, 왜 굳이 집을 해체해서 장대를 만들고 높은 위치에서의 여행을 택했을까? 마지막 페이지를 보면 장대의 발 받침대가 테이블 다리로 쓰인 게 보이는데, 이렇게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걸 걸고 길을 나세게 한 의도가 뭘까? 굳이 장대에 주인공을 올린 것은 길을 나서는 여행이라는 것이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임을 암시하는 것일까? 똑같은 그림을 보고 아이들은 내 궁금증에 어떤 답을 해줄까? 아무튼 첫 페이지부터 주 독자층일 어린 독자들의 반응과 작가의 생각이 매우 궁금해지는 책이었습니다.
자신이 살던, 북유럽풍의 침엽수림대를 빠져나간 주인공은 인근 바닷가 마을에 다다릅니다. 계절은 갈색과 쑥색, 연두색이 섞여 있던 봄에서 여름으로 건너가고 있고, 바닷가 휴양지에는 수영복 차림으로 햇볕을 즐기는 이, 연을 날리는 이, 막 바닷가 휴양지에 도착하는 캠핑카, 아이를 무등 태우고 걷는 이 등이 여유로운 일상을 즐기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거침없이 성큼성큼 바다로 나아가 고개를 숙여 심해 풍경을 들여다봅니다. 거북이, 문어, 고래, 인어, 뱀장어, 수초, 산호 같은 바다 속 존재들이 거침없는 붓질의 파랑으로 표현된 심해를 평화로이 누비고 있습니다. 때마침 입수한 스킨스쿠버가 조금 이물스러운 느낌이 들 정도로 장대다리에 의지해 주인공이 들여다 본 바다 속은 고요한 듯하면서 활기 넘치고, 무심한 듯하면서 각자 제 자리에서 생기가 넘치고 있습니다.
이제 주인공은 싱그러운 초록과 연두가 물결치는 밀림지대로 들어섭니다. 주인공은 나무 등걸에 앉아 원숭이와 같이 바나나를 먹고 있고, 코끼리와 악어, 부리와 다리가 빨간 새, 나무, 원주민들이 거침없는 붓질과 곡선 등으로 생명력 넘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검푸른 색과 노랑에 가까운 연두색이 빠른 터치의 붓질로 화면을 몇 번 스쳤을 뿐인데, 화면 가득 싱그러움과 원기가 느껴집니다. 그래서 주황색으로 표현된, 화면 왼쪽 위의 악어에게 쫓기는 듯한 보트, 주인공의 멜빵바지, 오른쪽 아래의 느닷없는 굴삭기가 조금은 불안한 느낌을 줍니다.
이제 주인공은 초록과 연두의 밀림 지대를 벗어나 아메리카 원주민인 듯한 이들이 살고 있는 주황의 세계로 옮겨가고자 합니다. 주인공이 막 벗어나고 있는 밀림은 아까 보였던 주황색 굴삭기가 지켜보는 가운데 주황색 조끼를 입은 채벌꾼들이 톱으로 나무를 베고 있습니다. 많은 나무들이 이미 베어진 채 밑동만 남은 가운데, 주인공이 짚고 다니는 장대도 무차별적으로 채벌꾼의 전동 톱에 의해 잘려지고, 기울어지는 장대에서 떨어지는 주인공을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그물을 쳐 받아줍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사는 곳은 온통 주황색으로 칠해진, 평지라곤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황량한 계곡지대입니다. 원주민의 문화를 드러내주는 토템 폴(Totem Pole)과 토킹 스틱(Talking Stick), 티피(Tepee)만이 다채로운 색으로 칠해져 있고, 화면 가득 펼쳐진 주황색은 자신들이 살던 곳에서 내몰린 이들의 풍경을 압도적으로 잘 드러내줍니다.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함이 화면을 지배하고 있지만, 카우보이들을 좇는 들소 떼, 계곡 도처에서 올가미를 던지거나, 화살을 겨누거나 돌을 굴리는 원주민의 모습 등이 표현됨으로써 매우 풍성한 이야기 거리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잘려나간 장대를 원주민들이 토킹 스틱(Talking Stick)을 덧대어 손봐주는 모습에서는 씨익 미소가 지어집니다.
