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못한 ‘마이너스 경제 시대’···“경제학자가 아닌 심리학자가 필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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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에 ‘마이너스(-) 현상’이 속출하고 있다. 마이너스 유가에 마이너스 금리, 마이너스 물가, 마이너스 성장률까지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해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제는 0%대의 성장률과 물가상승률만 유지해도 다행으로 여겨야 할 판이다. 각 부문마다 개별적 요인이 있긴 하지만 이러한 마이너스 현상들의 기저에는 ‘과잉 공급’의 문제가 공통적으로 깔려있다. 공급은 넘쳐나는데 수요는 부족하니 가격이 곤두박칠치고 성장세도 축소되는 것이다. 경기 부진을 반영한 마이너스 현상은 가계, 기업 등 각 경제 주체들의 심리를 더욱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이제는 경제학자가 아닌 심리학자가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촌평하기도 했다.


일본은행은 지난달 29일 사상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0.1%로 내렸다. 마이너스 금리는 민간 은행이 일본은행에 자금을 예치하면 지금까진 이자를 줬지만 앞으로는 반대로 수수료를 받겠다는 의미다. 민간 은행이 중앙은행에 돈을 쌓아놓지 말고 개인이나 기업에 대출을 더 많이 해 시중으로 돈이 흘러들어가도록 하라는 취지다. 연간 80조엔(약 803조원)에 달하는 국채를 사들이며 시중에 돈을 풀어도 약발이 안 먹히자 꺼내든 조치다. 앞서 유럽 주요나라들도 마이너스 금리 체제를 도입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정책금리 하단인 예치금리는 2014년 6월 -0.1%가 된데 이어 현재 -0.3%까지 떨어졌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이외에도 스위스, 덴마크, 스웨덴이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스위스의 경우 기준금리가 -0.75%로 전세계 주요 은행의 기준금리 가운데 가장 낮다. 덴마크에서는 고객이 예금을 하면 보관료를 물리는 은행도 생겼다.

흥국증권 서동필 연구원은 “유럽지역의 시중금리는 이미 더 낮아지기도 힘들고, 상식을 벗어난지 오래”라며 “돈이 은행에 머무르지 않고 시중으로 움직이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있다고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이너스 금리가 확산되면서 국채 금리도 하락 압력을 받고 있다. 금리를 마이너스로 내릴 정도로 경제가 좋지 않고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강해지면서 안전자산인 국채로 자금이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금리가 낮아진다는 것은 국채 가격이 오른다는 의미다.

일본의 지표물인 10년물 국채금리는 지난 3일 0.044%까지 떨어져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2년물과 5년물 국채금리는 이미 마이너스 상태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도 1.845%까지 떨어져 9개월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하락했다. 스위스의 경우 10년물 국채금리가 마이너스 상태고 독일, 핀란드 등 유럽 주요국들도 10년물 국채금리가 이미 0%대까지 내려와 마이너스 금리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국제 유가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으로 인해 바닥모를 추락을 하고 있다. 미국은 2005년까지도 세계 최대 석유 수입국가였지만 셰일 오일(암석에서 뽑아내는 원유)을 개발하면서 석유 수입량이 반토막이 났다. 반면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오일 패권을 지키기 위해 생산량을 줄이지 않았다. 수요는 줄고 있다.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의 경기 둔화는 원유 수요 감소로 이어졌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단교 선언으로 OPEC이 원유 감산에 합의할 가능성이 희박해진 것도 유가를 끌어내렸다.

이런 가운데 미국에선 석유생산업자가 석유를 팔려면 돈을 내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미국의 한 정유회사는 노스다코타산 중질유 가격을 배럴당 -0.5달러로 책정했다. 노스다코타산 중질유는 유황함량이 높아 유황을 제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춘 플랜트에서만 정제가 가능하다. 정유회사 입장에선 중질유를 정제하거나 저장하는데에 비용이 많이 들어 역마진이 생기니, 생산업자에게 석유를 판매하려면 배럴당 0.5달러를 내라고 한 것이다.

대표적인 산유국인 러시아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러시아의 올해 연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종전 0.5%에서 -1.0%로 수정했다. 피치는 “지난해 국제 유가 급락으로 러시아 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다”며 “올해 역시 강력한 개혁, 정부 지출 감축 없이는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러시아의 지난해 연간 GDP 성장률 잠정치는 -3.7%로 집계됐다. 지난해 연간 산업생산(-3.4%), 실질 소득(-4.0%), 실질 임금(-9.5%) 모두 줄었다. 원유 수출국인 브라질 역시 올해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다. 블룸버그 자료에 따르면 전세계 97개국 중 지난해 GDP 성장률이 전년보다 낮아진 나라는 46개국(47%)에 달하고, 성장률이 마이너스대로 떨어진 곳도 6개국이나 된다.


물가도 바닥을 기고 있다. 올 1월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달에 비해 0.8% 오르며 석달 만에 다시 0%대로 주저앉았다. 지난해 물가 상승률을 떠받쳤던 담뱃값 인상 효과가 소멸되고 국제 유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올해 물가상승률은 사상 최저를 기록했던 지난해 수준(0.7%)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저물가 현상은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다. 블룸버그 자료에 따르면 전세계 97개 국가 중 지난해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나라는 그리스를 포함해 총 19개국이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14개국)보다도 많은 수치다. 스위스의 경우 2012년 이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의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지수 역시 한달 전보다 0.1% 떨어졌다. 최근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는 올 초 물가가 마이너스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이주영 기자 young7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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