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 12…·세월호 선원들이 승객 버린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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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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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범죄 3대 미스테리 ②] 청해진해운 조직 범죄

 [이재호 기자]

 
"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마시고 대기해주시기 바랍니다."

4월 16일 오전 9시 37분. 세월호 선박직 15명 선원들이 무사히 구조됐던 이 시각까지 배에서는 기다리라는 방송만 흘러나왔다. 배가 이미 60도 이상 기울어져 복구가 불가능한 상황인데도 선원들이 승객들의 탈출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구조를 방해한 셈이다.  

세월호와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 간 교신을 시작한 오전 8시 56분부터 배가 완전히 넘어진 10시 17분까지 선장을 비롯한 선박직 선원들은 승객 구조를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사고 소식을 관제센터에 알린 첫 교신부터 문제였다. 

세월호는 사고 해역과 가까운 진도 VTS가 아닌 제주 VTS와 첫 교신을 시작했다. 진도 VTS가 관할하는 해역에 들어오면 통신 채널을 진도 VTS와 연결되는 67번으로 맞춰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처음부터 제주 VTS와 연결되는 채널 12번으로 맞추고 운항하고 있었다. 진도 VTS는 제주 VTS의 통보를 받고서 세월호에 교신을 시도했다.  진도 VTS와 세월호의 교신은 10분 지난 오전 9시 7분부터 시작됐다. 

진도 VTS가 관할하는 해역에 들어왔을 때부터 채널 67번을 맞추고 운항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참사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진도 VTS가 해당 관할 구역에 들어온 선박에 운항 안내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선원들은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규정을 무시한 채 운항을 이어갔다. 

이후에도 선원들은 이해하기 힘든 행태를 보였다. 이들은 진도 VTS와 교신 중인 9시 10분, "배가 너무 기울어서 금방 넘어질 것 같다"며 상황이 다급하다고 알렸다. 그러면서도 14분이 지난 9시 24분까지 승객 구조를 위한 조치는 취하지 않은 채 구조선은 언제 오느냐, 승객을 탈출시키면 구조가 되겠느냐만 반복해서 물었다. 보다 못한 진도 VTS는 라이프링(구명 튜브)이라도 띄우라고 재촉했다. 하지만 9시 37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교신은 없었다.   

승객들에게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은 이유에 대해 세월호 이준석 선장은 지난 4월 18일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해당 수역이) 조류가 상당히 빠른 곳이다. 수온도 차고. 퇴선하면 상당히 멀리 떠밀려가고, 곤란한 점이 많을 것으로 사료됐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선원들이 배에 장착돼있는 구명정 한 대도 제대로 내리지 않았다는 점을 비춰봤을 때 제2의 사고를 우려해 퇴선명령을 하지 않았다는 선장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 침몰한 세월호의 선장(가운데)이 지난 4월 18일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모든 선박이 공용으로 쓰는 16번 채널을 이용하지 않았다는 점도 참사를 키운 원인이 됐다. 16번 채널을 쓰면 주변 모든 선박에 위기 상황을 신속히 알릴 수 있다. 선박에서는 통신 장치로 VHF(초단파 무선통신)를 이용하는데, 이 장치는 동시에 2개 채널과 교신이 가능하기 때문에 항해하고 있는 해역을 관할하는 관제센터와 공용채널인 16번을 동시에 교신할 수 있다. 

하지만 세월호 선원들은 배가 뒤집어지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16번 채널을 사용하지 않았다. 선장의 해명대로 구조선이 없는 상황에서 승객들이 바다로 뛰어드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면 진도 VTS에 구조선이 언제 오느냐만 물을 것이 아니라 16번을 채널을 통해 주위 선박들에게 상황을 알리고 세월호 근처로 오게끔 만들었어야 한다. 

선원들은 탈출하는 마지막 순간에도 승객 구조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일반적으로 선박에는 통신장치인 VHF와 같은 기능을 하는 '쌍방향 무전기'가 있다. 이 무전기를 가지고 있으면 배에서 벗어나더라도 관제센터를 비롯해 주위 선박과 교신이 가능하다. 세월호에는 이같은 무전기가 3대나 있었다. 하지만 탈출한 선원 누구도 이 무전기를 들고 나오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 구조 가능성마저 철저히 차단된 셈이다. 

