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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기업 변화의 바람, 내년엔 `애자일 경영`이다

입력 : 
2019-12-02 00: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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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그룹이 지난달 28일 임원인사에서 세대교체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50대 최고경영진을 대거 발탁하고 40대 임원을 전진 배치한 것이다. 30대 여성 임원 3명이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파격적인 인사 배경엔 구광모 회장이 40대라는 점도 있지만 대내외 환경이 급변하며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구 회장은 지난 9월 계열사 최고경영진이 참석한 워크숍에서 "엘(L)자형 경기침체 등 이전과는 다른 양상의 위기로 앞으로 몇 년이 우리 생존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라며 사업 방식과 체질 변화를 주문한 바 있다. 변화의 바람을 타고 있는 기업은 LG그룹뿐만이 아니다. 정기임원 인사 발표를 앞둔 다른 대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삼성은 이미 비상경영을 선포한 만큼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를 예고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수석부회장 주도로 최근 몇 년간 임원 수를 줄여왔고, 근무복장과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등 조직문화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SK그룹은 지난해 임원 평균 연령을 40대로 낮췄는데 올해도 이런 흐름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그룹은 정체 상태에 있는 유통 계열사를 중심으로 세대교체와 함께 신사업 발굴에 모든 역량을 투입할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는 예년보다 한 달가량 이른 지난 10월 인적 쇄신을 단행했다. 실적 악화에 빠진 이마트 사령탑으로 50대 초반의 전문경영인을 영입하고 임원을 대폭 교체하는 등 비상경영에 돌입한 것이다.

변화를 위한 대기업들의 몸부림은 위기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글로벌 경제 침체와 통상마찰 등으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수요가 위축되고, 세계 시장에서 생존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이는 기업 투자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매일경제신문이 최근 국내 대기업 30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인 16곳이 올해 초에 설정한 목표 대비 투자 집행률이 100% 미만이라고 답했다. 이 중 4곳은 집행률이 50~74%에 불과했다.

내년에도 기업들의 경영 환경은 호전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제금융센터는 미·중 무역전쟁의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기 침체와 각국 정부의 정책 부조화, 저금리 후유증, 기업들의 신용등급 강등 등 악재가 널려 있다며 내년도 세계 경제 성장률이 3%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다른 기관들도 내년 세계 경제 전망을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국내 상황도 기업들에는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내년에는 4·15 총선으로 경제 이슈가 묻힐 가능성이 높고 포퓰리즘 공약이 난무하며 반기업 정책이 쏟아져 나올 수 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자율주행, 5세대 이동통신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전 분야로 빠르게 확산되며 비즈니스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도 변화에 굼뜬 기업들에는 치명적인 위협이다.

상황이 어려울 때일수록 기업은 혁신의 고삐를 당겨야 한다. 시장이 요동치고 기술 변화가 빠른 시기에는 오히려 도약의 기회가 찾아올 수 있다. 비상경영의 강도를 더 높이고 새로운 사업 모델과 신기술 개발에 모든 힘을 쏟아부어야 한다. 관건은 혁신의 속도와 과감한 미래 투자다. 기민하게 기회를 포착하고 한발 앞서 투자하는 '애자일(agile) 경영'이 절실한 이유다. 당장 성과가 나지 않고 실패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진정한 기업가정신을 발휘해야 할 때다. 그래야 혁신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돌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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