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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기추억의 e-sports 사람을 만나다. - 박영민 선수 편
지난 20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선 추억의 프로게이머들인 기욤, 이윤열, 임요환, 홍진호 선수가 모인 ‘기가 레전드 매치’가 열렸습니다. 이 이벤트성 대회는 하루 동안 포털 사이트 인기 검색어 상위권을 꾸준히 유지하며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요. 대회는 이윤열 선수의 우승, 그리고 홍진호 선수의 ‘준우승’으로 끝이 났습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많은 e-sports 팬들이 과거의 향수에 빠질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는데요.시대가 바뀌어 e-sports의 환경 역시 바뀌었지만 스타크래프트 1을 사랑했던 팬들의 마음은 아직까지 현재 진행형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전 아주 특별한 분을 여러분들께 소개해드리려고 하는데요. 이 선수를 생각하면 많은 키워드들이 떠오릅니다. ‘공명 토스’, ‘노룡’ 그리고 ‘하트 파일런’까지. 지난 2011년 공군 에이스 제대를 한 후 아쉽게 은퇴를 선언하면서 e-sports와의 인연의 마침표를 찍으신 분인데요. 제가 오늘 여러분들께 소개해드릴 추억의 e-sports 사람은 ‘공명 토스’ 박영민 선수입니다.
Q. 안녕하세요. 박영민 선수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A. 안녕하세요 전 프로게이머 박영민입니다.
Q. 정말 오랜만에 뵙는 것 같아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A. 그동안 아시는 분들은 아실 수도 있는데 제대하고 은퇴를 한 다음에 노량진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래서 14년도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지금 이제 군산에서 직장 다니고 있어요.
Q. 일반적인 생각으론, 프로게이머와 공무원은 전혀 상관없는 일인 것 같은데요. 오히려 공부와 게임은 정반대의 것으로 느껴지잖아요. 혹시 프로게이머를 하시다가 공무원 공부를 준비하시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A. 엄청 힘들었어요. 제가 중 3 때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를 처음하고 고2 인가? 그때부터 게임에 푹 빠졌는데 그러다 보니까 공부에 손을 놨죠. 그래서 공부를 하려고 처음 딱 책을 펼쳤을 때 아예 기초가 없으니까 깜깜했어요. 흰 건 종이고 검은 건 글씨고 그러니까. 그래서 처음엔 많이 힘들었죠. 공부하는데 기초가 없으니까.
Q. 혹시 프로게이머 생활이 수험 생활에 오히려 도움이 된 순간은 없었나요?
A. 네, 있었어요. 제가 게임을 하면서 많이 습득을 했던 게 있는데 컴퓨터 책상에 오래 앉아 있는 거예요. 12시간 이상씩 앉아있었으니까. 그래서 일단 공부를 시작하면 책상에 앉아있기가 힘들다고 하는데 저는 그거는 어렵지 않았거든요. 편하게 앉아있는 거는 잘했는데, 그러다 보니 한 번 공부를 시작하면 오래 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도움이 됐던 것 같고요.
Q. 박영민 선수는 ‘공명 토스’라는 별명을 갖고 계셨잖아요. 세리머니도 잘하시고 해서 선수 경력 동안 재미난 에피소드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혹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나 경기 있으신가요?
A. 이런 질문을 되게 많이 받았어요. 선수 시절에도 그때는 그냥 딱히 하나가 기억나서 얘기했던 게 아니라 그냥 남들이 좋아할 만한 경기를 말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 와서 돌이켜 보니까 한순간 한순간 하나씩 생각 나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기억이 많이 남거든요. 처음 데뷔했을 때, TV에 나왔을 때 마이너리그 예선 같은 거였는데 그것도 기억에 많이 남고, 그리고 태민이랑 했던 SK 전 에이스 결정전 블루 스톰에서 프로브 한 마리씩 빼 가지고 했고, 그리고 챌린저스 리그 결승에서 보성이랑 했던 거 mbc 게임 히어로즈랑 플레이오프에서 이겼던 거, 그냥 다 기억에 많이 남아요.
