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라, 오지마라…갈 곳 없는 에이즈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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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6.01.21. 오후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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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질본 ‘국립의료원서 나가라’ 통보
“요양병원 안가면 간병지원 안해”
환자들 “요양병원선 안받아주는데”
에이즈단체, 인권위에 긴급구제신청


“비참하네요.”

에이즈 환자 ㄱ(48)씨의 아내 권아무개(48)씨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에이즈 환자의 지원을 책임지는 질병관리본부(질본)가 ‘요양병원으로 22일까지 옮기지 않으면 간병 지원을 끊겠다’고 통보해왔는데, 정작 받아주겠다는 요양원이 한 곳도 없었기 때문이다. 권씨는 “중앙의료원을 통해 요양병원 몇 곳을 소개받았지만 결국 모두 입원을 거부 당했다”고 말했다. 뇌졸중 합병증까지 겹친 ㄱ씨는 정부로부터 간병인 지원을 받으며 2013년부터 국립중앙의료원에 머물러 왔다. 기초생활보호대상자인 권씨 가족은 정부 지원금이 끊기면 한 달 180여만원에 달하는 간병인 비용을 댈 여력이 없다.

질본은 2013년 ‘중증 에이즈 환자 장기요양사업’을 수탁하던 경기도의 한 병원에서 인권침해 문제가 발생하자 위탁계약을 해지한 뒤, ㄱ씨 등 중증 에이즈환자 35명을 국립중앙의료원과 국립경찰병원 등으로 옮겼다. 이 병원들은 요양보다 처치 목적이 강한 ‘급성기 병원’들이다. ‘장기요양 환자들을 수가가 높은 급성기 병원에 두고 지원하는 것은 의료전달 체계와 다른 환자와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일자, 질본은 지난해부터 급성기 병원에 있는 환자들을 요양병원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22일은 질본이 제시한 ‘최후 통첩의 날’이다.

문제는 갈 곳이 없다는 점이다. 에이즈에 대한 편견과 감염 우려 등을 이유로 요양병원들이 환자 받기를 꺼려하고 있어서다. ‘에이치아이브이/에이즈(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나누리+)등 에이즈 인권단체들의 2014년 조사에선, 16개 시도의 에이즈업무 담당자들이 모두 요양병원 연결에 난색을 표했을 정도다. 질본이 직접 요양병원들을 설득해 몇몇은 옮겨갔지만, 아직까지 10여명은 국립중앙의료원 등에 머물고 있다.

나누리+ 등 11개 단체로 구성된 ‘에이즈환자 건강권 보장과 국립요양병원 마련을 위한 대책위원회’는 21일 국가인권위원회에 당장 전원하라는 질본의 방침을 유보해줄 것 등을 요청하는 긴급구제신청을 냈다. 이에 질본 쪽에선 “감염의 우려가 거의 없는 에이즈 환자들에 대한 차별적 인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며 “전원하지 못한 환자들에 대해 어느 정도 간병비를 지급하면서 옮길 만한 요양병원을 찾도록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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