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맥주 키트를 생산하는 국내 스타트업 인더케그가 최근 끝난 미국 라스베이거스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잭팟을 터뜨렸다. CES가 수여하는 혁신상을 거머쥔 것은 물론 미국 진출을 위한 조인트벤처의 기업 가치가 예상보다 5배 높은 2억달러로 평가됐다. 100억원 규모의 첫 수출 계약도 성사됐다.
인더케그는 지난해 11월까지만 하더라도 국내 사업을 접어야 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2017년 원터치 방식의 수제맥주 키트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후 전북 군산에 공장까지 건설했으나 주류면허가 나오지 않았다. 국세청은 2년 만인 지난해 9월 '알코올 1도 이상'만 술로 본다는 이유를 들어 주류면허 발급 대상이 아니라고 통보했다. 캡슐을 터뜨리기 전의 맥주 키트는 술이 아니라 물이라는 논리였다. 47억원이 투자된 공장을 날릴 판이었다. 그해 11월 CES 측에서 '2020 혁신상' 통보가 오지 않았다면 실제 그렇게 됐을 가능성이 높다. CES까지 인정한 혁신 기술이 규제에 막혀 해외로 유출될 상황이라는 매일경제신문 보도 이후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중견기업인들이 '황당 규제'의 대표 사례로 지목했고, 이 목소리를 접한 이낙연 국무총리가 시정을 지시했다. 이후 국세청이 면허를 발급했고 주류 정의를 다시 규정하는 주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인더케그 사례는 일종의 신데렐라 스토리다. 잘된 일이지만 모든 스타트업이 이런 행운과 마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CES 혁신상이 아니었으면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을 것이고, 정부가 입장을 바꿀 일도 없었을 것이다. 수제맥주 키트라는 혁신 기술은 사장됐거나 해외로 빠져나갔을 공산이 크다. 한국에는 공장도, 일자리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무수한 스타트업이 규제에 막혀 그런 식으로 사라졌거나 지금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정부는 인더케그가 유명해지자 정부 주도 규제혁신의 대표 사례처럼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인더케그가 빛도 못 보고 사라져 버릴 뻔한 그 위기에 정부는 가슴이 서늘해져야 한다. 스타트업 기업들의 규제 혁파 호소에 귀를 열어 여론의 주목을 받지 않고도 혁신적인 사업의 꿈을 펼칠 수 있게 해야 한다. 제2, 제3의 인더케그는 우연에 기반한 신데렐라 스토리가 아니라 안정적 규제 혁신 시스템 속에서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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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설] CES서 펄펄 난 인더케그, 이런 규제개혁 성공사례 계속 나와야
- 입력 :
- 2020-01-13 00: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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