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사외이사 임기까지 시행령으로 제한… 도 넘은 국가 개입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4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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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기업 사외이사의 임기를 6년으로 제한하고 계열사 퇴직임원이 사외이사를 맡을 수 없는 기간을 퇴직 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는 내용의 상법 시행령 개정안이 9월 발표됐다. 당시 개정안 발표에 대해 상장회사협의회는 금융업을 제외하고도 사외이사를 새로 뽑아야 하는 회사가 566개, 새로 선임해야 할 사외이사가 718명에 달해 사외이사 대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근 기업평가회사인 CEO스코어가 삼성, SK 등 국내 대기업집단을 대상으로 사외이사의 임기를 전수 조사해보니 상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내년 3월 92명의 사외이사가 한꺼번에 사퇴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기업 경영에 충격을 줄 수 있는 조치를 국회의 법률 개정도 아닌 정부 입맛대로 뜯어고칠 수 있는 시행령으로 밀어붙이고 있고, 이변이 없는 한 내년 초 그대로 적용될 예정이다. 경영진의 독주를 막고 잘못된 결정을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할 사외이사가 경영진과 유착해 ‘거수기’ 역할에 그치는 관행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한다고 해도 정부가 민간기업의 사외이사 임기까지 구체적으로 몇 년으로 하라고 정하는 것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 사외이사제를 도입하고 있는 나라는 많지만 임기까지 정부가 정하는 나라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

법적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헌법 126조는 ‘국방상 또는 국민 경제상 긴절한 필요로 인해 법률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영기업의 경영을 통제 또는 관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기업도 아닌 민간기업의 사외이사 임기를 못 박는 게 국방상 또는 국민 경제상 긴절한 필요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거니와 법률이 아닌 시행령으로 정부가 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어제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등 관련 5개 경제단체는 ‘시행령 개정을 통한 기업경영 간섭,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의 정책세미나를 열고 심각한 우려를 제기했다. “이런 제도적 환경이 기업가 정신을 크게 훼손하고 투자 의지도 꺾어, 결국 국내에 만들어질 일자리를 해외에 빼앗기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세미나 참석자의 지적이 기우로만 들리지 않는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아무리 막중해도 사외이사의 임기를 어떻게 정하든, 누구를 선택하든 그것은 기업의 주인인 주주들이 정하고 책임질 문제다. 경제 사정이 악화되자 대통령, 장관이 나서 대기업 현장을 방문해 투자를 독려하고, 일자리 창출에 힘써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기업의 자발적인 경영활동을 옥죄는 장치들을 만들어서야 기업의 활력이 살아날 리가 없다. 이제라도 시행령을 철회하든가 국회가 나서 이를 저지해야 한다.
#사외이사#상법 개정#국가 개입#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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