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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퓨전 국악인 신수용 씨

“국악에 양악 더한 참신한 음악으로 소통”

  • 기사입력 : 2014-04-11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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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퓨전 국악인 신수용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합천호 앞의 전통찻집 입구에서 대금을 품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씨는 국악뿐만 아니라 성악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이용해 퓨전 국악 작업을 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세월아 쉬어가자 무얼 바삐 가느냐 어제는 그리 곱던 청춘 오늘 문득 보니 삶의 무게가 슬퍼라.’(세월아 쉬어가자, 작사·작곡:신수용)

    합천호를 옆에 낀 전통찻집은 그의 노랫말처럼 세월이 쉬어가는 곳 같았다. 전통찻집은 국악인 신수용(53)씨가 경영하는 곳으로 그의 음악작업 공간이기도 하다. 지난달 말 세월이 쉬어 가는 그곳에서 신씨의 음악철학을 들어보았다.

    신씨는 30여년간 국악계에 몸담고 있으며 지난 2012년과 올해 초 각각 ‘그대에게 가는 길’, ‘오늘 당신에게 좋은 일이 생길 겁니다’라는 두 장의 퓨전 창작 국악집을 발표했다.

    ◆국악과 함께한 삶

    차를 내온 그에게 음악을 청했다. 국악과 양악을 넘나드는 그의 음악은 듣는 이를 차분하게 때로는 경쾌하게 했다. 그는 수십년간 국악계에 몸담았지만 대중들에게 알려진 유명한 음악인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대중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신씨는 고향이 거창으로 어릴 적 영강 인근에 살았다. 해마다 강변에 천막을 치고 공연을 펼치던 유랑극단은 그를 사로잡았다. 유랑극단에서 들려오는 판소리, 대금, 해금 등 전통악기의 연주음악은 어린 그의 마음을 울렸다.

    “특히 대금소리가 듣기 좋았어요. 가까이서 듣고 싶어 몰래 들어가곤 했죠.”

    그는 중학교 때 방학을 이용해 단소부터 배웠다. 당시에는 전통악기를 배울 수 있는 기관이 드물어 이모댁이 있는 대전의 한 국악원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도 방학만 되면 단소와 대금을 배웠고, 그는 좀처럼 대금을 손에서 뗄 수가 없었다.

    80년대 초 그는 부산산업대 경영학과를 다녔으나 대금을 더 배우기 위해 학교를 중퇴하고 국악인 김동표씨를 찾았다. 김동표씨는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예능보유자이다. 신씨는 개인교습을 받으며 저녁에는 부산의 한 다방 DJ로 일하기도 했다.

    그는 “낮에는 국악 공부를, 저녁에는 대중가요를 틀어주는 DJ로 일하던 당시의 활동이 지금의 퓨전 국악을 지향하게 된 자양분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신씨의 대금 실력이 일취월장하자 그에게 대금을 배우러 온 이들도 하나둘 늘기 시작했다. 주로 초·중·고 음악교사들이 많았다.

    그는 다시 거창으로 돌아갔다. 지난 1988년 거창에 슬기둥 국악원을 설립했고, 1992년에 사단법인 국악협회 거창지부를 창립해 정기연주회 및 초청연주회 등도 가지며 지역에서 전통음악의 맥을 이어갔다.

    ◆퓨전 국악은 운명

    대금 연주실력이 알려지자 신씨는 유명 국악인들과도 친분을 갖게 됐고 음악에 대한 열정은 높아만 갔다.

    박동진 선생, 김소희 선생 등에게도 자문하기도 하며 지금은 고인이 된 동산풀이 문화재 김숙자 선생에게는 동산풀이도 직접 배웠다. 판소리 명창인 송순섭 선생으로부터 소리를 배우기도 했다.

    신씨가 공연회 등 대금 연주를 한 것은 지금까지 400여 차례. 그는 “대금 연주에 있어서만큼은 누구와도 겨룰 자신이 있다”고 했다. 대금 외에도 여러 전통악기를 다룰 줄 아는 신씨는 연주에 머무는 것이 답답했다. 자신만의 음악을 가지고 싶었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점차 작곡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됐다”며 “음악이야말로 문화충돌의 혼란을 극복해 주는 말 없는 통역관이다”고 말했다.

    신씨는 국악에 몸담으면서도 서양음악뿐만 아니라 인도음악이나 중동음악에도 관심을 가졌다. 90년대 초 부산대에 강의를 간 것이 계기가 돼 음대 교수와 성악가 등과도 교분을 쌓아갔다. 전통도 중요하지만 소통의 중요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주변 환경이 퓨전 국악을 만들어야 하는 ‘운명’을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작곡은 독학으로 공부했다. 2002년 순천 명신대 전통 공연예술과를 졸업해 이론적인 기반도 준비했다.

    ◆쉽지 않은 대중과의 만남

    산고 끝에 1집이 나왔다. 2012년 그는 정기연주회 등에서 짬짜미로 선보였던 곡들을 모아 타이틀곡 ‘그대에게 가는 길’로 음반을 제작했다. 퓨전답게 국악인뿐만 아니라 성악가 등 다양한 음악인들이 참여했다. 특히 영화배우이자 <서편제>의 소리꾼으로 유명한 오정해씨가 그가 작곡한 ‘나그네’와 ‘가시리’를 불렀다. ‘나그네’는 안도현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이다.

    올해 초에는 2집을 발표했다. 2집에 수록된 성악가 허철영씨가 부른 ‘세월아 쉬어가자’는 요즘 절에서 큰 인기이다.

    그의 노래는 아직까지 방송 전파를 탄 적도 없다. 신씨처럼 자력으로 앨범을 낸 경우, 유통과 홍보 비용 등 마케팅 판로에 음반시장의 벽이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꾸준히 음악활동을 하면 언젠가는 사람들이 알아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신씨는 “‘나그네’ 등 1집과 2집 수록곡 일부를 유튜브에 올려 놓았다”며 “내 이름을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쉰을 훌쩍 넘은 나이지만 현재 3집 작업에 여념이 없는 그는 음악에 대한 열정이 식을 줄 모른다.

    그는 “서로 튀지 않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국악과 양악의 크로스오버는 정말 힘들다”며 열정만큼 창작에 대한 고통도 토로했다.

    신씨는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국악도 양악도 아닌 중간이라며 퓨전 창작 국악을 비하하는 일부의 시선에 대해서 우려를 나타냈다.

    “전통음악은 분명히 보존 가치가 있어요. 하지만 그 바탕 위에 새로운 음악이 나올 수 있는 거죠. 대중에게 국악이 다가가려면 퓨전음악도 필요합니다.”

    김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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