다음 화면에서 주인공은 여행에 지친 몸을 잠시 누입니다. 장대를 세우고 해먹을 걸어 느슨하고 편안하게 잠을 청하고 있습니다. 둥근 보름달이 무대의 주인공을 드러내주듯 따뜻하게 주인공의 잠자리를 감싸고 있고, 주인공에게 잠을 퍼 나르느라 양떼들이 부지런히 밤하늘을 오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몇 개의 십자가와 십자가 수보다 많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마녀들. 별 가득한 달밤에 교회 첨탑과 산꼭대기의 십자가, 빗자루를 타고 종횡무진 제 세상인 듯 날아다니는 마녀들과 양들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가득 품고 있는 페이지입니다.
잠 잘 자고 난 주인공은 이제 알프스 산 언저리 쯤으로 보이는 곳에 도착합니다. 앞서 나왔던 아메리카 원주민이 사는 곳처럼 뾰족하게 솟은 계곡투성이지만 매우 다른 풍경입니다. 케이블카도 있고, 험한 등산로는 누군가 안전하게 도움 줄을 매어 놓아 많은 이들이 보다 쉽게 높은 곳을 오를 수 있습니다. 계곡 사이를 들소 떼가 아닌 스키어들이 달리고 있고, 조금 낮은 산자락에서는 스위스 전통의상인 드린딜(Drindl)과 레저호젠(Leder hosen) 차림의 사람들이 즐겁게 노래 부르며 춤을 추고 있습니다. 잘 보면 주인공의 달콤한 잠을 도와주었던 양떼도 이 길에 동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인공은 이제 자신의 잠 곁을 맴돌던 양들을 산 아랫마을의 아주머니에게 안전하게 돌려보내고 북극으로 길을 나섭니다. 옅은 파랑으로 굵은 붓질을 몇 번하여 표현한 북극 마을의 풍경은 여유롭고 즐겁고 따뜻해 보입니다. 펭귄과 북극곰과 에스키모들이 서로, 또는 같이 춤 추고 피겨 스케이팅을 하고 낚시하며 욕심과 경계 없는 일상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사람이 다른 동물들보다 우위를 차지하지 않고, 펭귄이나 북극곰들과 마찬가지로 그 곳 생물체의 일환일 뿐인 평등한 지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 때 여행을 시작할 때부터 줄곧 줄무늬 반팔 차림에 주황 멜빵바지를 한 주인공을 향해 어디선가 줄무늬 빵모자가 날아옵니다. 앞서 알프스에서 스키를 타던 사람의 모자가 여기로 날아온 것일까요
이제 주인공은 사람과 빌딩과 차가 가득한 도시 한복판으로 옵니다. 이 책 전체를 통해 가장 많은 이야기와 사건을 담고 있습니다. 이제껏 여행에서 만난 많은 존재들이 도시 곳곳에서 뜻밖의 풍경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인어공주는 건물 옥상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고,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누군가를 향해 또 활을 겨누고 있으며, 우리에 갇혀 실려 가는 코끼리를 밀림지대 원주민들이 구하려 쫓아가고 있고, 북극곰은 도시의 운하에 몸을 담그고 있으며, 펭귄은 축제 행렬을 좇아 고가 위를 행진합니다. 우유 차량을 쫓는 양떼, 경사가 심한 도로를 활주하는 스키어, 무얼 잡으려는지 모르지만 올가미를 돌리며 도로를 역주행하는 카우보이, 축제 장식 깃발 줄을 나무덩굴인 양 매달리고 기어 다니는 원숭이, 도로를 빗질하는 마녀 등 숨은 그림 찾기인 양 도처에 등장인물이 마치 자신들의 터전에 있는 양 시끌벅적 요란한 도시 풍경에 잘 녹아 있습니다. 또 다시 궁금해졌죠. 뭘까? 이 시점에 왜 작가는 이들을 한 자리에 모았을까? 애들하고 책을 읽는다면 이 한 장면 갖고도 얼마나 많은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아이들의 기발하고 그럴 듯한 답에 나는 또 얼마나 감탄하고 놀라워할까
주인공은 이제 도시를 벗어나 바다로 들어섭니다. 그 사이 밀림지대 원주민들은 코끼리를 구해내서 쪽배를 타고 이동 중이고, 인어들도 물속에 몸을 담그고, 펭귄들도 바다로 뛰어들고 있으며 마녀들 또한 빗자루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 중입니다. 각자 자신들의 위치로 돌아가는 모습입니다. 화면 중앙을 차지한 파랑 건물은 각 층마다 또 얼마나 다채로운 이야기 거리를 채워 넣었는지 이 페이지도 아이들과 함께 한다면 쉽게 넘어가기 어려울 듯합니다. 앞서 밀림지대의 채벌꾼들도 다리에 서서 떠나는 주인공을 향해 손을 흔들거나 짐짓 외면하는 표정으로 돌아서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이제 바다를 다 건너 자신이 원래 살던 숲 가까이 왔습니다. 숲에는 고운 함박눈이 내리고 있고, 떠날 때 비키니 차림이었던 사람들이 두툼한 옷을 입고 모자를 쓰거나 목도리를 한 채 낚시하거나 산책 중입니다.
