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바로가기

기사 상세

문화

소리꾼 이자람 "무대서 비겁해지기 싫어 언제나 혼신 다해요"

입력 : 
2014-04-13 17:02:03
수정 : 
2014-04-13 21:11:31

글자크기 설정

뮤지컬 `서편제` 주인공 소리꾼 이자람
신들린 무대 매진행진…`국악 재미없다` 편견 깨
"아파도 공연, 내 삶은 올림픽 합숙 훈련 같아"
사진설명
소리꾼 이자람(35)은 무대에서 물러날 곳을 두지 않는다. 애간장이 끊어질 정도로 절절하게 창을 한다. 저러다 숨이 넘어가지 않을까. 삶과 죽음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온몸을 바쳐 만드는 소리 같다. 뮤지컬 '서편제'에서도 내일을 잊은 사람처럼 심청가를 불렀다. 눈 먼 송화가 오랜 세월 피해온 동호를 맞닥뜨린 후 회환에 잠겨 부르는 창이다. 혼신을 다한 그의 소리에 반한 관객들은 용수철처럼 튀어오르며 기립박수를 쳤다.

최근 서울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만난 그에게 목숨을 내놓은 사람처럼 공연하는 이유를 물었다. 창 밖 어린이대공원 꽃은 만개했는데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일단 무대에 올라가면 내일을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저도 살고 싶고, 맛 있는 것도 먹고 싶지만 컨트롤이 잘 안 돼요. 나를 보러온 관객들이 눈앞에 있는데 비겁해질 수는 없죠."

무대에서 너무 무리를 해서 아팠던 적도 많다. 그러나 공연을 취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2010년 '서편제' 초연 때는 하루 두 번 공연해도 그의 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서편제에서 심청가 대목은 저한테 정말 중요해요. 드라마 정점을 찍는 장면이기도 하고, 뮤지컬로나마 판소리가 곡해 없이 전달되려면 따박따박 잘 불러야죠. 많은 대중 앞에서 판소리를 알리는 기회예요."

2007년 그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내 이름 예솔아'를 불렀던 네 살 꼬마가 어느덧 어른이 되어 독일 극작가 브레히트 희곡을 판소리극으로 바꾼 '사천가' 공연을 앞두고 있었다. 대본과 작창, 연출을 도맡고 혼자서 2시간 넘게 극을 이끈다고 했을 때 반신반의했다. 해맑은 얼굴로 "관객과 호흡하고 싶다"고 했는데 성과는 공연계를 뒤흔들어놓았다. 신들린 그의 무대는 늘 매진됐고 국악에 대한 편견을 깼다.

7년 만에 만난 그의 삶이 그동안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했다. 부모에게서 독립해 혼자 살고 있는 그는 "내 삶이 올림픽 훈련 기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제 평생이 올림픽이에요. 일상이 무대를 위한 훈련이죠. 관객과 약속한 시간에 나타나서 제대로 공연해야 합니다. 인기와 돈은 거품과 같아서 남는 것은 소리밖에 없어요."

혹시 이 삶에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은 없을까. 물론 있었다.

"왜 내가 일정을 이렇게 짰지, 왜 이렇게 나를 괴롭히지 후회도 했죠. 공연하는 사람들은 다 비슷할 거예요. 하지만 더 쇼 머스트 고 온! 공연 전에는 주파수가 돌아와 있어요."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희생해 완성한 그의 창은 말이 안 통하는 세계인들의 넋마저 빼놓는다. 프랑스 폴란드 미국 브라질 우루과이 등 외국인들은 그 앞에서 감정의 국경을 허문다.

"브라질에서 걷기도 힘든데 무대에 올라갔어요. 순도 100% 정신력으로 '억척가'를 공연했죠. 너무 아파 무아지경에서 소리를 했어요. 공연이 끝난 후 관객이 찾아와 무릎을 꿇고 제 발에 키스를 하더군요. 커다란 충격을 받았대요." 하지만 보수적인 국악계에서는 그를 주류로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혹시 서운한 적은 없었을까. "스승이자 인간문화재 송순섭 선생님이 '사천가'를 보러 오셨어요. '니가 나한테 없는 재능이 있더라, 잘 개발해서 좋은 소리 만들어라'고 덕담을 해주셨어요. 인간문화재에게 그런 소리를 듣고나니 이제 두렵지 않아요."

공연은 5월 11일까지 유니버설아트센터.

[전지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