선원들, 승객 구조하지 않은 이유는 

선장과 선원들이 이처럼 승객 구조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선박직 15명 중 10명이 해당 선박에 근무한 지 6개월도 지나지 않은 비숙련 노동자였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즉, 이들이 위급상황에 제대로 대처하기 힘든 노동자들이었다는 것이다. 검경 합동수사본부에 따르면 선장에 이어 두 번째 직책인 1등 항해사 중 한 명은 심지어 사고 발생일 하루 전인 15일에 입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선원들에 대한 열악한 처우도 이번 참사를 키운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은 지난 4월 30일 KBS 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에 출연해 "저임금에 극심한 노동 강도, 장시간 노동과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선원들에게 승객의 생명과 안전이 맡겨져 있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배를 책임지고 있는 선장조차도 1년 비정규직에 월급은 270만 원이었다. 항해사와 기관사들 역시 월급이 200만 원도 되지 않았다"며 "저임금을 받으면서 여러 배를 떠돌아다니는 계약직 노동자들에게 선원의 신성한 의무와 사명감은 공자님 말씀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회사가 위험한 일을 비정규직에 떠맡기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같은 방송에 출연한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는 "위험·안전을 지켜야 될 자리에 아웃소싱하거나 비정규직을 채용하는 비윤리적인 관행은 시정돼야 된다"며 "자기 고용이 불안한데 상급자나 사주에게 소신껏 안전문제를 제기하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배의 총 책임자인 선장보다 기관장이 득세하는 청해진해운 선박 내 기이한 권력 구조가 문제라는 분석도 나왔다. 청해진해운은 기관장 출신들이 많이 포진돼 있는 공무팀이 사실상의 실세 부서인데, 이들은 선박 수리 권한을 바탕으로 경영진의 신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더 많은 수익 창출을 위해 선박을 개조하는 등 선박의 기술적인 문제가 모두 이들의 손을 거쳐 갔다. 

이런 회사 구조에서 위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선원들은 1년 계약직인 선장의 말보다는 회사의 핵심 실세와 연결되는 기관장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준석 선장이 '대타 선장'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고가 났을 당시 선장 주도로 일사불란한 대응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임을 쉽게 추측해볼 수 있다. 실제 세월호 침몰 당시 기관부 직원에게 퇴선 명령을 내린 것은 기관장 박모 씨였고 이들은 해경에 의해 맨 처음 구조되기도 했다. 

청해진해운, 보험금 때문에 승객 탈출 지연시켰나  

일각에서는 청해진해운이 보험금을 노리고 승객 탈출을 지연시켰던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YTN은 지난 4월 26일 청해진해운이 승객들에게 퇴선 명령을 하지 않은 이유로 "회사 과실로 사고가 난 사실이 드러나면 선체보상금이 감액되기 때문에 이에 대비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세월호는 메리츠화재와 한국해운조합에 각각 77억7000만 원과 36억 원씩 모두 113억7000만 원의 선체보험에 가입된 상태다. 청해진해운이 보험금을 제대로 타기 위해서는 회사 과실이라는 사실이 밝혀져서는 안되는데, 승객들을 바로 퇴선시키면 이는 곧 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 되기 때문에 퇴선 명령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청해진해운의 전신인 온바다해운이 지난 2001년 보험금을 타기 위해 이와 비슷한 행위를 했다는 점 또한 이같은 의혹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당시 온바다해운은 데모크라시 2호와 3호에서 발생한 화재로 각각 23억, 28억의 보험금을 챙긴 바 있는데 화재 원인에 대해서는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었다.  

청해진해운이 세월호에 적재된 화물량을 축소 조작한 것 역시 이러한 의혹이 사실일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지난 1일 청해진해운 물류팀장 김모 씨가 사고 당일 적재 화물량보다 적은 수치를 컴퓨터에 입력했다고 밝혔다. 김 씨는 사고 당일 오전 9시 38분 제주 청해진해운 직원과 통화하면서 화물을 기준량보다 많이 실은 것이 침몰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판단, 적재 화물량을 180여 톤 줄여서 기록한 것으로 밝혀졌다. 

▲ 지난 4월 16일 세월호가 기울어져 있는 모습. 배의 앞쪽에 위치한 화물들이 배가 기우는 방향으로 쏠려 있다. ⓒ연합뉴스

실제 합수부 조사 결과 사고 당시 세월호에는 권고 적재량보다 3배가 많은 3608톤의 화물이 실려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배가 무거워지면서 무게중심이 위쪽으로 올라가게 되고 결국 이것이 침몰로 이어진 셈이다. 그런데 침몰 원인이 무리한 과적으로 결론 날 경우 세월호 침몰은 회사 과실이 되고 청해진해운은 보험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된다. 

