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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적과의 동침` 마다않는 협력모델 만들어보라

입력 : 
2019-08-13 0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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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품·소재 克日의 길 ④ SK이노베이션은 최근 LG화학이 요청하면 전기차 배터리 분리막 공급을 얼마든지 늘릴 수 있다고 밝혔다. LG화학과 기술 유출 건을 놓고 소송을 벌이고 있지만 일본의 수출규제가 전기차 배터리 소재·부품으로 확대돼 어려움에 처하면 상생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자회사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에서 전기차에 쓰이는 리튬이온배터리분리막을 생산하고 있고 세계시장 점유율도 높은 편이다. LG화학과 삼성SDI는 주로 일본과 중국에서 해당 부품을 조달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에 분리막 공급을 확대할 가능성은 낮다. 도레이 등 국내에 분리막을 공급하는 일본 기업들은 수출규제 대상이 아니고 해외 공장에서 생산되는 배터리 물량이 많아 반도체만큼 타격이 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정 소송을 벌이고 있는 경쟁사라고 해도 국내 소재·부품 생태계 보호 차원에서 기꺼이 협력하겠다는 SK이노베이션의 열린 태도는 평가받을 만하다.

정부가 지난 5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소재·부품·장비산업의 자체 조달률은 60% 중반대에 머물러 있다. 특히 반도체는 27%에 불과하고 디스플레이도 45%에 그쳤다. 국산화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자동차와 가전, 조선도 60%대였다. 모든 산업에서 외형적인 성장을 이뤘지만 핵심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는 소재·부품·장비는 해외 의존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 핵심 소재같이 일부 품목은 여전히 90% 이상을 수입해야 할 만큼 구조가 취약하다.

이렇게 된 원인은 국내 기업들 간 협력이 부족해 장비와 소재, 부품, 완제품으로 이어지는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지 못한 탓이 크다. 한국이 세계시장 점유율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D램만 하더라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의기투합했다면 국내에서 경쟁력 있는 부품·소재 기업들이 많이 나왔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일본의 경제보복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으려면 지금부터라도 핵심 부품·소재의 자체 조달률을 높이기 위한 기업 간 협력 모델을 찾아야 한다. 국내에는 수입산을 대체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 부품과 소재, 장비 전문기업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대기업의 전속 거래 강요와 수직계열화 등 폐쇄적인 구조로 인해 사업화에 성공한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이런 관행을 깨지 못하면 결코 일본을 넘어설 수 없다.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는 새로운 협력 모델이 많이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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