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1명만 원해도 청문회" 미국 의회 봤더니…

[the300]문턱 낮추고 거품 뺀 청문회, 행정부 부담 논란 없어

심재현 기자 l 2016.05.25 05:58

국회 상임위원회의 청문회 요건을 완화한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행정부가 마비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면서 상임위 중심의 청문회가 정착된 미국 의회에 관심이 모인다.

19대 국회가 마지막 본회의에서 의결한 국회법 개정안은 미국식 청문회 제도를 반영한 법안이다. 2014년 국회의장 직속 국회개혁자문위원회에서 미국식 청문회를 벤치마킹해 상임위 차원의 청문회를 활성화하자는 취지로 제안했다.

미국 의회 상원의사규칙 24장과 하원규칙 11장에 따르면 각 위원회는 하원의 개·폐회에 상관없이 언제나 청문회를 열 수 있다. 미 의회에서 많게는 하루에도 10여차례의 청문회가 열리는 게 이 때문이다. 1년 동안 수천건의 청문회가 열린다. 국회의원들이 정기적으로 기간을 정해 정부를 감독·감사하는 '한국식 국정감사제도' 대신 현안이 있을 때마다 상임위에서 청문회를 통해 행정부 견제기능을 구현하는 셈이다.

미 의회에서는 다만 청문회의 목적과 유형,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해 청문회 남발을 사전에 방지한다. 우선 상임위 청문회는 △입법 △감사(감독) △조사 △인준 청문회로 구분된다. 국회법 개정안에서 논란이 되는 '현안조사' 목적의 청문회가 미국의 조사청문회에 해당한다. 1998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섹스스캔들을 파헤진 하원 사법위 청문회와 2010년 도요타 리콜사태를 다룬 상·하원 청문회가 대표적인 사례다.

대부분 청문회가 명확한 목적으로 개최되기 때문에 압축적이고 실질적으로 진행된다. 특정 현안에 대한 청문회 외에 행정부 고위직 인사의 인준 청문회도 철저하게 정책이나 주요 이슈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개인 신상이나 도덕성 문제는 청문회 이전 단계에서 언론이나 사정기관에서 걸러지는 데다 뒤늦게 밝혀지더라도 후보가 곧바로 사퇴하는 게 관례라 청문회에서 다루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

청문회에 출석하는 정부나 민간 인사가 최소화되는 것도 한국과 다르다. 장·차관이나 대기업 고위 임원이 소환돼 각 부처 실·국장이나 기업 실무자가 보좌진으로 줄줄이 달려나오는 한국 청문회와 달리 청문회의 목적과 범위를 정확하게 설정해 관련 부처 실·국장이나 기업 실무자를 대상으로 청문회를 진행한다. 이른바 군기잡기식 청문회가 없다는 얘기다.

미 의회 청문회 정족수가 하원 2명, 상원 1명에 불과한 이유도 여기 있다. 의원 1명이 정부 실무자 1명을 상대로 청문회를 진행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상원 외교위가 25일 '해외 해킹세력에 대한 연방정부의 사이버안보 전략'을 주제로 개최하는 청문회에도 크리스토퍼 페인터 국무부 사이버안보조정관 1명만 출석한다.

청문회 일정도 미리 정해진다. 소위 위원장이 청문 대상 등이 포함된 계획서를 청문회 개최 2주 전에 상임위원장에게 제출하면 위원장은 1주 전에 일정을 공고한다. 증인의 사전면담, 증언순서 등도 사전에 정한다. 청문회는 일반적으로 오전 9시나 10시에 시작해 점심 전에 끝낸다.

국내와 달리 미 의회에서는 조사관을 중심으로 한 보조직원도 증인심문에 참여하도록 허용해 청문회에서 윽박지르기가 난무하기보다는 현안을 따져묻는 분위기가 정착돼있어 청문회에 출석하는 정부 인사의 부담도 덜하다는 평가다.

국회 관계자는 "미 의회에서는 상시 청문회가 열려도 최소 인원이 정해진 시간에만 출석하기 때문에 국회 때문에 일을 못한다는 얘기가 나올 여지가 없다"며 "국정감사 때마다 주요 부처 장·차관들이 온종일 발언 순서를 기다리는 한국과는 확연하게 다른 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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