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 범위를 ‘경영 참여’로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진그룹처럼 총수 일가의 일탈 행위로 기업 가치가 떨어지는 경우 주요 주주 자격으로 경영진 퇴진이나 이사회 개편 등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기업경영평가 사이트인 시이오(CEO)스코어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상장기업이 275곳에 이른다. 10% 이상도 84곳이나 된다. 대한항공의 지분율은 12.5%로 2대 주주다. 국민의 재산을 지킨다는 점에서도 국민연금의 경영 참여는 의미가 크다.
<한겨레> 보도를 보면, 국민연금은 7월 ‘스튜어드십 코드’(의결권 행사 지침)를 도입할 때 경영 참여를 포함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주총 안건에 의결권을 행사하거나 배당 확대를 요구하는 등 지극히 제한된 범위에 머물렀다. 그나마 거의 대부분 최대주주의 의견에 찬성을 해 ‘주총 거수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국민연금은 5일 대한항공에 조양호 회장 일가의 불법·비리 의혹에 대해 사실관계를 해명하고 해결 방안을 제시할 것을 요구하는 공개 서한을 보냈다. 경영 쇄신을 위해 책임 있는 조처를 내놓으라는 압박이다.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런데 경영 참여는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 경영권 개편에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재벌 총수 일가의 불법·비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사내외에 총수 일가의 전횡을 견제하고 제동을 걸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미비한 탓이 크다. 특히 이사회가 총수의 측근들로 채워져 총수가 멋대로 해도 입도 뻥긋하지 못 한다. 국민연금의 경영 참여는 이런 문제를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예방 효과’도 기대된다. 국민연금이 실제 행동에 나서지 않더라도 총수 스스로 조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재계와 보수언론은 기업 경영에 대한 과도한 개입이라며 반대한다. ‘연금 사회주의’라는 공격도 나온다. 물론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 경영의 자율성은 보장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불법·비리를 저지른 총수의 경영권까지 보장하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경영권이 성역일 수는 없다. 경영권을 총수 일가의 전유물로 여기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기업관이다. 일탈 행위로 기업과 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힌 총수는 물러나게 하는 게 마땅하다.
국민연금도 경영 참여로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 의사결정 과정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높여야 정부의 입김이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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