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갈 때 '녹색 모자'를 쓰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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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근의 시시콜콜 중국 문화] 색깔 속의 중국문화

 [임대근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베이징 서우두(首都) 국제공항.

연휴를 중국에서 즐기러 온 한국 단체 관광객. 너나없이 말끔한 차림으로 해외여행을 나섰다. 그런데 웬걸. 공항 로비로 우르르 쏟아져 나온 관광객을 향해 여기저기 킬킬거리는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어리둥절한 관광객들에게 용감한 중국인 하나가 다가와 '아저씨'들이 단체로 맞춰 쓰고 온 녹색 모자를 가리키며 속사포 같은 중국어를 구사한다.

그저 한번 상상해 본 장면이지만, 이런 일이 없으란 법도 없다. 중국에서 '녹색 모자'는 절대 금기다. 여성은 괜찮지만, 남자는 녹색 모자를 쓰지 않는다. 모자 파는 상점에도 남자용 녹색 모자를 갖춰 놓은 곳은 없다.

중국에서 남자가 녹색 모자를 쓰면…

"녹색 모자를 쓰다"는 중국어 표현인 '따이 뤼마오쯔(戴綠帽子)'가 "지금 내 아내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녹색 모자'는 어쩌다 이런 운명에 맞닥뜨리게 된 걸까?

당나라 때 한 여인이 다른 사내와 통정하던 중 밖에 나갔던 남편이 갑자기 집에 돌아왔다. 다급히 사내를 숨긴 여인은 논에 물을 대러 다녀오라며 남편을 밖으로 내몰았다. 혹시라도 눈치를 챌까봐 날이 더우니 햇빛을 가려준답시고 수박껍질로 모자를 만들어 씌워주었다. 수박 모자는 머리를 눌러 남편의 눈까지 가릴 정도였다. 남편은 '녹색 모자'를 쓰고 아무것도 모른 채 집을 나섰다.

바람난 아내가 남편에게 녹색 모자를 씌워 내보내는 것을 신호로 삼아 통정하던 사내를 집으로 불러 들인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몽골이 지배하던 원나라 때, 새로 생긴 기방에서 일하던 사내들을 다른 사람과 구별하기 위해 녹색 모자를 씌운 데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

색깔 속의 중국 문화

중국인은 유달리 붉은 색과 노란 색을 좋아한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영어 표현에도 'china red'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노란 색은 황금과 고귀한 신분을 상징한다. 어떤 색깔을 특정한 상징으로 삼는 중국인의 문화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역대 왕조들도 저마다 상징 색을 가지고 있었다. 오행의 원리를 나타내는 홍, 청, 황, 백, 흑이 주로 쓰였다. 하(夏)는 청색, 상(商)은 백색, 주(周)는 홍색, 진(秦)은 흑색, 한(漢)은 전후기를 각각 나누어 황색과 홍색, 당(唐)은 황색, 송(宋)은 홍색, 원은 백색, 명(明)은 홍색, 청(淸)은 흑색 등이었다.

왕조가 바뀌고 상징 색이 바뀌면, 이전 왕조의 상징 색은 푸대접을 받았다. 사회주의 중국에서 국민당 정부의 백색 상징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내전 시기 국민당이 통치했던 지역을 '백구(白區)'라고 부르거나 국민당 군대를 '흰 강아지'라는 뜻으로 '바이거우쯔(白狗子)'라고 얕잡아 부르기까지 하는 이유다.

오늘날 사회주의 중국의 상징이 홍색임은 물론이다. 피와 혁명 등을 상징하는데 이만한 색깔도 없다. 중국 곳곳에 걸려있는 간판과 현수막들이 온통 붉은 색으로 치장돼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현기증이 일 정도다. 과도한 홍색 사용을 적절하게 조정하는 일이 도심 경관은 물론 중국 디자인의 앞날을 좌우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오랜 역사 속에서 공교롭게도 녹색만큼은 특정 왕조의 상징이었던 적이 없다. 상징 색으로 녹색을 쓰면 여러 사람들이 '녹색 모자'를 써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녹색이 모든 분야에서 금기시되는 것은 아니다. 환경과 생태를 중시하는 요즘, 녹색이 건강한 생태계를 상징하는 것은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녹색 모자'만큼은 아직도 일상의 금기로 자리 잡고 있다. 그것도 중국 남자들이 가장 꺼려하는 금기 중의 금기다. 누군가 '녹색 모자'를 쓰고 중국에 간다면 금세 비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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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근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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