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 타고난 예인 대금 연주가 이생강

입력
수정2016.01.16. 오전 8:11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사진/임귀주 기자

전통과 현대 넘나들며 새로운 경지 개척

(서울=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죽향(竹鄕) 이생강은 한국인이라면 익히 아는 당대 최고의 대금 연주가로 대금 산조의 시조로 알려진 한숙구(1849~1925), 박종기(1879~1939) 선생의 가락을 이어받은 한주환(1904~1963) 선생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유일한 분으로 대금 산조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인물이다. 특히 대금뿐만 아니라 피리, 단소, 태평소, 소금, 퉁소 등 모든 관악기에 뛰어난 연주력을 가진 우리 시대의 악성이다.”

중요인간문화재 제45호 대금 산조 보유자인 이생강 명인의 공식홈페이지에 있는 프로필 서문이다.

이생강 명인은 한주환 선생의 가르침을 받아 대금 산조의 맥을 이으면서도 가요, 재즈, 팝 등 모든 장르를 아우른다. 팔순의 나이에도 연주 활동과 더불어 제자 양성, 국악 대중화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이 명인은 서울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인근 전수관에서 대금과 단소 교육 등을 통해 민속악을 널리 알리고 있다. 전수관은 사비로 운영된다. 또 후학과 일반인이 쉽게 배우고 따라할 수 있도록 ‘민속악 대금 교본’과 ‘민속악 단소 교본’, ‘초급용 단소 교본’ 등을 만들었으며 PVC로 죽향단소, 대금, 유아용 병아리 단소 등을 제작해 보급하고 있다.

사진/임귀주 기자

국악의 조기교육을 강조하는 명인은 “제자들과 함께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반응이 아주 좋다”면서 “어릴 적부터 국악과 친해지도록, 원하는 학교에는 단소와 함께 교육용 CD와 DVD 등을 보내준다”고 말한다. 물론 재원은 이 명인이 공연료와 강연료로 충당한다.

서양음악과의 크로스오버를 시도하며 대금 산조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이 명인은 “원형을 벗어난 음악은 생명이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국악은 5음계인 반면 서양 음악은 7음계를 사용한다”면서 “우리 악기를 변형시켜 7음계를 내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소리로 국악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 대금은 무한대 음악을 담는 큰 그릇

이 명인은 음반도 수백 장을 냈다. 음반 하나하나마다 명인의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칠갑산’, ‘동백아가씨’, ‘목포의 눈물’, ‘나그네 설움’ 등은 물론이고 ‘대니 보이’(Danny Boy), ‘엘 콘도르 파사’(El Condor Pasa) 등 우리에게 익숙한 노래를 대금과 피리, 단소 등으로 풀어냈다.

그는 “대금은 정악만을 연주하는 정악대금과 민속악인 산조만을 연주하는 산조대금의 두 종류가 있다”고 설명하고 “대금은 연주자의 기량이나 능력에 따라 가요든 팝송이든 어떤 음악도 담아낼 수 있는 큰 그릇”이라고 말한다.

이 명인은 지난 2009년 초유의 120분 대금 산조 음반 ‘笛流’(적류)를 내놨다. ‘적류’는 스승 한주환이 남기고 간 32분짜리 산조에 바탕을 둔 것으로 평조다스름에서 시작해 진양조를 거쳐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굿거리, 자진모리, 엇모리, 동살풀이를 지나 휘모리로 끝을 맺는다. 무려 43분39초 길이의 진양조가 마치 창장(長江)의 도도한 흐름처럼 흘러간다. 이 음반은 한번 들은 가락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고 재연해 내는 뛰어난 기억력과 그의 타고난 연주 능력을 보여준 역작이다. 이 명인은 “젊은 시절 마라톤으로 단련된 강인한 심폐가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사진/임귀주 기자

2007년에는 한국 전통무용음악 1천여 곡을 집대성한 ‘춤의 소리’ 음반 50장을 한꺼번에 내놨다. 화관무, 부채춤, 살풀이, 승무, 검무, 무당춤, 농악 등이 총망라돼 있는 이 전집은 우리나라 전통 무용음악 100년사를 담은 ‘대백과사전’이다.

