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방위비 분담금 5배 올리라는 미국의 갑질

2019.09.25 20:44 입력 2019.09.25 20:51 수정

한국과 미국의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협상 첫 회의가 25일 서울에서 열렸다.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1년 단위로 결정한다는 방침에 따라 내년에 적용할 새 협상에 착수한 것이다. 그런데 올해로 11번째를 맞은 분담금 협상은 어느 때보다 난항이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틈만 나면 분담금 증액을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사정은 듣지 않는 우격다짐식 요구에 일일이 항변하기도 지친다.

미국이 분담금으로 50억달러(약 6조원)에 가까운 금액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 한·미 양국은 지난 3월 마무리한 제10차 협상에서 한국 측 분담금을 1조389억원으로 결정했다. 전년도 9602억원에서 8.2% 증액했다. 그런데도 미국은 한국이 너무 적게 부담하고 있다며 5배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한반도 주변으로 전개하는 미국의 전략자산 운용 비용까지 부담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분담금의 당초 취지에 어긋난다.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은 한국은 시설과 부지만 무상으로 미국에 제공하고 나머지 주한미군 유지 경비는 미국이 부담하도록 했다. 그런데 1991년부터 ‘특별협정’을 맺어 주한미군 유지비 중 일부(주한미군 한국인 고용원 임금과 미군기지 내 시설 건설비, 용역 및 물자지원 등)를 한국이 부담하게 했다. 미국이 이제 와서 과거에 없는 항목에 대해서까지 돈을 요구하는 것은 명백한 약속 위반이다. 게다가 미국은 한국이 내는 분담금을 다 쓰지도 못한다. 남은 돈을 은행에 쌓아둔 채 이자까지 받고 있다. 엊그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미국의 최대 무기구매국”이라고 스스로 말했다. 이런 사정을 알면서 방위비 분담금을 크게 올리라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하다. 더욱 유감스러운 일은 미국이 한국을 분담금 인상의 ‘시범 케이스’로 여기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과 먼저 협상을 마무리한 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일본 등에 이 모델을 적용할 것이라고 한다. 이런 협상은 수용할 수 없다.

주한미군은 한국의 안보만을 위해 주둔하는 것이 아니다. 동맹은 어느 일방의 노력만으로 발전할 수 없다. 이 원칙을 무시한 트럼프 대통령의 셈법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미국이 과도한 청구서를 내미는 것은 동맹을 해치는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3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리적 수준의 공평한 분담’을 약속했다. 이 정신을 미국도 존중해야 한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