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영우 뚝심의 외교…미사일주권 회복 주춧돌 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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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정권 때부터 다자외교 핵심·두터운 4강 네트워크 구축
美 안보보좌관과 담판·설득 이끌어내



‘미사일 사거리 500km 족쇄’를 11년 만에 푸는 데 결정적인 산파 역을 한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직업외교관으로서는 가장 극적인 변신에 성공한 인물이다.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정부에서 모두 외교안보 라인의 핵심으로 일하면서 정치적 색깔은 거의 드러내지 않았지만, 실무적으로는 적잖은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사실 천 수석이 외교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두 차례의 민주당 정권 시절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대북사업의 핵심이었던 경수로 지원사업을 맡으며 4강 외교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영사나 대사 등 현장외교보다는 외교정책 전반을 다뤄왔고, 2006년부터 3년간 당시 외교의 핵심이었던 6자회담 수석대표와 한반도평화교섭본부 본부장을 역임했다. 


현 정부 들어 잠시 주영대사로 핵심에서 한발 물러서는 듯 했지만, 2009년 외교2차관과 2010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에 잇따라 기용되면서 화려하게 부활한다. 이후 정치색은 띄지 않으면서도 실무해결의 기회를 포착하는 타고난 감각으로 승승장구한다.

이번 미사일 협정 개정은 애초부터 그보다는 현 정부 외교안보 실세로 불렸던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이 애를 써 온 현안이었다. 지난 8월 한ㆍ일 군사정보협정 밀실 추진 논란으로 김 전 기획관이 낙마하면서 천 수석에게로 주도권이 넘어왔다. 당시 그는 그동안 진행됐던 미사일 협상이 표류될 가능성에 대해 “미사일 협정도 (자신이) 직접 챙겨온 사안이다”며 전면에 나섰다. 실제 2009년 4월 북한의 미사일 실험 이후 2년여간 교착상태였던 미사일 협정이 타결의 물꼬는 그가 지난해 8월 톰 도닐런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직접 만나 3시간에 걸쳐 ‘담판’을 벌인 데서 트였다. 천 수석은 “당시 미국은 사거리 늘리지 않고 기존 지침을 갖고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입장이었는데, 왜 사거리와 탄두 중량 늘리는 게 필요한가를 이해시켰다”고 기억했다. 백악관 참모의 이해를 얻은 후 이 대통령이 한ㆍ미 정상 간 만남 때마다 개정 필요성을 언급했고, 결국 오바마 대통령의 ‘OK’ 사인을 났다는 설명이다.

2007년 10ㆍ4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2012년 한ㆍ미 미사일 협정 개정 등 철학이 다른 두 정부에 걸쳐 외교안보 부문에서의 성과를 이뤄낸 천영우 수석은 비록 ‘장관’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직업외교관으로서는 최고의 경력을 쌓게 됐다. 

<홍길용 기자>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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