Q. 사실 아직까지 박영민 선수를 검색해보면 연관 검색어로 뜨는 게 지난 아레나 MSL에서 이성은 선수를 상대로 하셨던 하트 파일런 세리머니잖아요. 그때 왜 그걸 하시게 된 건가요? 그리고 혹시 이성은 선수가 서운해하시진 않았나요?
A. 했던 이유는... 워낙 오래 전이라 자세히 기억나지 않고요. 성은이와의 관계는 사이가 나빠지고 그럴게 없었던 게 성은이 자체도 쇼맨십 같은 걸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아마 그 경기로 인해서 성은이가 저보다 더 많이 유명해졌을걸요. 그래서 성은이도 졌지만 그거에 대한 이득은 많이 봤었던 것 같아요.
이미지 출처 : http://newblack.tistory.com/62
Q. 그럼 반대로 선수 생활 중 가장 아쉬움이 남는 점이 있다면요?
A. 제 자신이 정말 아쉬운 게 많았죠. 제가 우승을 한 번도 못해봤잖아요. 이게 기회는 몇 번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때마다 못 잡았던 것 같아요. 그때마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가지고 가장 큰 기회가 그때 양대 리그 8강 갔었는데 msl 4강에서 이제동 선수와 붙었었고 스타리그8강에서 김택용인가 도재욱이랑 했었는데 둘 다 졌거든요.(확인 결과 도재욱 선수) 명절 전에 개인적인 일이 생겨서 연습을 제대로 못했어요. 핑계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때가 가장 아쉬워요. 그때가 개인리그 최고 성적인데요. 사실 제 자신의 컨디션은 가장 안 좋았는데 대외적으로는 성적이 잘 나오니까 많은 분들이 기대했던 것 같은데 탈락해서 아쉽죠.
Q. 사실 박영민 선수는 은퇴를 하신 후 e-sports 쪽이 아니어서 자주 만나 뵙진 못했는데요. 혹시 아직까지도 스타크래프트를 자주 하시나요?
A. 제가 은퇴하고 공부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가끔 했었어요. 근데 공부를 하면서 게임을 멀리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안 했어요, 그런데 오히려 합격을 하고 직장에 들어오니까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연락이 와서 타 지역에서도 저를 보러 와주시고 게임도 같이 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조금씩 그럴 때만 하고. 그 외에는 안 했어요.
Q. 그럼 지금은 주로 하는 취미 생활이 무엇인가요?
A. 취미 생활은 공부입니다.
Q. 그럼 그때의 프로게이머 생활이 지금의 박영민 선수에겐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A. 제가 20대 대부분을 게임을 하면서 보냈는데 후회하진 않아요. 많은 경험도 해봤고 돈도 또래에 비해 많이도 벌어봤고 많이 써보고, TV에도 나와서 여러 사람들도 알아봐 주셨잖아요.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프로게이머였던 그 영향이 지금 일을 하면서도 많이 있어요. 기관에서 게임 관련해서 강연 같은 것도 해달라고 들어오기도 하고. 많은 분들이 알아봐 주시고 신경 많이 써주시고 선수 생활할 때도 그러지만 그만두고 나서도 좋은 기억으로 계속 남을 것 같아요.
Q. 그렇다면 어쨌든 지금은 아니지만 과거엔 e-sports 인으로서 이 분야에서 활동하셨잖아요. 박영민 선수가 생각하는 e-sports 발전을 위한 변화는 무엇이 있나요?
A. 저도 지금 상황은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저 때까지만 해도 이쪽이 좀 약간 역사가 짧고 기반도 아직 다져지기 전이 어서 프로 게이머를 할 때, 이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중반 이때가 선수로 활동하기 가장 최적의 나이인데 사실 미래가 많이 불안정한 건 사실이잖아요. 그 선수 생활을 그때가 전성기인데 그때가 지나면 프로들의 세상에선 실력이 떨어지고 또 그러면 수익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이 이후에 대한 완제 장치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지금 보면 선수 출신 몇몇 해설자도 있고 감독 출신도 있고 그렇지만 지금까지 선수를 했던 프로 중에 몇몇이 되는 거고 나머지 선수들은 정말 할 게 없거든요. e-sports의 발전을 위해서는 이런 프로게이머 선수들의 미래를 위한 대책이 튼튼하게 다져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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