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이 더 화려한 ‘오색의 다도해’

입력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하늘과 바다를 온통 붉게 채색한 가사군도의 세방낙조가 거친 질감의 유화를 보는 듯하다. 세방낙조는 햇무리가 그려내는 다섯 가지 색깔의 낙조로 유명하다.

운림산방의 옛 주인 소치 허련이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색깔의 그림을 그릴까? 진도타워에서 만난 다도해의 푸른색에 눈이 시린 소치는 한겨울 대파밭과 봄동밭 농로를 달려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핀 운림산방에서 120여년 전 자신이 살던 초가를 만난다. 울금으로 빚은 노란색 막걸리 한 사발에 불콰해진 소치는 급치산 전망대에 올라 해질녘 오색영롱한 세방낙조에 넋을 잃는다. 그리고 한평생 품었던 먹과 벼루를 버리고 청색, 녹색, 적색, 갈색, 황색 물감이 칠해진 팔레트를 펴든다.

한겨울의 진도는 단청보다 더 화려하다.

진도의 관문은 울돌목을 가로지르는 484m 길이의 쌍둥이 진도대교이다. 밤마다 색색의 조명으로 단장하는 진도대교를 한눈에 보려면 진도대교 남단의 야산에 위치한 거대한 배 모양의 진도타워에 올라야 한다. 해남 두륜산과 영암 월출산까지 보이는 진도타워는 가사도를 비롯해 주지도 양덕도 등 다도해의 섬 사이로 떨어지는 낙조가 황홀한 곳이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진도에는 섬을 한 바퀴 도는 120㎞ 길이의 해안도로가 있다. 일부 구간은 공사 중이거나 우회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러나 진도대교에서 시계방향으로 달리다 내륙 곳곳을 넘나들면 진도 곳곳에 숨어 있는 절경과 역사, 문화, 그리고 먹거리 등이 양파 껍질처럼 한 겹씩 벗겨져 나그네의 겨울여행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영화 ‘명량’의 무대이자 이순신 장군이 판옥선 13척과 오합지졸 조선 수군을 이끌고 왜선 133척을 격파한 울돌목의 회오리 바다를 지나면 이충무공벽파진전첩비가 벽파항 언덕에 우뚝 솟아 있다. 벽파항 언덕에서 보는 다도해는 ‘청색의 바다’이다. 시리도록 푸른 다도해에 보석처럼 흩뿌려져 있는 진도의 섬은 조도군도를 비롯해 모두 235개. 이웃한 완도 및 신안의 섬과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그린다.

웰빙 등산로로 유명한 전남 진도의 남망산 정상에서 본 해돋이 풍경. 다도해를 수놓은 크고 작은 섬과 황금색 바다가 어우러져 황홀한 빛의 잔치를 펼치고 있다.

1270년 고려가 몽고에 백기를 들자 삼별초의 배중손 장군은 승화후 온을 왕으로 옹립하고 군사와 가족 등 2만여명을 데리고 진도에 상륙한다. 자주의 깃발을 높이 든 배중손 장군이 새로운 고려왕국을 꿈꾼 곳은 벽파항과 가까운 용장성이다. 계단식 터만 남은 용장성 행궁터 앞의 대파밭과 봄동밭은 간척으로 태어나 한겨울에도 초록색을 잃지 않는 ‘녹색의 들판’이다.

진도는 제주도와 거제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겨울 대파는 전국 생산량의 40%를 차지한다. 달착지근한 맛의 겉절이로 유명한 봄동과 함께 진도의 들판을 초록 융단처럼 수놓은 겨울 대파는 진도 농민들의 주 수입원이다. 그러나 올해는 대파 값이 폭락해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서 수확을 하는 진도 아낙들의 한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구릉을 초록으로 채색한 들판이 광활하게 펼쳐지는 군내면의 서쪽에는 바다에 방조제를 쌓아 조성한 군내호가 위치하고 있다.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군내호는 ‘갈색의 호수’이다. 군내호 가장자리를 따라 뿌리를 내린 드넓은 갈대밭은 큰기러기, 가창오리, 청둥오리 등 겨울철새들의 보금자리. 갈대밭 옆 호수에서 머리를 흔들며 사냥감을 찾는 노랑부리저어새는 주걱 모양의 부리가 아름다운 천연기념물로 하얀 날갯짓이 우아하다.

