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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아카데미상 4개 거머쥔 `기생충`, 한국영화 새 역사 썼다

입력 : 
2020-02-11 0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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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영화사에 상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백인들의 잔치'인 미국 아카데미 장벽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것도 작품상·감독상·국제영화상·각본상 등 무려 4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리면서다. 특히 최고 영예인 작품상을 거머쥔 것은 101년 한국 영화 역사에 획을 그은 일이다. 세계 영화산업의 메카인 할리우드가 한국 영화를 인정한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비영어 영화가 작품상을 수상한 것도 아카데미 92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아카데미는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영화상으로 손꼽히지만 지금껏 작품상 후보에 오른 비영어 영화가 10개가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외국 영화에 야박하고 폐쇄적이었다. 미국 영화 중심이었던 아카데미가 경계를 허물고 외국 영화를 포용했다는 점에서 '기생충'의 수상은 아카데미 역사도 새로 썼다고 할 만하다. 봉준호 감독은 지난해 미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아카데미 시상식을 두고 "국제영화제가 아니지 않나. 매우 '로컬(지역적)'이니까"라는 도발적 발언을 하기도 했는데 아카데미가 기생충에 4개의 트로피를 안기며 로컬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한 셈이 됐다.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 문을 두들긴 것은 1962년 신상옥 감독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가 처음이었다. 이후에도 꾸준히 노크했지만 수상은커녕 최종 후보 지명에도 실패했다. 기생충의 수상으로 58년 만에 한을 풀게 됐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수상한 것도 64년 만이다. 아시아계 감독상 수상도 대만 이안 감독에 이어 봉 감독이 두 번째다. 각본상도 아시아계 작가로는 처음이다.

'기생충'의 쾌거는 하루아침에 뚝딱 이룬 기적이 아니다. 101년간의 한국 영화인들의 끊임없는 도전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만들어진 성공이다. '기생충'은 그렇게 축적된 한국 문화콘텐츠의 힘을 보여줬다. 빈부격차와 계급갈등이라는 전 세계가 직면한 보편적인 주제를 블랙코미디로 솜씨 있게 엮어낸 것이 전 세계인들의 공감을 얻은 것이다. '기생충'은 지금까지 40여 개국에서 개봉했고, 다른 디자인과 문구의 해외 포스터 등이 화제가 되면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기생충'의 쾌거는 한국 영화의 위상을 한 단계 올려놓는 계기가 됐다. 이제 한국 영화를 보는 할리우드의 시선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1인치 정도 되는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는 봉 감독의 말이 통한다면 한국 영화에 대한 수요도 많아질 것이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이 한국 영화가 좁은 한국 내 무대를 벗어나 세계시장으로 뻗어나가는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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