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헤칠 것 더 있다”…세월호 ‘특검안’ 통과로 국회 임무 다해야읽음

김형규 기자

이틀간 ‘세월호 2차 청문회’가 남긴 것

“기억이 잘 안 납니다.” “나는 모르는 일입니다.” “그건 내 업무가 아닙니다.” “그땐 몰랐고, 이제 보니 알겠습니다”….

이틀 동안 서울시청에서 열린 세월호 2차 청문회에 출석한 40여명의 증인들은 한결같았다. 본인에게 주어진 임무를 축소하고 부인하기 바빴다. 불리한 질문에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확고부동한 증거가 있을 때만 마지못해 인정했다. 지위고하를 막론한 이런 태도에 청문회를 지켜보던 세월호 유가족들은 수시로 분통을 터뜨렸다.

희생자가 300명이 넘지만 청문회만 보면 잘못한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진심 어린 사과 역시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고 이후 구조·구난의 책임이 있는 해경과 선장·선원들은 서로 잘못을 떠넘겼다. 관리·감독을 소홀히 해 사고가 나도록 사실상 방치한 관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참사 당시 ‘전원 구조’ 등 오보를 남발하고 정부 발표 받아쓰기에 급급해 ‘기레기’라는 비판을 받았던 언론도 여전했다. 청문회 첫날 다수 언론사는 “이준석 전 선장이 퇴선 지시를 했다고 말을 바꿨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이 전 선장이 이미 1·2심 재판에서 진술을 번복했는데도 마치 처음 그런 것처럼, 새로운 사실인 양 대서특필했다. 청문회장 밖에선 원색적인 표현을 앞세운 보수단체의 반대 집회도 이어졌다.

세월호 2차 청문회는 한국 사회의 여러 부조리가 응축된 세월호 참사의 발생 과정을 다시 한번 극적으로 재연했다. 한숨과 분노 없이 끝까지 보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이 비극에 희망의 단초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세월호 여객부 직원 강혜성씨는 참사 당시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라”고 한 방송이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는 진술을 했다. 선사의 잘못된 판단으로 살 수도 있었던 승객 수백명이 죽음에 이르렀음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새롭게 제기된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지시를 내린 청해진해운 경영진은 추가 처벌이 불가피하다. 강씨는 뒤늦은 고백을 하며 유족들에게 용서를 빌었다.

해경과 해양수산부가 운영한 진도·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가 교신기록을 편집·조작한 정황도 발견됐다.

당초 세월호 침몰 원인을 밝힐 단서로 거론됐던 선박자동식별시스템(AIS) 항적 자료는 신뢰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세월호 2차 청문회는 우리 사회가 세월호와 관련해 더 파헤칠 것이 남아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진상규명은 향후 세월호특조위의 활동과 특별검사 수사 등에 달렸다. 특히 새로이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서는 특검 수사로 한 점의 의혹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

여야는 이미 특조위가 특검을 요청하면 지체 없이 받아주기로 유족들과 합의했다. 새누리당이 한 달 넘게 특검 요청안을 뭉개고 있는 건 약속 위반이다. 4·13 총선 후에도 19대 국회 임기는 한 달 넘게 남아 있다. 국회는 특검 통과로 마지막 임무를 다해야 한다.

적어도 “이 나라가 싫다”는 유족들의 절규는 멈추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세월호 희생자와 미수습자 9명은 여전히 차가운 바닷속에서 우리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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