진도기상대가 위치한 첨찰산(485m)은 진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일출과 일몰을 한곳에서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명소이다. 정상까지 승용차로 오를 수 있는데다 초록 기운이 완연한 진도의 겨울 풍경과 점점이 흩어진 부속섬의 수려한 자태가 발아래 펼쳐진다.

첨찰산 서쪽 자락에 위치한 운림산방은 추사 김정희의 제자이자 남종화의 대가인 소치 허련(1808∼1893)이 말년에 거처하던 곳. 연못이 아름다운 운림산방의 소치기념관엔 소치 허련, 미산 허영, 남농 허건, 임전 허문 등 4대에 걸친 화가들의 귀중한 작품이 전시돼 있다.

천연기념물 제107호로 지정된 첨찰산의 상록수림은 동백나무 후박나무 등 상록수들이 햇빛을 가릴 정도로 울창하다. 꽃잎이 붉어 여심화로 불리는 동백꽃은 진도의 군화(郡花)로 섬 곳곳에서 군락을 이루고 있다. 지초 뿌리로 빚은 홍주처럼 붉은 동백은 10월 말부터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해 해마다 이맘때면 첨찰산 골짜기를 ‘적색의 계곡’으로 채색한다.

노랑부리저어새가 군내호에서 황홀한 비행을 선보이고 있다(왼쪽). 진도의 아낙들이 초록밭에서 봄동을 수확하고 있다(가운데). 쌍둥이 다리인 진도대교가 화려한 조명을 밝히고 있다(오른쪽).

‘모세의 기적’으로 유명한 신비의 바닷길을 달려 의신면 금갑리에서 연륙교를 건너 접도의 남망산(164m)에 오르면 경치는 더욱 화려해진다. 접도웰빙길로 불리는 등산로 끝에 위치한 남망산에 서면 맑은 날에는 멀리 제주도 한라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남망산도 일출과 일몰을 감상하는 포인트로 특히 섬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전복 양식장과 김 양식장, 그리고 굴 양식장과 이웃한 해안도로를 구불구불 달리면 돌탑이 아름다운 여귀산 돌탑길과 진도다시래기 등 진도사람들의 한 맺힌 가락이 흘러나오는 국립남도국악원이 스쳐간다. 이곳에서 배중손 장군의 동상이 우뚝 솟은 굴포항과 석성으로 유명한 남도진성을 지나면 세월호의 아픔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팽목항을 만나게 된다.

팽목항과 가까운 급치산전망대는 조도군도를 비롯해 진도 서쪽 바다에 위치한 수많은 섬들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정상까지 자동차를 타고 오를 수 있는 데다 낙조도 아름다워 진도관광 일번지나 다름없다. 급치산전망대에서 세방낙조전망대에 이르는 해안도로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시닉 드라이브 코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다도해의 풍경이 서럽도록 아름답다.

진도 해안도로에서 만나는 낙조는 사뭇 서정적이다. 햇무리가 그려내는 다섯 가지 색깔의 낙조로 유명한 세방낙조는 지산면 해안도로에 위치한 세방낙조전망대에서 볼 때 감동적이다. 해질 무렵 섬과 섬 사이로 빨려들어가는 해가 시시각각 만들어내는 오색의 향연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기상청은 세방낙조를 한반도 최남단에서 만나는 최고의 낙조로 꼽았다.

세방낙조는 해안도로 전망대보다 뒷산 중턱 나무계단 끝에 세워진 정자에서 볼 때 더욱 감동적이다. 손가락섬과 발가락섬 등 기기묘묘한 형태의 섬들을 품은 진도의 다도해는 갑오년의 대미를 장식하는 해가 수평선과 입을 맞출 때까지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색을 한곳에 모아놓은 ‘오색의 바다’를 완성한다.

진도=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뉴스 미란다 원칙] 취재원과 독자에게는 국민일보에 자유로이 접근할 권리와 반론·정정·추후 보도를 청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고충처리인(gochung@kmib.co.kr)/전화:02-781-9711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생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