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개천에서 용 낸 '쿠아드리야'의 힘

협동조합 4500개 시대. 국내 협동조합들엔 '살아있는 전설'이 있다. 몬드라곤협동조합그룹(Mondragon Cooperative Corporation·MCC)이다. 스페인 바스크 지역의 산골 마을에서 출발한 이 그룹은 일자리 8만여 개, 연 매출 19조 원, 금융자산 33조 원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냈다. 스페인어로 몬드라곤은 '용의 산'이란 뜻이다. 말 그대로 개천에서 용 났다.

이 얘기를 듣는 사람이 늘 하는 질문이 있다. "몬드라곤 모델이 한국에서 될까?" 몬드라곤 설립자인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의 헌신, 협동조합 정신과 원칙을 충실히 지켰다는 조합원들, 매년 2000억 원 이상 집행되는 연구개발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뭔가가 있다는 것이다.


몬드라곤 모델을 전파하러 해피브릿지몬드라곤(HBM)연구소에 파견 나와 있는 후안호 마틴(Juanjo Martin) 몬드라곤대 교수는 자기도 그게 궁금했다고 말했다. 그는 스페인에서도 바스크에만 있는 '뭔가'를 찾았다고 했다. '쿠아드리야(Cuadrilla)', 평생 함께 하는 친구들이라는 뜻의 바스크어다.

바스크에선 태어날 때부터 평생 함께 하는 '쿠아드리야'라는 개념이 있다. 우리로 치면 죽마고우쯤 될까.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함께 어울려 놀면서 바스크 아이들은 '쿠아드리야'를 이룬다. 대여섯 명부터 많게는 25명까지 뭉친다.

이들은 좋은 일이 있든, 나쁜 일이 있든 언제나 함께 한다. 바스크 사람들은 내가 위험에 빠지면 나의 쿠아드리야가 와서 도와줄 것이라고 믿는다. 만약 한 사람이 파산하면 그의 쿠아드리야는 돈을 모아 그를 돕는다. 마틴 교수는 "한 명이 다른 1명을 도와주는 건 힘들지만 여럿이 1명을 돕는 건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바스크 사람은 평생 1개의 쿠아드리야에 속해 있다. 친구는 늘어나도 그가 속한 쿠아드리야는 하나뿐이다. 한 사람의 성과는 곧 쿠아드리야의 성과가 된다. 한 소년이 '나 이제 공부 안 할래' 하면 그의 쿠아드리야는 우르르 몰려가서 '공부를 하든 기술을 익히라'고 그를 끄집어낸다.

한 사람의 쿠아드리야는 그의 삶에 개입한다. 이게 죽마고우와 쿠아드리아의 차이다. 쿠아드리아는 개개인 관계가 아니라 그룹이다. 이들은 정체성과 가치, 꿈과 생각을 공유한다. 정치적 성향도 비슷하다.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가 내전으로 황폐해진 몬드라곤에서 처음 왔을 때 본 것이 '쿠아드리야'들이었다. 그는 바스크 특유의 이 문화가 '평등과 연대'라는 협동조합 정신을 살리는 데에 적합하다고 봤던 것일까. 그는 쿠아드리야 단위로 일을 진행했다. 몬드라곤의 첫 협동조합 울고(Ulgor)는 5명1조의 쿠아드리야가 만든 것이었다.

마틴 교수는 한국에서도 '쿠아드리야'와 비슷한 문화가 있는 곳에서 협동조합을 시작하길 제안했다. 예를 들어 작은 산골마을이라든가. 그래야 협동조합에 필요한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에 쉬울 것 같다는 것이다.

설립신고된 협동조합 중 절반은 개점휴업 상태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된지 2년도 되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벌써 협동조합 모델의 한계를 말한다.

지금의 몬드라곤이 되기까지는 70여 년이 걸렸다. 우리의 아이들, 그 아이의 아이들 시대엔 '쿠아드리야' 같은 연대가 우리 사회에 퍼질 수도 있다. 마틴 교수는 말했다. "호세 마리아 신부는 사람들을 믿었다. 사람에 의해 역사가 만들어진다는 것도 믿었다."

후안호 마틴 몬드라곤대 교수 /사진제공=해피브릿지몬드라곤(HBM) 협동조합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