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TL] IT-85 , 고급스러운 격조 느껴지는 진하고 깊은 음악성
모든 오디오 브랜드가 마찬가지지만, 큰 오디오 제작사나 큰 오디오 시장은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 지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북미 시장, 그리고 일본 시장 정도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진공관 앰프도 마찬가지이다. 유럽을 대표하는 진공관 앰프 브랜드가 있고, 미국을 대표하는 진공관 앰프가 있는가 하면, 일본도 제법 진공관 앰프에 대해서는 고집스러운 역사와 상품성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전체적인 진공관 앰프에 대한 수요가 다소 줄어들면서 지명도나 영향력이 약한 일본 진공관 앰프들은 다소 그 사세가 수그러든 상태라, 현존하는 진공관 브랜드의 양대 산맥은 유럽과 미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중에서도 그 특징 차이를 나누자면, 유럽을 대표하는 유니슨리서치나 자디스의 경우는 비교적 색채감이 돋보이고 유화적이면서도 부드럽고 감미로운 타입이라면, 미국은 역시나 대륙적인 기질이 있어서 소리 하나하나를 더 정확하게 표현하려는 기질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그 그레이드가 높아지면 중량감 넘치는 파워와 구동력이 뛰어나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VTL 이 있다. 미국의 하이엔드 진공관 앰프라면 일반적으로 오디오리서치를 많이들 떠올리는데, VTL이 상대적으로 국내에 소개가 덜 되었을 뿐이지, VTL이 가지고 있는 깊이 있는 음악성과 가격대비 퍼포먼스 및 존재감은 절대로 어느 하이엔드 브랜드에 밀리지 않는다.
더욱이 최근 VTL의 제품 라인업을 보면, 과거에 비해 굉장히 다양한 제품 라인업을 갖추고 있고, 다양한 제품들의 만듦새나 퍼포먼스에서도 남다른 고급스러움과 듬직한 품위와 풍채가 남다르다. 그리고 최근 들어 모든 라인업이 신제품화되면서, 디자인부터가 진부하고 투박했던 새시들을 벗어 던지고, 곡선형으로 굉장히 미끈하면서도 고급스럽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VTL에서는 새로운 디자인의 IT-85라는 인티 앰프를 출시했다. IT-85는 기존 과거 모델에 비해 월등히 세련된 디자인과 무엇보다도 견고해 보이면서도 고급스러운 마감에서는 정말 큰 폭으로 좋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단 앰프의 높이가 제법 되는 게 안정감도 있어 보이고 듬직해 보이며, 작은 나사 하나, 노브 하나도 엔트리급 제품들과는 마감이 다르다. 특히 간단히 노브 하나만 만져봐도 그 노브 부품 자체의 마감이나 부품값도 최근 제작된 앰프들 중에서는 가장 고급의 부품으로 확인된다. 그만큼 이 VTL IT-85는 소비자 가격이 만만치 않다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사진상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고급 유저들을 위한 배려와 차별화가 투입된 제품이라고 볼 수 있다.
구성 면에서 이 앰프의 출력관은 EL34이다. KT88과 함께 가장 많이 사용되는 출력관으로 으레 KT88이 강직하고 진하다면, EL34는 따스하면서도 농염하고 화사하며 예쁘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IT-85는 총 4개의 EL34를 사용하고 있는데, 출력은 무려 60W나 된다.
이는 A클래스에 60W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출력 수준은 꽤 대단한 수준이다. 그리고 IT-85는 케이스 안에 숨겨져서 잘 보이지 않지만, 굉장히 듬직한 전원부 트랜스를 탑재하고 있다. 그래서 IT-85의 총 패키지 질량은 29.5KG, 실제 제품 무게는 26KG가량 짐작된다.
VTL 자사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VTL의 진공관 앰프들의 특징은 '빠르고 음악적인 3차원 사운드에 튼튼한 저역'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본인도 그 말에는 어느 정도 동감하는 편이다. VTL의 진공관 앰프는 유럽제 진공관 앰프보다 빠르고 선명하며 저역의 제어력이 뛰어나다. 그리고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티없이 깨끗한 음색을 추구하는 다른 미국제 진공관 앰프들에 비해서는 한결 더 진하고 깊은 음악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단순히 티없이 깨끗한 Clean & Clear한 소리가 듣고 싶은 것이라면 굳이 진공관 앰프를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이며, 과도하게 중고음은 투명도만 강조하다 보면 자칫 전체 음색이 너무 가볍게 들리거나 얇게 들릴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음색보다는 VTL처럼 적절히 중고음에 음영과 배음, 두께감이 있으면서도 호소력 짙은 선명도를 추구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된다.