주인공은 자신이 떠났던 자리로 돌아와 장대 다리를 해체하고 다시 집을 짓습니다. 떠날 때보다 조금 엉성한 듯 지어진 집은 고요하게 숲에 자리하고 있고, 눈은 계속 내려 쌓이고 있습니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주인공은 맨 처음 페이지 때처럼 테이블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봄빛이 올라오던 숲은 이제 흰 눈이 내려 쌓이고 있고, 무채색이었던 실내는 주인공이 만났던 세계의 색들로 다채롭게 칠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전에 없던 물건, 북극에서부터 동행한 빵모자가 창가 쪽 벽에 걸려 있습니다. 흰 여백을 많이 두고 그려진, 생각에 빠진 주인공의 모습을 언젠가 내가 하고 싶다는 뭉클한 바람이 생기는 장면입니다.
작가가 궁금해서, 그의 다른 이야기는 어떨지 인터넷의 힘을 빌려 좀 뒤적거려 보았습니다. 거친 몇 번의 필치로 이야기를 엮어가는 대담한 솜씨가, 대가의 다양한 화풍이 응축된 단순함인지, 도전과 용기로 가득 찬 젊은이의 패기일지 궁금했었습니다. 제가 접할 수 있는 자료로는 꽤 젊고 흥미로운 모습을 한 젊은이가 있었고, <<멋진, 기막히게 멋진 여행>>이란 작품과 유사한 화풍의 그림들이 몇 보였습니다. 그림도 활달하고, 패기 넘치며 경쾌하지만 스토리 또한 뼈 있는 위트로 가득 찬, 재치 있는 이 작가의 작품들을 몇 더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 없는 그림책이어서 더 많은 이야기가 풍성하게 살아나는, 볼수록 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이 어디선가 숨었다 나타나는 흥미진진한 책입니다. 그래서 솔직히 첫 페이지와 마지막 페이지의 짧은 대사 처리는 ‘멋진, 기막히게 멋진 여행’이라는 책 제목과 더불어 아쉬웠습니다. 독자의 사고와 시각을 그 틀 안에 가둬 제한해 버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채벌꾼에 의해 잘려나간 장대다리를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토킹 스틱(Talking Stick)으로 이어줬는데, 이후 페이지에 원래 그대로의 장대처럼 보이는 것은 아마 여행하는 시간만큼 색이 바라고 그래서 그것이 그냥 자연스러워진 것일 거라는, 자꾸 ‘드라마를 다큐’로 해석해 버리는 어른들의 단순화된 사고와 달리 아이들은 기가 막힌 답을 들려줄 것이라는 기대가 책을 읽는 내내 되는, 그래서 꼭 아이들과 함께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힌다는 건, 제 친구처럼 집을 늘릴 돈으로 여행을 가지 않아도, 책 속 주인공처럼 갖고 있는 모든 것을 걸지 않아도, 주인공보다 더 많은 세계를 만날 수 있는 값 싸면서 풍부한, “멋진, 기막히게 멋진 여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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