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주노동자 안전·인권 외면, 노동시장 무너진다

2019.09.17 20:59 입력 2019.09.17 21:00 수정

이주노동자를 국내 사업장에 배정할 때 ‘점수제’를 도입한 게 2012년이다. 한겨울·한여름에도 사업주들이 고용허가신청서를 들고 밤새 줄서기 경쟁하는 불편과 혼선을 줄이기 위함이었다. 고용이 절박하고 모범적인 사업장을 가려 우대한다는 뜻도 담겼다. 그러나 7년 넘게 정부가 정한 배점에서 안전 문제는 도외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주노동자 재해사망 때 사업주가 받는 감점은 1점이고, 2명 이상 숨져도 2점에 그쳤다. 성폭행(10점)이나 폭언·폭행·성희롱(5점), 툭하면 일어나는 임금체불(3점)보다도 턱없이 낮게 책정된 것이다. 이주노동자의 ‘목숨값’을 경시하고 산업재해를 방치한 탁상행정의 민낯이다.

세상을 놀라게 하는 이주노동자의 질식사와 추락사가 줄잇고 있다. 올여름에만도 서울 목동 빗물펌프장에서 수몰사고의 희생자가 됐고, 경북 영덕의 오징어젓갈공장 폐기물 지하탱크에서 4명이 질식사했다. 광복절 전날 강원 속초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추락한 외국인노동자 2명은 병원이송 중 잠적했다. 가스 질식사는 3년 전 경북 고령의 제지공장 원료탱크, 2년 전 경북 군위 돼지축사 사고의 재판이다. 안전 장비·수칙도 없이 작업하다 다수의 피해자가 나왔다. 이주노동자 산재 숫자와 빈도가 커지는 것은 필연이다.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3D 제조·건설 현장을 떠받치는 사람이 많아지고, 농어촌도 그들이 없으면 제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 올해 사계절에 한번씩 입국해 배정되는 신규 이주노동자(E-9)는 4만3000명. 재계약자·불법체류자를 합치면 훨씬 더 많고, 그들에게서 한 해 5000명의 산재와 100명 안팎의 사망사고가 나고 있다. 그럼에도 안전수칙을 어긴 사업주는 수백만원의 과태료, 과실치사도 대체로 실형보다 벌금형(1000만~2000만원)에 처해지고 있다. 비정규직의 ‘위험의 외주화’ 사다리 가장 밑동에 이주노동자가 매달려 있는 셈이다.

정부가 내년 산재사고 사망만인율(노동자 1만명당 사고 사망자 수) 목표를 0.39로 정했다. 2016년 0.53에서 2년간 0.02 줄인 숫자를 확 내린 것이다. ‘산재사망 절반 축소’라는 대선공약에 맞췄지만, 거북이걸음에 갑자기 속도가 붙을지는 미지수다. 사업주 선의에 맡기고, 사고 후 표본 사업장만 감독하는 정책 의지로는 어림없다. 낯부끄럽게 국제기준을 따질 것도 없다. 산재의 잔혹사를 끊지 않으면 이주노동자들이 메우고 떠받치는 노동시장이 무너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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