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정부가 관련 법령 개정을 서두르고 있다고 한다. 5% 이상 주식을 보유한 대주주는 1%포인트 이상 지분 변동이 생기면 5일 내 신고해야 하는데 국민연금 등 연기금에는 예외를 인정해 줄 모양이다. 연기금, 자산 운용사 등 기관투자자들이 충직한 집사(스튜어드)처럼 고객들을 대신해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국내 주식시장에 130조원 넘게 투자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주주권 행사에 나서고 투자 기업의 경영에 참여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작년 9월 말 기준으로 상장사 가운데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이 275곳, 10% 이상 보유한 기업이 84곳에 이른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등 국가대표급 기업이 거의 다 포함돼 있다. 이런 '큰손'이 감 놔라 배 놔라 하게 된다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날 것이다. 경영진 면담 요구, 사외이사·감사 후보 추천 등에서부터 1~2년 뒤에는 배당 실적 등이 낮은 기업을 중점 관리 회사로 선정해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방안까지 거론된다. 혹시나 국민의 집사가 아니라 정부의 대리인 노릇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진다.

지난 4월 해외 투자자에게 지급한 기업들의 배당금이 8조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대기업의 배당 확대가 원인이라고 한다. 대기업들이 외국 펀드 공격에 맞서 경영권을 방어하느라 외국인 주주들 입맛에 맞춰 배당을 늘렸다고 한다. 주주 친화적인 경영은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신기술과 새로운 분야 개척에 투자해야 할 돈이 줄어들게 됐다. 이런 마당에 국민연금이 사외이사, 감사 후보 추천하고 지배 구조 개편하라, 사회적 투자 늘려라, 쉽지 않은 주문을 할까 걱정하는 기업인이 늘어나고 있다. 대기업들이 외국계 펀드 동향 파악에 눈이 팔리고, 국민연금의 '블랙리스트'에 들어가지 않고자 신경 쓰다가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게 된다면 어찌 되겠나. 기업이 경영권 유지에만 급급해서 몸을 움츠리면 경제도, 일자리도 쪼그라들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