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박 대통령, 국정원 해킹 의혹에 왜 침묵하나읽음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 해킹 의혹이 발생한 지 보름이 되도록 침묵하고 있다. 어제 국무회의에서도 16분 동안 강의하듯 국정 개혁을 강조했지만 국민의 관심사인 국정원 해킹 및 민간사찰 의혹에 대해선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도 따로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음지에서 일하는 국정원의 입장과 국정원 대선 개입으로 곤욕을 치른 박 대통령의 처지를 감안해도 지금의 침묵은 도가 지나치다.

국정원법 2조는 ‘국정원은 대통령 소속으로 두며, 대통령 지시와 감독을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국정원이 간첩이나 테러리스트로 의심하는 북한 국적자 및 외국인에 대한 감청을 할 경우 4개월에 한 번씩 대통령의 허가를 받게 돼 있다. 이처럼 국정원의 최종 지휘자인 대통령이 국정원의 의심되는 불법행위를 보름째 방관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박 대통령은 2005년 야당인 한나라당 대표 시절 ‘도청은 김대중 정부 시절 하다가 (노무현 정부 들어) 중단했다’고 한 국정원에 대해 “그걸 누가 아느냐. 도청이 없어졌다고 주장하려면 국민이 믿을 수 있을 때까지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고 한 바 있다. 당시 국정원을 질타하던 인권의식은 어디로 간 것인가.

이번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열쇠는 박 대통령이 쥐고 있다. 2005년 당시 국정원의 도청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부는 국가기관의 불법행위를 사실대로 철저히 밝혀야 한다”고 분명히 말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도 마찬가지로 한 점 의혹 없이 수사할 것을 지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문제의 진상이 묻힐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박 대통령의 침묵은 그냥 침묵일 수 없다. 국정원 편에 서서 사건의 진실을 밝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무언의 의사 표시로 오해받기 좋은 상황이다. 대통령이 만에 하나 그런 태도라면 나중에 검찰이 수사에 나선다 해도 진상을 밝혀내기 어려울 것이고, 시민들 또한 그 결과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어제 한 여론조사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국정원 해킹 프로그램이 내국인 사찰에 사용됐을 것’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의 52.9%였다. 대테러·대북 활동을 위해서만 해킹했을 것이라는 응답자(26.9%)의 두 배였다. 이는 시민들 사이에서 국정원 해킹이 국내인 감시 목적이라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음을 잘 말해준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이 말 한마디 없이 계속 의심스러운 침묵을 유지한다면 국정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질 것이다. 박 대통령이 이번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를 정쟁으로 치부하려는 게 아니라면 더 늦기 전에 책임감 있게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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