지난해 9월에는 ‘팔천 년 역사의 소리 퉁소가락’ 음반을 발표했다. 이 명인은 음반에서 고(故) 전추산 명인에게서 전수한 기존의 퉁소 산조에 새 가락을 짜 넣어 감정의 흐름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민속안에서 독주악기로 주로 사용하는 퉁소는 세로로 부는 악기로 단소와 모양은 같지만 대금처럼 굵고 음폭이 커 저음을 장엄하게 표출할 수 있다. 이 명인은 2006년 ‘위대한 우리 소리’시리즈 앨범 작업을 시작해 단소, 대금, 피리, 소금 순으로 연주 앨범을 냈다.

◇ 팔순에도 피리 부는 타고난 예인

이생강 명인은 스승이 23명이라고 한다. 대금 산조를 가르쳐 준 한주환 명인을 비롯해 강백천, 전추산, 오진석, 김문일, 임동선, 지영희, 방태진, 한일섭 등을 스승으로 모시고 대금, 단소, 소금, 피리, 태평소 등을 익혔다.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이 명인은 “우리의 민속음악이 궁중음악에 비해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는 현실 때문에 그만두려고 할 때도 있었지만 남다른 민족애가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이 명인은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피리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가족들과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운전을 하던 아버지는 고된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피리를 불며 고국을 향한 그리움을 달랬다”며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피리 소리를 듣다가 호기심에 아버지의 피리를 불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고 돌아본다.

사진/임귀주 기자

6살부터 단소를 늘 입에 대고 다녔던 이생강은 해방되던 해 귀국해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한국전쟁은 그의 예술세계 기초가 다져진 시기였다. 부산으로 피란 온 당대 국악 대가들을 찾아다니며 전국 팔도의 가락을 한 수 한 수 배울 수 있었다. 11살인 1947년에는 전주역에서 스승 한주환 명인과 운명적으로 만나 이후 15년 동안 대금 산조를 물려받았다.

이 명인은 “지방마다 사투리가 있듯이 피리 소리도 전라도, 경상도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그런 음악들을 피란 시절 다 전수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고 말한다. 그의 대금 산조가 주목받은 건 국내가 아닌 1960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민속예술제다.

무용극 ‘춘향전’ 공연에 악사로 동승했다가 주인공이 급작스러운 맹장 수술로 무대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던 것. “빈 시간을 채우기 위해 대금을 들고 무대에 섰지요. 반응이 굉장했어요. 대금 산조를 처음 들어본 외국 언론들은 ‘신의 소리’, ‘영혼의 소리’라는 극찬을 내놨습니다.” 현지의 한 언론은 “끓어질 듯 이어지고 휘몰아치는 대금 산조는 마치 수십만 마리의 꿀벌들이 날아다니는 듯한 소리와 비슷하다”면서 집중 조명기사를 내보냈다고 한다.

당시 서양음악만 알아주는 국내 풍토에 크게 회의를 느꼈던 이 명인은 이때 ‘우리 것이 세계에 통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자신의 소리에 큰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1977년 6월 서울 장충동 국립국장에서 첫 대금 산조 개인 발표회를 연 명인은 일본과 미국 순회공연을 거쳐 1988년 서울올림픽 폐회식 때 대금 독주를 맡았다. 1992년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 산조 보유자 후보가 됐고, 1996년 60세 때 보유자로 지정받았다. 1999년 세계 유네스코대표위원 참관 한국무형문화재 개인사례 발표를 가졌고 2005년 4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음악인생 60주년 기념공연을 열었다. 그는 현재 자신의 호를 딴 죽향대금산조 원형보존회를 운영하고 있다. 험난한 세상에 태어났으니 ‘강하게 살라’고 하여 ‘생강’(生剛)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름에 담긴 뜻처럼 70년 넘게 대금을 불고 있다.

changho@yna.co.kr

▶ [현장영상] '해리포터' 스네이프 교수役 '앨런 릭먼' 별세…쏟아지는 추모열기

▶ [오늘의 핫 화보] 미녀 농구 선수들, 치어리더로 '깜짝 변신'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생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