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위안부 합의 자화자찬에 또 야당심판 주장한 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3·1절 경축사에서 지난해 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한·일 합의 배경을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피해자 할머니가 한 분이라도 더 살아 계실 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집중적이고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인 결과”라고 설명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해 정부가 노력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합의 무효화를 주장하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인식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유족회는 지난달 27일 ‘나눔의 집’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위안부 합의는 피해자들을 무시한 정치적 야합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국갤럽의 지난 1월5~7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위안부 합의가 ‘잘못됐다’는 답변은 54%로 ‘잘됐다’는 응답 26%의 2배가 넘었다. 피해 당사자와 다수의 국민들이 ‘한국의 완패’라며 합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하는데도 박 대통령만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노력의 성과라며 자화자찬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일본 정부의 불성실한 태도를 원론적으로만 언급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일본은 위안부 합의문에서는 ‘군의 관여’와 ‘정부의 책임’을 명시했다. 하지만 전향적이던 태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완전히 달라졌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공개적으로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까지 부인한 상태다. 합의를 무효화하지 못하더라도 합의 정신을 전면 부정하는 일본의 행태에 대해 따끔한 지적이라도 해야 할 상황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강조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미래지향은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이란 합의 문구에 발목이 잡힌 정부의 대일 저자세 외교의 결과라는 점에서 전혀 미래지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박 대통령이 “북한이 핵으로 정권을 유지시킬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도록 해야 한다”고 밝힌 부분은 북한 붕괴론을 연상시킨다. “현 상황을 끝내기 위해서도 한반도의 평화통일 필요성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고 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남북 교류협력을 완전히 단절한 채 대북 제재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통일은 결국 북한 김정은 체제의 붕괴와 이에 따른 흡수통일뿐이다. 하지만 북한 붕괴론은 남북 긴장을 고조시키고 군사적 충돌까지 가져올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다. 중국이 존재하는 한 붕괴론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것도 이미 증명된 상황이다. 중국은 전례 없이 강한 대북 제재에 동의하면서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 논의를 병행하자고 제안했다. 정부는 대북 제재 국면 이후 닥쳐올 외교 환경의 변화에도 대비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야당의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이 이어지고 있는 국회를 향해 “직무유기”라고 지적했다. 이는 국가정보원의 대국민 사찰권을 강화하는 법안의 해악적 요소에 눈감고, 다수당의 일방적 법안 밀어붙이기를 막기 위한 합법적 의회 민주주의 절차를 무시하는 발언이다.

박 대통령은 또 “이럴 때일수록 국민 여러분의 진실의 소리가 필요하다” “국민들께서 직접 나서주시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4·13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중립을 지켜야 할 대통령의 정치개입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부적절한 발언이다. 3·1절 경축사를 통해 드러난 박 대통령의 국정 인식이 실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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