일반적으로 인티 앰프로는 구동이 만만치 않은 준대형급 톨보이 스피커를 물려서 시험 테스트를 해보았다. 간단히 출력관이 살짝 열을 받을 수 있도록 5분 정도 예열을 하고 음악을 재생하니, 예상했던 대로 묵직하면서도 지극히 안정감 있는 진중한 음색의 사운드가 퍼져 나온다.
클래식 음악이나 감미로운 재즈 음악을 들을 때, 진한 호소력이 공존하면서도 상당히 심미적이고 고급스러운 격조가 있다. 이 고급스러운 격조라는 것은 일종의 능숙한 완숙미와 힘, 여유로움과 기교가 어우러진 것으로, 2인승 스포츠카를 몰다가 4000cc정도 되는 세단을 모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2인승 스포츠카는 출발 속도가 빠르지만 소음이 심하고 심차감이 고급 세단에 비해서 떨어진다. 그러나 고급 세단은 속도감 면에서도 딱히 스포츠카에 비해 심하게 떨어지지 않지만, 그보다 중요한 정숙성과 안정감, 그리고 자연스러운 승차감이 스포츠카에 비해 월등히 뛰어나다.
중저역의 중량감도 좋지만, 그 저음의 양감이나 무게감에 지나침이 없다. 너무 뭉쳐져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풀어지는 것도 아니다. 적절히 가라앉은 듯하면서도 탄력감과 중량감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중고음의 질감은 상당히 요염한 수준이다.
중음에 충분한 만큼의 배음과 잔향이 있지만 자연스러운 원음의 윤곽이나 무대감의 형태를 잘 표현해주는 상태에서 잔향을 딱 좋을 만큼만 흘려준다. 무대감의 넓이도 굉장히 넓게 표현이 되지만, 단순히 고음만 쫙쫙 뻗어서 넓게 표현되는 스테이징도 아니고, 무턱대고 저음만 많아서 음장감이 크고 넓게 표현되는 느낌도 아니다.
VTL에서 밝히는 자사 제품의 특징의 홍보문구로 '음악적인 3차원적 사운드'라는 말이 있는데, 진공관 앰프가 이렇게 고급스러운 소리 하나하나의 질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앞뒤 전후 공간감의 윤곽과 공기감을 잘 표현하는 것도 흔치 않았던 것 같다.
더욱이 위와 같이 설명을 하면, 마치 진공관스러운 질감만 강조를 하다 보니 자칫 소리가 답답하지는 않을까 걱정할 수 있겠지만, 중고음의 심지와 맥이 지극히 뚜렷하면서도 그 안에 주된 사운드의 생동감 표현에도 절대 소홀히 하는 법이 없다. 그래서 이 사운드가 호소력이 뛰어나면서도 전체 사운드가 진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극도로 구동이 어려운 스피커들에서는 단호한 느낌에서 다소 아쉬움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정도의 변태급(?) 스피커들만 아니면 매칭해서 자연스럽고 고급스러운 음악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라 본다.
의외로 빈티지 류의 스피커들과도 음색적으로 매칭이 아주 좋을 듯하고, 소위 우퍼 유닛이 10인치 이상이고 통이 넓고 큰 궤짝류 스피커들과의 매칭에서도 굉장히 근사하고 격조 있는 사운드를 연출해줄 것 같다.
힘도 좋고, 고급 진공관 앰프에서나 느껴볼 수 있는 질감적인 측면에서도 좋고, 뿐만 아니라 다른 앰프에서는 느껴보기 힘들었던, 이 가격대 인티 앰프에서 공존하기 힘든 여러 가지 매력 요소들을 함께 느껴볼 수 있다는 점도 아주 마음에 든다. 인티 앰프로서 가격이 저렴한 편은 아니지만, 충분히 그만큼의 자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앰프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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