바로 이 부분을 감추기 위해 청해진해운은 물류팀장 김모 씨에게 지시한 것처럼 선원들에게 선박의 문제를 감추라는 지시를 내렸을 수 있다. 일 분 일 초가 급박한 위급 상황에서 승객 구조가 아닌, 추후 이 사고가 회사의 과실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배에 문제가 있는 부분을 은폐하라는 것과 같은 지시를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합수부는 사고 당일 오전 9시 1분부터 회사와 선원 간 7차례의 통화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으며 이준석 선장도 회사와 35초간 통화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선원들이 이상하리만치 승객을 구조하지 않은 진짜 이유를 밝히는 것은 이 통화에서 회사가 선원들에게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를 규명하는 것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떠다니는 시한폭탄, 세월호 

일본 도쿄 해양대학교의 와타나베 교수는 지난 4월 26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출연해 "침몰 원인은 이미 인천항을 출발할 때부터 있었다"며 세월호 침몰은 증축과 과도한 화물적재에 있음을 시사했다. 멀쩡하던 배가 갑자기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원래 문제가 많은 선박이었다는 것이다. 

와타나베 교수는 이 방송에서 자신이 직접 촬영한 실험 영상을 소개했다. 영상에는 배 위에 얼음이 가득 차있는 나무 상자가 올려져 있었는데, 이 상자 안에 소량의 얼음을 투척하니 평형을 유지하던 배가 기울기 시작했다. 또 한 번 소량의 얼음을 넣자 배는 순식간에 뒤집어 졌다. 무게가 점점 늘어나면서 무게 중심이 배의 위쪽으로 이동해 평형을 잃고 배가 쓰러진 것이다. 

세월호는 더 많은 인원을 수용, 수익을 높이기 위해 객실을 증축했다. 여기에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인 유병언 전 회장의 전시실 공간을 만들기 위해 원래 4층이던 세월호는 5층으로 증축됐다. 이미 무게중심이 기존보다 많이 높아진 상황에서 청해진해운은 더 많은 이윤을 내기 위해 화물을 무리하게 싣기 시작했다.  

기준량보다 많은 화물이 실리는 것을 본 세월호의 1등 항해사 강모 씨는 급기야 출항 당일인 15일 청해진해운 물류팀장과 이사에게 화물을 그만 실으라고 수차례 경고하기에 이르렀지만, 이런 그의 경고는 통하지 않았다. 

과적된 만큼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라도 많이 실렸으면 사고를 예방할 여지라도 있었지만 이 역시 덜 채워진 것으로 파악됐다. 합수부는 강 씨에게 "과적 단속을 피하기 위해 평형수를 줄인 상태에서 운항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화물을 많이 실었다면 제대로 고정이라도 시켜 놓았어야 급격한 기울어짐을 막을 수 있었지만 세월호는 이마저도 제대로 조치하지 않았다. 선박에는 컨테이너의 모서리를 고정시키는 콘(cone)이라는 장치가 있는데 세월호에 있는 콘은 컨테이너와 규격이 맞지 않았다. 침몰 당시 세월호는 컨테이너를 밧줄로 묶기만 한 채 운항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세월호가 기본도 지키지 않으면서 과적 운항을 한 근본적인 이유는 수익 때문이다. 세월호는 객실 증축으로 한 번 운항할 때마다 800만 원의 수익을 더 올렸다. 화물 운임료는 8톤 화물차 한 대에 70만 원, 트레일러는 140만 원인데, 세월호는 화물차를 포함해 기준량보다 더 많은 화물을 실은 대가로 한 번 운항할 때마다 평균 4000만 원의 추가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승객의 안전보다 눈앞의 이익을 더 중시한 청해진해운은 움직이는 시한폭탄이나 다름 없었었다. 세월호가 지난해 3월부터 1년 여간 수많은 승객과 화물을 싣고 다녔는데도 아무런 이상이 없다가 왜 이제야 참사가 발생한 것인지는, 말 그대로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는 것 외에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을 만큼 청해진해운의 운항 관리는 형편없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이재호 기자 (jh1128@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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