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하청 일용직 ‘체당금’ 받을 길 막는 ‘노동부 행정해석’

김지환 기자

체불 임금·퇴직금 사각지대 내몰린 ‘조선소 물량팀’

재하청 일용직 ‘체당금’ 받을 길 막는 ‘노동부 행정해석’

“본공(조선소 1차 하청업체에 직고용된 노동자) 아니고 물량팀이라고요? 미리 말씀하셨어야죠. 물량팀은 체당금 못 받아요.”

지난 3월 거제시의 한 노무사 사무소를 찾은 물량팀(재하청 일용직) 노동자 ㄱ씨는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대우조선해양에서 물량팀으로 일했던 그는 사내하청업체의 도산으로 수백만원의 임금을 받지 못해 체당금을 받으려 했지만 뾰족한 답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선업 불황으로 하청 노동자 임금체불 사건이 늘고 있지만 물량팀 노동자들은 기형적 고용형태로 인해 체당금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똑같이 배 만드는 일을 해도 본공은 체당금이라도 받지만 물량팀은 이마저도 받지 못하는 것이다.

포털사이트 등의 질문 게시판만 봐도 물량팀 노동자들이 체당금 수령 가능성을 묻는 것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3년 근무(1년은 물량팀, 2년은 본공)를 했는데 체당금을 받을 때 물량팀 1년치는 못 받고, 본공 2년치만 받는 건가요?” “물량팀 소속으로 일했는데 업체가 문 닫는 바람에 두 달치 월급을 못 받았어요. 노동부는 업체 소속이 아니고 물량팀이기 때문에 물량팀장에게 받아야 한다네요” 등이다.

물량팀이 체당금을 받지 못하는 핵심 요인은 물량팀 노동자의 사용자를 물량팀장으로 보는 노동부의 행정해석 때문이다. 물량팀 노동자들은 ‘형식적 사용자’에 불과한 물량팀장을 따라 여러 현장을 옮겨 다니며 1~3개월 등 짧은 기간 일하는 경우가 많다. 체당금은 ‘6개월 이상 가동’이라는 사업주 요건이 충족돼야 지급되는데, 물량팀은 애초부터 체당금을 받기 어려운 고용형태인 셈이다. 노동부가 지난 8일 발표한 조선업 고용지원대책에는 물량팀 노동자가 체당금을 받을 수 없는 것에 대한 대책은 담겨 있지 않다.

노동부는 지난해 7월 기업이 도산하지 않더라도 확정판결을 받으면 체당금을 받을 수 있는 제도(소액체당금)를 도입했다. 아울러 건설일용노동자에 대한 소액체당금 특례를 신설했다. 건설일용직의 형식적 사용자인 무면허 건설업자(일명 오야지)는 체당금 지급 요건(6개월 이상 가동)에 해당되지 않아 건설일용직은 그간 체당금을 받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특례는 ‘6개월 이상 가동’이라는 사업주 요건을 무면허 건설업자뿐 아니라 공사·공정을 도급한 바로 윗단계 건설업자를 기준으로도 판단할 수 있도록 했다. 윗단계 건설업자의 경우 이 요건을 대부분 충족하기 때문에 건설일용직이 체당금을 받기가 쉬워지는 것이다.

김태욱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조선소 하청업체 폐업이 잇따르고 있는 만큼 건설일용직 특례를 물량팀에 일시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지만 이 역시 건설일용직·물량팀의 사용자를 여전히 무면허 건설업자·물량팀장으로 간주하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근본적으로 물량팀 노동자의 실질적 사용자는 원청이나 최소한 1차 하청업체인 만큼 노동부가 물량팀 노동자의 사용자를 물량팀장으로 행정해석하는 관행을 바꿔야 한다”고 설명했다.

■체당금(替當金)

사업주가 도산 등으로 퇴직 노동자에게 임금·퇴직금을 지급하지 못할 때 국가가 사업주를 대신해 임금채권보장기금에서 지급하는 체불액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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